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기분 내면서 볼래요"…영화계 불만 터진 이유 [무비인사이드]

김예랑 2024. 11. 1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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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등장에 유통 정책 꼬였다"
영화 '홀드백' 법제화 목소리
영화계 "홀드백 시행 되야"
산업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
일각에선 "반시장적 제도" 의견도
사진=뉴스1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와 같은 뉴미디어 매체가 등장하면서 한국 영화 산업의 관행이 실험에 들어갔고, 나쁘게 말하면 유통 정책이 꼬였습니다. 어제 극장에서 1만 5000원 주고 본 영화를 오늘 보니 OTT에서 하고 있는 겁니다."

극장, 제작사, 배급사, 투자사 등 영화계 관계자들은 '홀드백' 제도의 법제화가 절실하다며 이같이 입을 모았다.

홀드백은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가 IPTV,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에 유통되기까지 유예 기간을 두는 제도를 말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 산업이 침체에 빠지고 극장 수입이 급감하면서, 정부와 영화계 간의 홀드백 기간 조정 논의가 활발해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팬데믹 이전 극장 개봉 영화는 통상 1~3개월, 짧게는 2~3주 만에 타 플랫폼으로 공개됐지만, 최근에는 이 기간이 크게 줄거나, 극장과 동시 상영 혹은 곧장 IPTV나 OTT로 직행하는 영화도 늘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OTT에서 공짜의 기분으로 영화를 볼 수 있어 극장에 굳이 가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컨슈머인사이트가 진행한 영화 소비자 행태 조사에 따르면 3∼4년 전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횟수가 감소했다는 응답은 61%로, 증가했다는 응답(16%)보다 훨씬 많았다.

영화계는 홀드백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OTT 업계는 시청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명량', '한산', '노량'의 김한민 감독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한국영화 활력충전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제가 아무리 이순신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떠들어 대도 '조금만 기다리면 안방에서 볼 수 있을 텐데' 하고 극장에 안 간다. 그래서 고뇌에 빠진 것"이라고 토로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극장 중심의 배급을 중시해 홀드백 기간이 가장 긴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이들도 OTT의 급성장에 위기를 느끼고 있으나 홀드백 기간을 조정해 '공생'을 택했다. 프랑스는 극장 개봉 후 4개월에 VOD 제공, 17개월 후 유료 TV 채널 제공, 36개월 후 무료 방송 및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공개된다.

김 감독은 프랑스를 예로 들며 "외국은 홀드백 기간을 최소 1년은 지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최소한 6개월은 지켜야 하지 않나 싶다"고 주장했다. 그는 "홀드백 기간이 법제화가 되고 공적 자금이 투입되면 한 해 동안 50편 이상의 제작 편수를 유지하고 극장가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식 한국영화관산업협회 본부장은 "제일 중요한 건 콘텐츠다. 콘텐츠가 있어야 영화관을 운영할 수 있다. 홀드백 제도가 콘텐츠의 가치를 키운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영화 감상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예전과 같은 '영광'을 되찾기 어렵더라도, 극장의 급격한 쇠퇴로 영화 산업 전체가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홀드백이라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외국 영화인들이 홀드백이 없는 한국을 보며 이렇게 하면 영화 생태계가 망가진다는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홀드백은 프로세스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며 "홀드백 제도가 있어야 OTT 쪽에서도 한국 영화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려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한국 영화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홀드백을 통해 극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문화적 측면도 반영돼 있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많은 관객이 큰 스크린 앞에 모여 함께 감상하는 경험적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가 흥행에 실패할 경우 IPTV와 OTT 등으로 빨리 플랫폼을 갈아타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홀드백에 묶이게 되면 극장에서 스크린을 배정받지 못한 채 시간만 축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홀드백 기간이 끝나 다른 플랫폼으로 공개되더라도 이미 '옛날 영화'라는 인식이 생겨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홀드백을 도입한다면, 소수 인기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OTT 업계에서는 홀드백 의무화가 추진되면 그에 따른 이익이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한 대형 영화관에 집중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수 소비자의 편익을 희생시켜 소수 기업의 이익을 보장하는 반시장적 제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인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홀드백을 입법화하려면 의원들과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들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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