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간다는 것, 새로운 세계로 뛰어내리는 마음

한겨레 2024. 11. 10. 09: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세상과 맺어진 끈들이 휴대폰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 오래전부터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었어요. 왜냐면 그곳이 원래 제가 있어야 할 곳이니까요. 다른 세계는 어떤 곳일까?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했어요. 하지만 문제는 문이었죠.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문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았거든요. 그날도 평소처럼 괜히 힘껏 문을 밀었어요. 그리고 문을 열면서 깨달았어요. 드디어 탈출했구나. 해냈어. 대단해, 그런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순간, 두근거림이 울렁거림으로 바뀌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어요."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믿을 수 없는 영화관

세상과 맺어진 끈들이 휴대폰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반대쪽 끝의 인연들이 시도 때도 없이 당긴다. 무시하려고 해도 움찔하는 것까지 피하긴 어렵다. 주문형 비디오를 통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손쉽게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휴대폰을 통해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신호들이 감상을 방해한다. 즐기려고 보는 가벼운 오락거리에 그렇게 몰두할 필요가 있냐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두 세계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것이 괴롭다. 이럴 때면, 극장에 가고 싶다.

상영관의 문을 들어서기 전에 해야 하는 준비들은 새로운 나라로 입국하기 위한 절차들이다.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 걸어서, 혹은 차를 타고 극장에 가서 표를 산다. 검표를 통과해서 모자를 벗고 자리에 앉으면 준비 완료. 함께 보러 갈 친구를 만나거나 여행할 동안 먹고 마실 음식을 준비할 수도 있다. 영화관 들어갈 때면, 새로운 세상에 푹 빠졌다 오고 싶다. 주문형 비디오가 대세이고 영화관에 가는 관객이 점점 줄어드는데도 영화관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일 것이다.

영화관에서 새로운 세계로 간 ‘믿을 수 없는 영화관’의 곽풀잎씨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전 오래전부터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었어요. 왜냐면 그곳이 원래 제가 있어야 할 곳이니까요. 다른 세계는 어떤 곳일까?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했어요. 하지만 문제는 문이었죠.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문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았거든요. 그날도 평소처럼 괜히 힘껏 문을 밀었어요. 그리고 문을 열면서 깨달았어요. 드디어 탈출했구나. 해냈어. 대단해, 그런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순간, 두근거림이 울렁거림으로 바뀌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어요.”

다른 세계에 있는, 혹은 갇힌 곽풀잎씨를 보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나이스보일러 상담사 이이소씨밖에 없다. 이이소씨는 다른 세계로 떠난 곽풀잎씨와 그를 그리워하는 고무섭씨 사이에서 볼 수 없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 하지만 여전히 둘은 만날 수 없다.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그 세상에 합류하고 싶지만, 고무섭씨는 ‘뻥타임’을 견딜 수밖에 없다. 비행과 비행 사이에 비행기가 지상에 머무는 시간, ‘뻥타임’. 다음 비행을 기다릴 뿐, 딱히 무언가를 하기 애매한 시간이다.

“꿈조차 특별할 것 없는 삶. 별것 없이 되풀이되는 하루 또 하루.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해가 지면 잠이 들어요. 기억나지 않을 순간이 좋아요. 궤도에서 벗어난 사건들은 아무리 사소해도 잊을 수가 없으니까요.” 고무섭씨는 하늘을 날아 본 것들을 기억하고 다음 비행을 기다리면서 그렇게 지낸다. 그는 궁금하다. “다른 세계에서는 또 다른 세계의 꿈을 꿀까요?”

한겨레 토요판이 다음주면 문을 닫는다. 나도, 만 4년 동안 아흔두번을 연재한 이 코너에서 오늘, 뛰어내린다. 곽풀잎씨가 담에서 뛰어내려 다른 세계로 갔듯이 여기서 뛰어내리면 다른 세계가 펼쳐질까? 내가 사랑했던 세계에서 토요일은 신문에 밴 잉크 냄새, 신문을 넘기면 나던 부스럭거리는 소리, 곁들여진 진한 커피로 행복했다. 오히려 신문 면수가 너무 적어서 아쉬웠는데, 아예 볼 수 없다니 오호통재라. 원치 않아도 가게 될 새로운 세계에선 무엇과 함께 토요일을 즐겨야 하나? 깊어진 가을만큼 고민도 깊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