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공개 못했던 '사채꾼' 악랄한 문자: 텍사스촌 여종사자 죽음 後 [그림자 밟기]

홍승주 기자 2024. 11. 1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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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홍기자의 그림자 밟기
성매매 여종사자 극단적 선택 後
“몸 파는 사람”이란 내용의 문자
딸 다니는 유치원 교사에게 전달
불법사채, 성매매 착취 얽힌 죽음
더스쿠프 보도 후 서울시가 나서
성매매 여종사자 보호 대책 마련
불법사금융 뿌리 뽑는 계기 돼야

지난 10월 12일. 더스쿠프는 불법추심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매매 여종사자의 죽음을 보도했다. 그녀는 어린 딸이 다니는 유치원 교사에게까지 전달된 '악랄한 문자'를 본 뒤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했다. 이 보도는 파장을 일으켰고, 서울시가 나섰다. 성매매 여종사자를 불법 사금융에서 보호하는 대책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그럼 불법추심은 얼마나 악랄했던 걸까. 그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얘기를 공개한다.

서울시가 성매매 집결지를 대상으로 불법채권주심으로 인한 피해 실태 조사에 나선다.[사진 | 연합뉴스]

서울시가 성매매 여종사자를 불법 사금융에서 보호하는 대책을 마련한다. 시는 성매매 집결지를 대상으로 불법채권추심에서 비롯된 피해 실태를 조사하기로 했다. 아울러 집결지에 스피커를 설치해 '불법추심을 신고하라'는 내용의 안내방송을 내보낼 계획이다. 로고 라이트를 설치해 홍보도 강화한다.

이런 계획의 계기를 마련한 건 지난 10월 12일 더스쿠프의 보도(어린 딸 유치원에 도착한 문자: 누가 텍사스촌 여종사자를 죽음으로 몰았나ㆍ619호)였다. 서울시는 이 보도를 계기로 성매매 여종사자를 괴롭히는 '불법 사금융' 문제를 살피기 시작했다.

반응은 긍정과 부정이 교차한다. "취약계층을 살피는 정책이 나왔다"는 의견과 "본인이 선택한 성매매 여종사자가 무슨 취약계층이냐"라는 주장이 맞부딪친다. 관점은 각자의 몫이지만, 공히 살펴야 할 건 있다.

불법대출의 악랄한 덫이다. 성매매 여종사자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도 그 무시무시한 덫에 걸릴 수 있어서다. 더스쿠프 취재팀도 '텍사스촌 여종사자의 죽음'을 취재할 때 불법대출의 잔인함에 혀를 내둘렀다. 악랄함의 수위가 너무 높아서 차마 공개하지 못한 내용도 숱하다.

■ 악랄함의 덫 = 더스쿠프가 보도한 사건을 복기해보자.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홀로 키우던 A씨는 지난여름께 '살인적인' 이자가 붙는 불법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 그 과정에서 가족관계증명서, 휴대전화 속 지인의 연락처, 사진 등을 사채업자에게 담보로 넘겼다.

A씨가 돈을 갚지 못하자 '불법추심'이 시작됐다. 지난 9월 9일 불법대부업체는 A씨의 지인들에게 "A씨가 미아리에서 몸을 팔고 있으며, 지인들의 개인정보를 팔고, 대부업체에서 돈 빌리고 잠수를 탔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 문자는 A씨의 부친ㆍ친척뿐만 아니라 그녀의 딸이 다니는 유치원 교사에게까지 날아갔다. 문자만이 아니었다. 유치원엔 문신으로 팔뚝을 채운 사채꾼들이 드나들기도 했다. A씨는 견디지 못했다. 10여일 후인 9월 22일 A씨는 전라도의 한 펜션에서 스스로 숨을 끊었다.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엄마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A씨의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딸 민지(가명)를 보고 오는 날이면, 사진을 잔뜩 찍어 와, '언니, 민지 먹는 것 좀 보세요. 저는 민지 덕분에 살아요'라고 말하곤 했어요. 피보다도, 살보다도 중요한 딸내미를 두고 눈을 감았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찢어져요."

A씨의 지인들에게 사채업자가 보낸 문자.[사진 | 더스쿠프 포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남긴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불법대부업체는 A씨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당시 불법대부업체가 A씨의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는 '악랄함'을 넘어선다. 첫번째 보도 때 우리가 공개하지 않은 문자의 한 토막을 보자. A씨의 아버지ㆍ딸이 함께 앉아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부는 사진과 함께 전송된 문자다.

"XXX, XXX아. 빌려간 돈 갚아라. XXX 개버러지X은 가족 지인들 개인정보 팔고 다니면서 여러 대부업체에 돈 빌리고 잠수를 탔습니다. XXX 아버지 XXX씨. 얘 몸 팔고 다니는 X인 건 아시나요? 이 X은 몸 판 돈과 대부업체에서 빌려간 돈으로 도박중독과 룸을 다니며 탕진하고 있습니다. 미아리 고객정보든 뭐든 다 이X이 넘긴 거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소가 가능하니 고소하고 합의금 받아가세요. 딸내미 XXX은 뭔 죄냐 XXX아. 너 같은 엄마 만나서. 제가 평생 추심합니다. X같은 상황 생기면 XXX이나 아비한테 XX하세요."

■ 사람 잡는 담보 = 불법대부업체가 이런 인면수심의 문자를 '이례적으로' 보낸 건 아니다. 돈을 갚지 못하는 이들을 협박하는 불법대부업체의 '통상적 절차'다. 실제로 불법대부업체는 금전을 빌려줄 때 차주借主에게 개인정보와 사진, 지인 연락처를 담보로 요구하고,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SNS에 공개한다.

A씨에게도 그랬다. A씨를 협박할 당시 불법대부업체 일당은 그의 개인정보와 사진을 편집한 동영상을 SNS에 올렸다. 동영상에서 A씨는 한장의 종이를 들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돈을 갚지 않을 시 가족, 지인, 회사 동료에게 연락을 해 채무독촉을 해도 무방함." 공교롭게도 이 SNS 계정엔 다른 피해자의 동영상도 함께 있었다. 이는 불법대부업체의 악랄함이 A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시사한다.

불법사채 상담을 받아본 A씨의 동료 B씨는 "봉고차에서 만났는데, 휴대전화를 빼앗아 자주 연락한 연락처 10개가량을 적어갔다"면서 말을 이었다. "100만원을 빌리려고 했는데, 수수료 15만원을 요구하고, 상환기간이 지나면 일주일에 이자 20만원이 붙는다고 했어요. 상환기간을 시간까지 정해주고, 시간을 넘기면 이자가 1분에 10만원씩 붙이는 곳도 있었죠."

■ 불법사금융과 금융취약계층 = 불법대부업체 이용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금융취약계층이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 6월 서민금융연구원이 발표한 '저신용자 및 우수대부업체 대상 설문조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에서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이동한 저신용자(6~10등급)는 최소 5만3000명에서 최대 9만1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조달한 금액은 8300억~1조4300억원으로 추정됐다.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 이들의 77.7%는 '불법인 줄 알면서도 돈을 구할 방법이 없어 불법 사금융을 이용했다'고 답했다. 급전急錢이 필요한 이들은 위험성을 알면서도 불법대출의 문을 두드린다는 건데, 사채업자의 시선도 당연히 금융취약계층을 향해 있다.

그들의 먹잇감은 미아리 텍사스촌 같은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여종사자만이 아니다. 경기침체를 이겨내지 못하고 급전이 필요해진 사람도 어찌 보면 사냥감이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시가 성매매 여종사자를 비롯한 금융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건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성매매 여종사자는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성매매 사실을 알린다는 협박을 들을 수 있는 입장이어서 불법사금융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 면에서 금융취약계층도 마찬가지다. 급전이 필요한 이들은 불법사채의 덫에 걸려들 확률이 높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불법사금융의 뿌리를 뽑는 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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