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병뚜껑의 톱니는 왜 '21개'일까

정혜인 2024. 11. 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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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병의 밀폐·개봉 위한 병뚜껑
내용물 재주입 방지·납세증명의 역할도
환경 위해 현재도 다양한 변화 중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채영이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은 '아파트'지만, 제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좋아하는 게임은 병뚜껑을 이용한 게임입니다. 돌아가면서 병뚜껑의 '꼬리'를 친 후 떨어뜨리는 사람이 벌주를 마시고, 곧바로 뚜껑 안쪽의 숫자를 맞추는 게임이죠.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이 게임을 하다가 우연히 병뚜껑을 유심히 살펴보게 됐습니다. 평소엔 그렇게 관심을 갖지 않았었던 병뚜껑에도 여러 형태가 있었고 뚜껑 위에 인쇄된 이상한 그림도 있더군요. 그래서 병뚜껑에 담긴 몇 가지 기능들을 알아봤습니다.

음료를 지켜라

병뚜껑의 기본 역할은 병을 '밀봉'하는 겁니다. 병의 내용물이 새지 않으면서 또 변질이 되지 않도록 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병을 틀어막기만 한다면 아무 단단한 소재를 가져다가 뚜껑을 만들면 되겠죠. 나중에 다시 내용물을 꺼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병뚜껑은 밀폐와 개방을 동시에 고려한 소재와 디자인으로 만들어집니다.

병뚜껑을 발명한 사람은 미국인 '윌리엄 페인터(William Painter)'로 알려져 있습니다. 페인터는 1892년 병에 담긴 맥주나 탄산음료에서 탄산가스가 빠져나가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금속 마개를 만들었습니다. 이 금속 마개의 둘레가 톱니 형태로 돼있어 '왕관(Crown)'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페인터는 이 뚜껑을 '크라운 코르크(Crown cork)'라고 불렀고, 그가 만든 같은 이름의 패키징 회사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이 뚜껑은 흔히 '크라운 캡(Crown cap)'이라고 부르는데 지금도 흔히 병맥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크라운 캡은 전 세계에 통일된 규격이 있습니다. 바로 병뚜껑 둘레의 톱니 수가 '21개'라는 점인데요. 톱니 수가 이보다 적으면 탄산을 병 안에 완벽히 가두기 어렵고, 반대로 톱니 수가 너무 많으면 뚜껑이 병의 입구를 꽉 물어 열기가 어렵다고 하네요.

크라운 캡에는 두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병따개가 있어야 열 수 있는 있다는 점, 그리고 한번 개봉하면 형태가 구부러져 재사용을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트위스트 오프 캡(Twist off cap)' 혹은 '스크루 캡(Screw Cap)'이 등장했습니다. 돌려서 닫거나 열 수 있는 형태로, 1950~1960년대에 대중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는 병따개 없이도 병을 열 수 있고, 개봉 후 한번에 병의 내용물을 소비할 필요도 없어졌죠. 지금 가장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플라스틱 병뚜껑도 트위스트 오프 캡 형태고요. 일부 병맥주도 납작한 금속 스크루 캡을 사용합니다.

위조와 세금

병뚜껑의 또 다른 기능은 '위조 방지'입니다. 돌려서 따는 형태의 트위스트 오프 캡은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지금도 왕관 모양의 크라운 캡이 선호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위조가 어렵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죠.

병뚜껑에 달려 있는 꼬리는 이런 위조 방지를 위해 도입됐습니다. 병뚜껑 하단을 보면 뚜껑을 비틀어 딴 후 뜯어져 남게 되는 '고리'가 있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술게임을 할 때 사용하는 철사 형태의 꼬리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변조 방지 밴드(Tamper-evident band), 위조 방지 링(Pilfer proof ring), 파손 방지 밴드(Break-away band) 등으로 불리는데, 제조 현장에서는 이 부분의 모양 이름을 따 그냥 '링(Ring)'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뚜껑을 개봉하면 이 링이 뜯어지기 때문에, 링 상태만 봐도 병이 개봉된 적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위스키의 경우 재주입과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뚜껑을 여러 차례 발전시켜 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이탈리아 회사가 개발안 '구알라 캡'인데요. 병 안에 두 개의 구슬이 들어있어 병을 기울일 때는 통로를 열고 재주입할 때는 막아버리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이외에 위스키병 뚜껑에 추를 달고, 뚜껑을 열면 이 추가 병 안으로 떨어지는 방식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병뚜껑을 '세금 납부의 증명'으로도 활용합니다. 1972년 도입된 납세병마개 제도 때문인데요. 주세납세증명표지에 관한 명령 위임 고시 제2조에 따르면 주류 제조자가 주류를 출고할 때에는 용기에 주세 납세 사실을 증명하는 주세납세증지를 부착해야 합니다. 납세병마개를 사용하면 납세증지를 부착한 것으로 인정해줍니다. 그래서 소주와 맥주 병뚜껑에는 '납세필'이라고 적힌 그림이 새겨져 있죠. 

예전에는 이와 비슷하게 먹는샘물(생수)의 병뚜껑에도 수질개선분담금 납부증명 표지를 인쇄해야 했는데요. 이 제도는 지난 2012년 규제일몰제를 통해 3년 후 최종적으로 폐지됐습니다.

병뚜껑의 진화

병뚜껑의 형태는 최근에 또 변화하고 있습니다. 바로 '환경' 때문인데요. 소주 병뚜껑의 링이 두 가닥으로 찢어지도록 바뀐 것이 대표적입니다. 원래 소주 병뚜껑의 링은 뚜껑 끝단에 한 가닥으로 붙어있도록 떨어집니다. 일반 페트병의 경우 뚜껑을 연 후 링이 고리 형태 그대로 병목에 남는 것과는 다릅니다.

문제는 소주병의 경우 페트병처럼 이렇게 병목에 고리가 남아있으면 빈 병의 재활용이 불편하다는 점입니다. 병에 이 고리가 남으면 추가 인력을 들여 떼어내야 하니 효율이 떨어지죠.

링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진로' 병뚜껑. 납부증지도 볼 수 있다. / 사진=정혜인 기자 hij@

그래서 일부 소주업체들은 2020년 말부터 뚜껑의 링이 양갈래로 벌어지도록 개선한 병뚜껑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가닥으로 떨어지면 병목에 링이 남지 않고 깔끔하게 떨어집니다.

소주뿐만 아니라 페트병에서도 병뚜껑 링과 관련한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페트병의 링은 뚜껑에서 완전히 떨어져 병목에 남게 되는데요. 이러면 페트병과 뚜껑이 완전히 분리됩니다. 페트병의 분리수거를 잘 하는 경우라도 이 뚜껑은 일반쓰레기로 버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별도로 버려진 뚜껑은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아리수에 도입된 일체형 뚜껑. / 사진=서울시

그래서 유럽연합(EU)은 지난 7월부터 뚜껑과 링이 분리되지 않는 '뚜껑 일체형 페트병'을 의무화 하고 있습니다. 뚜껑이 링에서 떨어지지 않으니 계속 페트병에 매달려 있게 되고, 분리배출 시 더 편리합니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는 음료를 마실 때 걸리적거려 불편할 수 있죠. 음료제조업자 입장에서는 비용이 더 든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을 위해서는 필요한 변화입니다.

국내에서도 이런 일체형 뚜껑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단수나 재난지역 지원을 위해 비축·공급하는 '병물 아리수' 등에 이런 일체형 뚜껑이 사용되고 있지만 일반 음료 상품에서는 아직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그래도 많은 소비자들과 기업들이 노력하고 있는 만큼 이런 일체형 뚜껑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날이 오겠죠. 일체형 뚜껑에서 더 나아가 보다 친환경적인 변화도 계속 이뤄질 겁니다.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마실 때, 친구들과 저녁 자리에서 술게임을 할 때 병과 병뚜껑에 담긴 이런 노력들을 살펴보셨으면 좋겠네요.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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