마을 대표 ‘주민자치회’, 활동하려면 돈 내라?…광주 곳곳 ‘입회비’ 논란

고귀한 기자 2024. 11. 1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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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광주광역시 서구 한 마을 주민자치회 위원인 A씨는 주민자치회 활동을 그만둘지를 고심하고 있다. ‘마을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지난 3월 주민자치회에 참여했지만, 정작 활동은 ‘감투를 쓴 계모임’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운영진은 첫 회의부터 가입비 80만원을 내라고 하더니, 이후로도 운영비 명목으로 10~20만원을 여러 차례 요구했다.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관행’이란 이유를 들었다. “여유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마을 봉사를 하겠느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A씨는 “돈이 없는 사람은 봉사에 참여하지 말란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말했다.

풀뿌리 지방자치의 최전선에 있는 마을 주민자치회 일부가 참여자들에게 가입비 등을 강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민자치회는 사회적 약자 등 다양한 계층의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무보수 명예직’이 원칙이다.

10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주민자치회는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한 주민 대표기구다. 주민 스스로가 주체가 돼 지역 현안을 결정하고 해결하자는 취지다. 그만큼 위원들은 마을자원 조사·의제 발굴, 비전계획 수립, 주민총회 개최 등 주민을 대표해 마을 정책과 예산 등을 결정하는 막대한 권한을 갖는다.

주민자치회의 위원은 공정성 제고를 위해 공개모집을 통해 선발한다. 주민 자치활동에 관한 기본교육과정 6시간 이상을 수료한 주민이 신청을 하면 기초단체장이 최종 위촉한다. 위원들은 마을 주민 수에 따라 최소 20명에서 최대 50명으로 구성돼 2년간 활동한다.

광주시는 주민자치를 가장 선도하는 지역으로 꼽힌다. 2013년부터 일부 마을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을 하다가 현재는 96개 전 지역으로 확대해 운영 중이다. 모든 마을에서 주민자치회를 운영하는 곳은 광주가 유일하다.

광주 주민자치회는 ‘무보수 명예직’을 원칙으로 한다. 투명성 확보와 공정성을 위해 각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돼 있는 사무실 운영비(연 400만원)와 직원(1명) 인건비는 각 구청에서 직접 지원한다. 지역 봉사와 선행이란 취지가 왜곡되지 않는 동시에 사회적 약자 등의 참여를 도모하기 위해 수당도 매월 4만원(회의 수당)으로 최소 지급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취지가 무색하게도 일선 주민자치회에서는 모집공고에는 나와 있지 않은 ‘회비 납부’를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향신문이 광주 5개 자치구 50여개 동의 주민자치회 운영 세칙을 들여다본 결과 모든 세칙에는 위원의 의무라는 조항에 ‘회비 납부’를 명시해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회비는 운영비 명목으로 매달 적게는 1만원에서 많게는 5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1년이나 2년 치 선납을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회비도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다. 각 세칙에는 기간에만 차이가 있을 뿐 ‘회비를 미납할 시 구청장에게 해촉을 요구하겠다’라고 적혀있다. 발로 뛰는 봉사를 희망하거나 경제적 사정이 넉넉지 못한 주민은 참여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구조인 셈이다.

회비도 대부분 회식에 쓰인 것으로 파악됐다. 명세를 보면 회식이나 다과가 운영비의 70~80%를 차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위원은 “매달 회의를 한 뒤 위원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회식을 하며 팔아주는 것이 오래된 관행”이라고 귀띔했다.

주민자치회를 그만두더라도 회비는 돌려받을 수 없다. 세칙에는 ‘납부한 회비는 주민자치회 발전을 위해 기부한 것으로 반환하지 않는다’라고 적혀있다. 전국 대부분의 주민자치회도 사정은 비슷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주민자치회 활동에 실망하고 중간에 관두는 위원들도 적지 않다. 주민자치회 대부분은 최대 정속 수에 맞춰 출범하지만, 2~3개월 이내에 약 70% 수준으로 축소돼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광주시와 자치구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주민자치회는 주민 자치권 강화가 목적으로 행정의 간섭을 최소화한 탓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실태조사를 벌여 표준안 마련 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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