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바이오워치]비만약이 환경을 해친다면?
재활용 속 친환경 방식 더 고민해야
전 세계적으로 비만약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노보노디스크의 비만약 '위고비'가 출시됐는데요. 발매 당일 국내 유통사 홈페이지가 1시간가량 마비되고 품귀현상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불법유통 단속에 나서는 광경이 펼쳐졌죠.
비만약 수요가 늘면서 폐플라스틱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습니다. '삭센다', 위고비와 같은 비만약은 일회용 플라스틱 재질로 감염 등의 문제로 재활용이 쉽지 않은데요.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요?
인슐린 펜으로 빚은 꽃병
사진 속 꽃병에는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노보노디스크가 펜형 인슐린 등의 제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로 만들었다는 사실이죠. 이 꽃병 주변에 있는 책상과 직원들의 목에 걸려있는 사원증도 모두 플라스틱 쓰레기를 업사이클링(새활용)한 것입니다.
노보노디스크는 환자들이 다 쓴 주사기도 직접 수거해 재활용하고 있는데요. 이 프로젝트는 현재 덴마크, 일본 등 7개 국가에서 '리메드'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환자들이 사용한 주사기를 직접 수거한 후 의자나 책상 같은 가구로 재탄생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든 책상이나 화분은 누구나 구매할 수 있습니다. 노보노디스크의 파트너사인 웰러는 약 140개의 인슐린 펜으로 만든 스툴(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의자)을 자사의 홈페이지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가격은 한화로 약 40만원 정도입니다.
노보노디스크가 이러한 활동에 나선 이유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 204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재 노보노디스크는 연간 8억개 이상의 자가투여형 주사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의 무게만 1만4000톤(t)에 달한다고 합니다. 최근 비만약 열풍에 프랑스와 미국 생산공장을 증설하면서 주사기 생산량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글로벌 제약사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입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노보노디스크는 자가투여주사제 제품을 만드는 경쟁사인 사노피, 일라이릴리, 머크와 손잡고 덴마크에서 폐주사기를 함께 수거해 재활용하는 내용의 이니셔티브를 발족하기도 했습니다.
"다회용 주사기가 더 친환경적"
이러한 업사이클링 활동만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실제 노보노디스크가 2020년부터 진행한 업사이클링 활동으로 재활용한 제품은 전체 생산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1%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욱 큰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일회용이 아닌 약물 카트리지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여러 번 쓸 수 있는 다회용 자가투여주사제 제품군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실제 영국의 엑서터대학 연구진이 지난 7월 발표한 연구에서 다회용 인슐린펜은 일회용 제품과 비교해 플라스틱 쓰레기를 89%, 탄소발자국(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0%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용이 조금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지만 가격도 더 저렴했죠.
복용기간을 늘린 제품을 개발하는 것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투여하는 제품이 하루에 한 번 맞는 것보다 배출하는 쓰레기양이 더 적겠죠. 복용방법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대안입니다. 영국 뉴캐슬대 연구진에 따르면 먹는 약은 주사제보다 생산과 사용, 폐기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이 낮게 나타났습니다.
"죄 짓는 느낌"…갈 길 먼 친환경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인구고령화로 국내에서도 당뇨병과 같이 자가투여주사제를 사용하는 환자 수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내외 제약사들의 모습은 보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노보노디스크도 업사이클링 프로그램에서 한국을 포함하지 않고 있죠.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2012년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는 국내에서 다 쓴 인슐린펜 30만개를 수거해 만든 예술작품을 서울 광화문 광장에 전시한 적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활동은 2013년을 기점으로 소식이 끊겼습니다.
최근 사용량이 가파르게 늘고 있는 성장호르몬제의 경우 동아에스티, LG화학 등 국내 제약사의 제품이 많이 쓰이고 있는데요. 보통 1년 이상 처방받아야 하는 약물의 특성상 쓰고 남은 폐주사기를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습니다.
성장호르몬 치료를 받는 자녀들의 부모가 모인 인터넷 카페를 보면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이 나와 죄짓는 느낌이 든다", "일반쓰레기에 버려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LG화학은 동아에스티와 달리 일회용 자가투여주사제만을 판매하고 있는데요. 최근 일주일에 한 번 투여하는 '유트로핀플러스'의 판매를 중단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고민이 더 커진 상태입니다.
LG화학 관계자는 "저희 제품은 일회용으로 사용하기 편하지만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며 "현재 친환경 경영 측면에서 다회용 주사기 제품 개발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 쓴 주사기를 자체적으로 수거할 계획은 두 회사 모두 없다고 답했습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주사기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제법 많이 나오는 데 이는 의료 폐기물로 분류되지 않아 재활용할 수 있다"며 "주사침을 분리한 성장호르몬제도 의료 폐기물로 분류되지 않아 다른 용도로 재활용할 수 있지만 아직 이러한 시도가 없어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김윤화 (kyh9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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