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에서 게르를 찾으려면”···한국과 몽골, 주소도 같이 쓴다

주영재 기자 2024. 11. 1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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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크만라이 아난드 몽골 토지행정청 청장이 지난 7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국과 몽골은 문화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고, 오랜 협력의 역사가 있어서 더 많은 분야에서 협조할 수 있길 바래요.”

지난 7일 개막한 ‘2024 주소 미래혁신 컨퍼런스’ 참석차 한국을 찾은 엔크만라이 아난드 몽골 토지행정청 청장은 이날 경향신문과 만나 한국형 주소체계 도입이 한국과 몽골 간 협력의 폭을 한층 넓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이렇게 말했다.

몽골은 한반도의 7배나 되는 광활한 땅에 대초원과 사막, 높은 산을 품고 있다. 인구 약 345만명 중 절반은 수도 울란바토르에 모여 산다. 급격한 도시화로 도로는 정비되지 않은 곳이 많다. 약 3분의 1은 게르(전통 천막)를 이용한 유목 생활을 한다. 기후변화로 초원을 떠나는 이들이 늘면서 과거처럼 가까운 게르 거주자에게 물어 위치를 찾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정확한 위치를 모르면 사고를 당했을 때 도움을 받기 쉽지 않아요. 물건을 배송받고, 내비게이션으로 길을 안내받을 수도 없죠. 그래서 2013년부터 주소 현대화를 위해 유럽 체계를 도입하려 했으나 유목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아 큰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몽골은 그래서 도시와 지방에서 모두 촘촘하게 위치를 표현할 수 있는 주소 체계를 찾았다. 특히 건물이 없는 초원이나 허허벌판에도 지번을 부여할 수 있는 ‘공간 주소 체계’가 필요했다. 산림이나 공터, 시설물이나 실내 공간에도 지번을 부여하는 한국형 주소 체계를 몽골이 선택한 이유다. 양국 정부는 지난 5월부터 공적원조 사업으로 주소·토지행정시스템 고도화 지원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국형 주소 체계는) 도시와 지방에서 다 활용할 수 있고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우수 사례로 꼽을 정도로 정확성이 높은 시스템이었습니다.”

몽골 주소기본법이 내년 몽골 국회를 통과하면 도시에는 몽골로 3길, 게르로 8길 같은 한국식 도로명 주소가 만들어진다. 초원지대에는 땅을 바둑판처럼 10X10m 격자로 나눈 국가지점번호가 부여된다. 등산로나 산책로에서 ‘긴급전화 119’ 표시와 함께 국가지점번호를 알리는 표지판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몽골 초원의 위치도 같은 방식으로 정한다.

주소는 이제 건물 외에도 주차면, 정류장 같은 사물과 실내 공간 등에도 붙어 자율주행 차량과 로봇, 드론 배송, 실내 길 안내 등 다양한 혁신 서비스를 뒷받침하고 있다. 몽골도 이런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아난드 청장은 “몽골은 주소정보시스템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아 내비게이션이나 택배 문화가 덜 발달했다”면서 “일차적으로 한국식 주소정보시스템과 지적정보 등록 시스템을 갖추고, 그다음 단계로 공간정보 서비스를 구축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몽골을 포함해 우즈베키스탄과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베트남, 파라과이 등 7개 나라가 한국식 주소체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K주소’의 몽골 진출은 한류가 행정 분야로 확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문화적인 한류만이 아니라 한국의 행정 모델이 각 나라로 수출되는 흐름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몽골이 한류 행정 국제화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엔크만라이 아난드 몽골 토지행정청 청장(왼쪽)이 지난 5월 24일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보와 함께 몽골의 주소체계 현대화 사업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몽골 울란바토르시 서울의 거리에 지난 9월 ‘서울로(SEOUL street)’가 생겼다. 행정안전부 제공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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