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심부전·뇌졸중 공통 예방법은 ‘절염’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하루 평균 나트륨(염분) 섭취량은 2018년 3274mg에서 2022년 3074mg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김치·국·탕·찌개·면류 등 고염분 식품의 소비 감소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보건기구(WHO)의 하루 나트륨 권장량 2000mg을 넘는 수치다. 대한심부전학회도 하루 나트륨 섭취를 2300mg 미만으로 유지할 것을 권장한다. 이 정도는 약 5g의 소금에 해당하는데, 티스푼 하나 정도 분량이다.
나트륨은 우리 몸의 신진대사에 꼭 필요한 미네랄이다. 따라서 전혀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성분이지만 국내외 의학계가 나트륨 섭취를 제한하는 이유는 여러 질환 발생과 관련이 깊어서다. 특히 심장과 뇌의 혈관질환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나트륨이다. 올해 4월에도 하루 나트륨 섭취량이 1g 증가할 때마다 관상동맥 관련 사망률이 최대 13% 증가한다는 미국 밴더빌트 의대의 연구 결과가 국제 학술지(JAMA)를 통해 보고된 바 있다.
짠 음식을 먹으면 혈관에 나트륨 농도가 짙어진다. 나트륨은 물을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어 체내 수분을 혈관 내부로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결국 혈액량이 급증하면서 팔다리가 붓거나 배와 폐에 물이 차 체중이 증가하거나 호흡 곤란 증세가 나타난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나트륨이 체내 수분을 빨아들인다. 그래서 혈액량이 늘어나서 심장이 혈액을 뿜어내는 데 부담이 된다. 따라서 심장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이뇨제(수분과 나트륨 배출을 촉진하는 약물) 등으로 치료한다"고 설명했다.
혈액량이 증가하면서 생기는 증상 중 심각한 것은 혈압 상승이다. 혈압이란 혈액이 혈관에 가하는 압력을 뜻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하루 나트륨 섭취량이 4400mg에서 4700mg으로 증가한 2007년과 2011년 사이에 40대 고혈압 유병률도 16%에서 21%로 증가했다. 혈액량이 증가할수록 혈관에서 많은 공간을 차지하므로 심장과 혈관에 부하가 걸린다. 혈액을 온몸 구석구석으로 보내기 위해 규칙적으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심장은 혈액량이 늘어난 만큼 필요 이상으로 펌프질을 할 수밖에 없다. 이때 혈관 벽에 가하는 압력 즉 혈압이 증가하면서 혈관이 딱딱해지거나 탄력을 잃는다. 이에 따라 혈액 흐름에 장애가 발생하고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현상도 발생한다.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면 탄력이 줄어들어, 심장 수축과 이완 기능이 떨어진다.
누워 숨 쉬기 어려우면 심부전 의심
결국 필요한 양의 혈액을 충분히 내보내지 못하는 상태(심부전)가 된다. 심부전은 글자 그대로 심장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심장의 펌프질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이전처럼 온몸 구석구석에 필요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만일 누워있을 때 호흡이 어려워 앉아야 겨우 숨을 쉴 수 있는 상태(가좌호흡)가 되면 심부전이 진행된다는 징후이므로 급히 병원을 찾아야 한다. 빠르고 불규칙한 심장 박동, 지속적인 기침과 쌕쌕거림(가래 동반), 야간 빈뇨(소변이 자주 마려움), 갑작스러운 체중 증가 등의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이해영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특히 누워있을 때 숨이 가빠지는 증상이 나타나며 기침이 날 수도 있다. 상체를 세울수록 호흡이 편해지기 때문에 베개를 여러 개 겹쳐 베고 자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증상은 다리 부종이다. 심한 부종의 경우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데까지 1~2분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심부전 환자는 예상보다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3년 심부전 진단을 받은 사람은 약 18만 명에 달한다. 심부전 환자 10명 중 1명은 진단 후 1년 이내에 사망한다. 심부전은 암에 이어 우리 국민의 사망 원인 2위의 질환이다. 이해영 교수는 "국내 인구 약 2.6%가 심부전을 앓고 있으며, 특히 70대 이상부터 발생률이 급격히 상승하고, 80세 이상에서는 약 5명 중 1명이 심부전을 앓고 있다.
심부전이 발생하면 신체 조직으로 산소와 영양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다른 장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심부전은 급성과 만성으로 구분한다. 급성 심부전은 1주일 이내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반면, 만성 심부전은 심장 기능이 서서히 감소하면서 발생한다. 대부분의 심부전은 만성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대한심부전학회는 심장 건강을 위해 피해야 할 성분으로 지방·콜레스테롤과 함께 나트륨을 꼽는다. 일반적으로 나트륨 섭취를 하루에 1g만 줄여도 심장 혈관 이상으로 사망할 위험이 약 30% 감소한다. 나트륨 섭취를 하루 3g 미만으로 유지하면 고혈압약을 복용하는 것만큼의 사망률 하락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태정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심장 박동이나 말초 혈관 저항 등 고혈압과 관련된 요소가 많은데, 나트륨도 그중 하나다.
고혈압으로 인해 혈관이 손상되면 심부전뿐 아니라 뇌졸중 위험도 증가한다. 혈압을 낮추는 것은 심부전과 뇌졸중 등 심장과 뇌의 혈관질환 모두를 예방하는 방법이다. 나트륨 섭취를 조금만 줄여도 수축기 혈압이 4~6mmHg 감소한다. 혈압을 10mmHg 낮추면 심장과 뇌의 혈관질환을 20~30% 예방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나트륨 섭취를 줄이는 식습관은 심장과 뇌의 혈관질환 위험을 확실히 낮춘다"고 강조했다.
지방과 콜레스테롤은 주로 육류에 많으므로 육류 섭취를 줄이면 지방과 콜레스테롤 섭취량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런데 나트륨은 거의 모든 음식에 함유돼 있어 섭취량 조절이 말처럼 쉽지 않다. 식빵·시리얼·코코아·단무지·올리브·스포츠음료 등 짠맛이 느껴지지 않는 식품에도 다양한 형태로 나트륨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식품 포장지에서 영양성분표를 살펴볼 것을 권한다.
식품 포장지에서 '염분(salt)' 또는 '나트륨(sodium)' 표기를 확인하고 저나트륨 함유 식품을 구매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1회분당 350mg 미만의 나트륨이 함유된 식품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또 포장지의 영양성분표에서 나트륨이 5번째 이내로 표기돼 있다면 나트륨 함량이 높다고 봐도 무방하다. 라면·햄·소시지·베이컨·치즈·통조림·토마토주스·육포 등 가공식품은 대부분 고나트륨 식품에 속한다.
음식을 조리할 때는 소금·소스·간장 등을 되도록 적게 사용하고 레몬즙·라임즙·식초·허브·오향분(생강가루와 계핏가루 등을 섞은 향신료) 같은 저염분 조미료를 사용해 간을 맞추면 나트륨 섭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샐러드·파스타·구운 생선에는 파슬리 가루나 말린 허브로 맛과 향을 더할 수 있다. 식탁에 소금통을 두고 국이나 찌개에 소금을 추가하는 가정은 소금통부터 치울 필요가 있다.
간혹 나트륨 함량이 높은 라면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이때 국물을 먹지 않으면 나트륨 섭취를 줄일 수 있다. 국·찌개·탕을 먹을 때도 숟가락 대신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국물을 적게 먹는 식습관은 나트륨 섭취 총량을 줄이는 방법이다. 통조림을 먹을 때는 용기에 있는 물기를 빼고 한 번 헹궈 염분을 제거하는 것이 좋다. 문제는 외식과 배달 음식을 통한 나트륨 섭취가 많다는 점이다. 바깥에서 사먹는 음식과 이미 조리된 음식에는 맛을 위해 소금이 많이 들어있다. 음식을 주문할 때 소금을 적게 넣어 달라고 부탁하거나 나트륨 함량이 적은 메뉴를 추천받는 것이 좋다.
국과 찌개는 숟가락 대신 젓가락으로
평생 짜게 먹던 식습관이 몸에 밴 사람이 하루아침에 싱겁게 먹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일단 저염식을 시도하면 기존의 짠맛에 가려져 맛보지 못했던 식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식재료 고유의 맛에 익숙해질수록 혈관질환 위험은 줄어든다. 나트륨 외에도 탄수화물·당분·동물성 지방 섭취를 줄이면 혈관질환 예방에 더 효과적이다.
탄수화물과 당분이 많은 식품은 체내의 인슐린 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 인슐린은 체내에 지방을 저장하게 만든다. 그로 인해 혈관에 지방과 콜레스테롤 등이 쌓여 혈액 흐름을 방해한다. 탄수화물과 당분 함량이 많은 식품으로는 감자·흰 빵·패스트푸드·탄산음료·사탕·케이크 등이 있다. 채소·과일·통곡물은 탄수화물과 당분뿐만 아니라 나트륨 함량도 낮다.
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주기적인 건강검진, 특히 심장초음파 검사와 혈액검사가 중요하다. 고혈압약을 복용하는 사람은 혈압이 정상인 사람만큼 심장질환 위험이 줄어들므로, 약 복용을 임의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 이해영 교수는 "심부전 환자의 10%가 1년 이내에 상태가 악화될 수 있지만, 반대로 90%는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약을 잘 복용하고, 하루 나트륨 섭취를 철저히 조절하며, 꾸준히 운동하면 건강한 심장을 유지할 수 있다. 또 가족이 환자를 위해 덜 짜게 먹는 식습관을 유지하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도록 도와준다면 심부전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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