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빤 왜 국산차 몰아 부끄럽게”...한국 저출산, ‘천박 과시문화’가 부추긴다? [한중일 톺아보기]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4. 11. 1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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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톺아보기-148]
[사진=매경DB]
국내에서는 올해부터 신규 등록·변경하는 8천만원 이상의 법인 차량에 대해 ‘연두색 번호판’을 달게 하는 정책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해당 정책으로 이 같은 고가 법인차 등록 대수가 뚝 떨어진 한편, 다운계약서를 작성하는 ‘꼼수’ 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소식에 영미권 최대 소셜미디어(SNS)중 하나인 ‘레딧’ 에는 다음과 같은 네티즌들의 반응이 잇따랐습니다.

“한국인들이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얼마나 민감한지 알 것 같다”

앞서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FT), 미국 블룸버그 등 서구 레거시 미디어들도 유사한 이슈에 대해 보도한 바 있습니다. 지난 4월 FT는 한국에서의 연두색 번호판 도입 소식과 함께 이것이 “한국사회의 과시적 소비문화를 억제하려는 정부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7월에는 “몽클레르 패딩이 교복처럼 된 한국”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부모들이 앞다퉈 어린 자녀들에게 고가의 의류를 사주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다뤘습니다. FT는 한국이 초저출산에도 불구하고 아동용 럭셔리제품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시장중 하나라는 사실을 짚으며 이 같은 현상 이면에 과시욕, 소득 증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서만 있는 단어 ‘하차감’...벤츠·BMW 등 전세계서 가장 많이 팔려
챗GPT가 생성한 이미지.
최근에는 일본 매체에서도 세계에저 제일 낮은 출산율의 요인으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과시 및 허세 문화’를 지적했습니다. 서로를 비교하고 과시하는 등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분위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소득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도록 부추키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한국이 벤츠, BMW를 비롯해 고가의 수입차들이 다른나라들에 비해 특이하게 많이 팔리는 시장이란 건 맞습니다.

예컨대 현재 벤츠 S클래스와 마이바흐의 판매량은 한국이 중국에 이어 전세계 2위인데, 인구 대비로 따진다면 사실상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리고 있는 셈입니다. 지난해 영국 벤틀리의 전세계 판매 대수에서도 한국시장은 아시아 1위, 전세계 5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와 관련, 일본 주간지 겐다이 비즈니스는 한 40대 한국 남성이 최근 자신의 연봉보다 더 높은 가격의 고급 외제차량을 덜컥 구입하게 된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이 남성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친구들 차는 다 외제인데, 우리 차는 국산이라 창피하다고 했다” 며 “딸이 기죽는 게 싫어 어쩔 수 없이 바꿨다”는 변명인듯 변명 같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승차감이 아닌 ‘하차감’이라는 독특한 단어의 존재도 한국사회의 과시 및 허세 문화를 투영한 결과라는 지적입니다.

주지하다시피, 하차감은 차량에서 내릴 때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에서 비롯되는 자부심 또는 만족감을 뜻하는 말입니다. 부러운 시선을 많이 받을 수록 하차감이 더 좋은 차 라고들 합니다.

영미 등 서구권은 물론 같은 동양권인 일본에서도 이에 해당하는 직접적 표현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주변의 인상이나 반응을 매우 신경쓰다 보니 생겨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차와 관련된 허세 문화가 특히 강한 건,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사회경제적 지위를 투영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는 경향이 유독 강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허세와 과시’ 문화가 차별로....상대적 빈곤과 저출산 문제
챗 GPT가 생성한 이미지.
얼마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가 자식이 학교에서 ‘개근 거지’라고 놀림받았다고 푸념하는 내용의 게시물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이 게시물 작성자는 외벌이 수입으로 빠듯한 생활을 하는데도, 자녀가 “친구들은 다들 해외에 나가는데, 국내 여행만 해서 창피하다”고 불만을 터뜨려 어쩔 수 없이 초저가 항공권을 열심히 찾는 중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개근상은 한번도 결석하지 않고 성실하고 건강하게 학교에 출석했다는 것을 기념하는 자랑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형편이 안돼 학기중 해외여행 한번 가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할 수 있어 아이들 사이 놀림감이 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검증할 필요가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발 소식 이었지만, 학기 중 체험 학습이 가능해지면서 수업대신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초등학생들이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여기에 언제부턴가 서울을 필두로 아파트 매매 가격을 기준으로 행정구역을 나눈 ‘부동산 계급도’ 같은 것도 등장했습니다. 이를 두고 부동산 카페 등에서는 어디지역 등급이 고평가 됐느니, 저평가 됐느니 수시로 갑론을박이 이뤄집니다. 현실적으로 어느 지역에 사느냐가 계층을 나누고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지는 오래입니다.

수년전에는 초등학생들 사이 ‘빌거지(빌라에 사는 거지)’, ‘엘사(LH아파트에 사는 사람)’ 등 각종 비하표현들이 생겨나 쓰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극단적일 순 있지만 이 같은 현상들은 결혼과 출산을 앞둔 젊은 세대들에게는 아무래도 부담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님 차가 무엇인지, 어디 사는지, 어떤 집에 살고 몇 평에 사는지를 묻고 그것으로 차별이 나타나는 나라에서라면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특히 우려스러운 건 현재 한국 사회가 시간이 갈수록 소득 수준별 출산율 차이가 벌어지면서 중산층 부터는 점점 출산을 안하는 상태가 돼가고 있다는 겁니다. 예컨대 전체 출산율을 100%로 한다면 여기서 저소득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11.2%에서 2019년 8.5%로 2.7%포인트 하락했고, 같은기간 중산층이 차지하는 비중도 42.5%에서 37%로 5.5%포인트나 급락했습니다.

반면, 고소득층은 46.5%에서 54.5%로 8%포인트 늘었습니다. 해당 연도에 100명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면 이 중 55명은 고소득층의 자녀이고 37명은 중산층의 자녀, 저소득층 자녀는 8명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아이를 덜 낳는 시대가 됐다지만 고소득층은 그래도 조금이라도 아이를 낳는다면 중산층은 아이 낳기를 주저하고 있고, 저소득층은 아예 포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흔히 유사이래 한국이 지금만큼 부유했던 시기가 없다고들 합니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유사이래 압도적으로 낮습니다. “내 아이에게 남들만큼 해줄 수 없어서”라며 비교하고 스스로를 옥죄는 분위기가 만연하는 한,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된 출산율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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