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T.》는 어떻게 빌보드 정상을 조준했나
(시사저널=김영대 음악 평론가)
대중음악은 언제나 반전의 미학이다. 뻔해 보이는 국면을 만드는 척하지만 그 안에는 결국 사람들의 예상을 빗나가는 순간을 통해 긴장을 부여해 흥미를 유지시키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 옛날 비틀스의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I Want to Hold Your Hand)》가 그랬고,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Billie Jean)》과 마크 론슨의 《업타운 펑크(Uptown Funk)》가 그랬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APT.》가 딱 그렇다. 이 노래에는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의 반전이 담겨 있다. 때로는 미묘하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그리고 대중이 그걸 의식적으로 알아채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 반전의 순간 모두가 이 엄청난 히트곡의 중요한 성공 이유가 된다.
기대감 충족시키기, 무너뜨리기
일단 로제와 브루노 마스라는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아티스트의 조합부터 하나의 파격이다. 로제는 세계 최고의 걸그룹인 블랙핑크의 메인보컬이다. 알앤비와 힙합을 베이스로 둔 모던한 보이스, 걸크러시적인 화려함, 그야말로 고급 명품 브랜드와 같은 고급스러움이 강점인 팝 디바다. 블랙핑크 시절의 히트곡들은 물론이고 솔로로 발표한 《온 더 그라운드(On the Ground)》와 같은 곡에서도 확인되는바, 개성 있고 세련된 발성과 크지 않은 체구로 무대를 가득 메우는 조용한 카리스마는 로제를 특별하게 만든다.
브루노 마스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마이클 잭슨의 후예인 그는 금세기 최고의 알앤비 팝 스타라 불려도 무리가 없다. 과거와 현재를 쉼 없이 오가는 실로 다양한 레퍼토리와 압도적인 가창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로제와 브루노 마스를 나란히 놓고 생각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양국을 대표하는 팝 스타지만 어쩐지 평소에 쉽게 떠올리지 못했던 조합이다. 두 사람의 음악을 익히 아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신선한 반전이 된다. 협업의 의도는 노래가 시작도 하기 전에 성공이다.
로제의 장난기 넘치는 인트로에 이어 화제의 후렴이 등장한다. '아파트, 아파트…'. 두 번째 반전이다. '아파트먼트(Apartment)'라는 영어를 아파트라고 발음한다는 것을 모르는 외국인, 특히 영어권 외국인들에게는 아시아의 흑마법 주문처럼 들려도 이상할 게 없을 이 노래의 후크는 조금의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뇌리에 박혀버린다. 그야말로 근래에 듣기 어려웠던 압도적인 중독성의 체험. 《강남스타일》을 비롯해 팝 음악 역사에 존재했던 모든 후크 중심의 히트곡들이 그러했듯, 이 노래는 그 후렴구에 대한 어떤 종류의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메시지가 아니라 '아파트'라는 일종의 콩글리시가 전달하는 소리의 청각적 쾌감인 것이다. 그 청각적 쾌감은 '사운드'로서 음악이 갖는 매우 고유하면서 절대적인 매력이기도 하다. 자, 듣는이가 아파트라는 말을 듣고 게임을 떠올리든 건물을 떠올리든, 심지어 윤수일이 부른 동명의 과거 히트곡의 리메이크로 착각을 했든 이 후렴의 의도는 충분히 성공적이다. 주의를 끌고 잠깐 떠올리게, 심지어 착각하게 하지만 깊은 생각으로 빠지지는 않아야 한다. 대중적 히트곡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과도 같다. 흥미로운 건 이 장난스럽고 유쾌하기 그지없는 후렴구가 로제와 브루노 마스라는 A급 팝 스타들의 목소리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그것도 화면을 가득 메우는 B급 감성의 연출과 함께. 사람들의 기대감을 기분 좋게 무너뜨리는 훌륭한 대비는 반전의 쾌감을 선사한다.
새삼스럽게 들리겠지만 《APT.》는 이 같은 재미적 요소를 제외하고 곡 자체의 구성만을 볼 때도 충분히 훌륭한 팝 트랙이다. 대다수의 '후크송'이 반복적인 후크 그 자체에 집착해 전체적인 노래의 밸런스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데 반해, 이 곡은 3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펼쳐지는 후크와 솔로 파트의 퀄리티가 빼어나면서도 그 전개가 지루할 틈 없이 대단히 다이내믹하다.
'아파트'를 외친 후크 부분을 지나 음악적인 반전을 이뤄내는 벌스(Verse)부에선 살짝 반항기가 섞인 펑크록적인 발칙함이 흥미로우며, 이어지는 멜로디 파트는 요즘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주류 팝에서 한창 유행하는 레트로 팝 스타일의 호소력이 착 달라붙는다. 그리고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서로 한 번씩 벌스를 주고받으면 이 노래의 또 다른 핵심인 시원하면서 로킹한 후렴으로 이어지는데 여기까지 오는 시간이 불과 1분30초 정도다.
로제의 절묘한 신호 구호에 맞춰 또 한 번의 유쾌한 분위기 전환을 이루어낸 곡은 로제의 시원한 고음과 브루노 마스의 화음을 조화롭게 매치시키며 노래가 의도한 논리를 성공적으로 매듭짓는다. 간주부나 애매한 반복 없이 브루노 마스의 파트와 '아파트' 후크를 외치는 것만으로 노래는 짧은 순간을 화끈하게 불태우는데, 이 모든 것이 불과 2분50초 안에 벌어진 일이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간결하면서도 느낌 있는 팝 트랙을 만드는 마스터클래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곡이 현재 빌보드 싱글 차트의 정상을 조준하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로제와 채영의 공존이 주는 경쾌함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보자. 이 노래는 별안간 '채영이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이라는 인트로로 시작된다. 아주 짧은 인트로지만 이 안에는 이 노래가 갖는 중요한 성격이 제법 꼼꼼하게 제시돼 있었다. 일종의 스포 아닌 스포인 셈이다. 블랙핑크의 로제가 아닌 본명 '채영'이 언급되는 것도 독특하거니와 이 노래가 '게임'임을 언급하는 것도 그렇다. 그것도 그냥 게임이 아니라 '랜덤' 게임.
이 키워드들은 하나도 허투루 지나감 없이 그대로 노래로 표현된다. 이 노래는 팝스타 로제보다는 한국인 '박채영'에게 어울리는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뮤직비디오는 시종일관 그가 뛰고 놀고 연주하는 모습을 경쾌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에도 반전이 있다. 화려한 뮤직비디오나 화보가 아닌 일상적인 콘텐츠 속 그의 모습에 익숙한 팬들에게 이는 가식적이지 않고 진솔한 로제의 익숙한 모습 그 자체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에 호응하는 브루노 마스의 몸짓을 나란히 보면 이건 결국 슈퍼스타 로제의 뮤직비디오라는 당연한 '현타'를 느끼게 된다.
리얼리티 같으면서도 판타지스러우며 자연스러운 두 세계관의 충돌은 팝 음악이 가진 평범함과 특별함의 양면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 노래는 또 하나의 의도치 않은 반전을 이뤄낸다. 윤수일의 노래로 익숙한, 경제성장의 와중에 한국의 발전상과 모던함을 상징하는 로망으로서의 공간이었던 대중음악 속 아파트가 갖는 상징성은 《APT.》 속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힙하고 경쾌한 몸짓을 통해 유희와 젊음, 그리고 게임의 공간으로서 하나의 레이어를 추가하는 데 성공한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팝 스타를 유쾌한 게임 파트너로 부리는 사치를 누려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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