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헌법과 병역법은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병역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국가 존립을 지키고 영토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지만 누군가는 이 때문에 죽거나 다치고, 삶 전체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2003년 스물한 살 청년으로서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던 배봉석씨가 그랬다. 배씨는 군 복무 중 허리를 다쳐 수술을 받고 의병 전역했다. 전역한 지 12년이 지난 2016년 배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배씨의 어머니 심인옥씨(66)는 아들이 죽은 뒤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국가가 아들의 죽음을 책임지라고 호소하며 거리에서 시위했다. 2022년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는 배씨가 군 복무 중 입은 부상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자살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서울지방보훈청은 소송에서 배씨의 자살이 군 복무와는 관련이 없다며 국가의 책임을 부인한다. 매년 1000명 넘는 군인이 부상을 당해 의병 전역한다. 심씨는 “아들을 군대에 보낸 죄밖에 없는데 왜 계속 국가와 싸워야 하느냐”고 했다.
군에서 부상 후 전역, 보훈대상은 탈락
지난 10월 18일 서울 강서구 자택에서 기자와 만난 심씨(66)는 배씨에 대해 “건강하고 착한 아들이었다”고 말했다. “어차피 가는 거 해병대로 갔다 오겠다고 했어요. 엄마가 누나하고 자기의 대학 등록금을 어떻게 대려고 그러냐고, 군대 갔다 와서 학교 다니겠다고, 엄마를 생각해서 지원해서 간 거예요.” 배씨는 평소 요리에 관심이 있어 한식·양식 자격증을 땄다. 전역하면 호텔 쪽으로 일을 알아보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2003년 8월 배씨는 해병대에 입대했다.
입대 1년도 되지 않아 심씨는 아들이 허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취사병으로 일하던 배씨는 식재료를 보관하던 창고에서 짐을 옮기던 중 허리를 다쳤다. 2004년 5월 국군수도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흔히 ‘디스크’라고 말하는 추간판 탈출증 진단을 받았다. 추간판 절제 수술 후 입원 치료를 받다가 ‘부상으로 인해 남은 기간 현역으로 복무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고 그해 11월 의병 전역을 했다.
배씨는 전역 후 2005년 두 번, 2009년 한 번, 2015년 한 번, 총 네 번에 걸쳐 국가유공자 등록과 보훈보상 신청을 했다. 그러나 신체검사에서 상이등급 미달로 탈락했다. 보훈보상 등의 제도는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해 군에 입대한 장병의 부상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겠다는 취지지만, 배씨의 경우 ‘충분한 장애를 입은 것’이 입증되지 않았다. 기록상 전역 후 배씨가 병원을 다시 찾은 것은 2009년이다. 당시 진료기록엔 “군대에서 추간판 절제술을 받은 후 괜찮아졌는데 최근 다시 요통이 발생했다”고 기재돼 있었다.
배씨는 2013년 자살을 시도했다. 심씨가 발견해 간신히 구했다. 당시 병원의 우울증 진단서엔 “군대에 있을 때 디스크 수술을 받았고, 2011년 3차 수술을 받았는데 통증이 지속되고 있어 비관적 생각이 컸다”는 내용이 있다. 배씨는 급식 조리, 운전, 화물배송, 제조업 공장 등 단기간 파견 일을 전전하고 있었다. 심씨는 “아들이 일을 조금 하면 허리가 아프고, 다시 일하면 아프고 하면서 제대로 살 수 없었다”고 했다. “몸이 아파서 일을 못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그만두고 운동이나 해라, 엄마가 열심히 돈 벌 테니까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아들은 다 커서 엄마를 앞세워 밥 먹고 사느냐고 했죠. 허리가 아프면 다른 데도 아프거든요. 국가에서도 외면하니까 비관을 했나 봐요.” 결국 배씨는 2016년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때 그의 나이가 서른셋이었다.
입대 5개월 차에 심씨에게 보낸 편지에 배씨는 이렇게 썼다. “어릴 적 손 잡고 다니던 아들이 어느덧 다 커서 군대까지 왔네. 생각해보니 여태 엄마한테 잘해준 게 아무것도 없어. 못난 아들. (…) 우리 키우기 참 힘들었을 거야. 우리 엄마지만 참 대단해. 어머니, 저 전역할 때까지만 고생하세요. 전역하면 아들이 확실한 노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반면 그는 생을 마감하면서 남긴 유서에는 수술을 언급하며 미래에 대해 자신이 없다고 썼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어 미안해, 용서해줘. 난 그동안 나 자신에게 심각하게 비관적이고 걱정이 너무 많았어. 세 번의 수술과 다시 재수술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걱정과 또 어딘가 아프진 않을까 늘 두렵고. 앞으로 미래에 대해 자신이 없어 고통스러웠어. 세상은 정신없이 돌아가는데 언제부턴가 난 멈춰 버린 것 같아.”
진상규명위, 국가의 책임 인정
그때부터 심씨는 아들이 복무했던 군부대, 국방부, 국군수도병원, 국가인권위원회, 국회 등 곳곳을 찾아다녔다. 부상 당시 의무기록, 사고경위서, 전역 후 병원 진단서 등 아들 죽음과 관련된 서류들을 하나하나 수집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따지는 것은 유족의 몫이었다. 심씨는 울며불며 아들 죽음에 대해 국가가 책임지라고 호소했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었다.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가 배씨 사건을 조사했다. 진상규명위는 2022년 3월 “배씨는 군 복무 중 추간판 탈출증이 발병해 공상 전역했고, 전역 후 그 질병의 후유증이 상당한 원인이 돼 발병한 정신질환이 주된 원인이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인정한다”고 결정했다. 진상규명위는 배씨가 군에서 추간판 탈출증 부상을 입었을 때 완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유증 발생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봤다. 또 그 부상은 우울증 발병에 상당한 영향을 줘 자살까지 이어졌다고 봤다. 군 복무와 배씨 사망의 인과관계, 즉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진상규명위 조사에서 한 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이런 자문 의견을 냈다. “제대 이후 사회적 지원의 결핍, 국가의 보훈 지정에 대한 거부 경험과 이로 인한 현저한 실망감, 반복되는 수술과 후유증으로 인한 생활의 어려움 등이 심리적 고통을 악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복무 중 발생한 신체 질병으로 제대한 자살 사망자가 제대로 된 사회적 지원과 지지를 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오히려 국가로부터 거부당한 경험은 견딜 수 없는 상실감, 단절감, 절망감과 무기력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한 정형외과 교수는 “의무기록만으로 봤을 때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심한 통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면서도 “경험으로 미뤄볼 때 20~30대 남성은 본인의 증상을 잘 표현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배씨가) 침습적 치료를 받은 사실을 고려하면 본인이 느낀 증상은 더 심했던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진상규명위 결정에도 불구하고 심씨는 여전히 싸우는 중이다.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 심사가 다시 이뤄졌지만 이번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씨는 서울지방보훈청의 보훈보상 대상자 비해당 결정이 위법하다며 지난해 7월 행정소송을 냈다. 이 소송에서 서울지방보훈청 측은 진상규명위 결정 내용과는 배치되는 주장을 펼쳤다.
서울지방보훈청 측은 소송에서 “국가유공자 결정 심사는 객관적이고 신빙성 있는 공적 자료에 의해 정확하고 엄정하게 심사·결정되고 있다”며 배씨에 대한 처분이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지방보훈청 측은 기록상 배씨의 우울증 발병은 전역 후 7년 3개월, 사망은 12년이 지난 때라며 우울증이 군 복무와 관련됐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했다. 또 군 복무 때 인정받은 질병은 추간판 탈출증인데,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자살이므로 질병과 사망도 관련이 없고 오히려 부모의 이혼 등 가족 문제가 자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서울지방보훈청 측은 배씨의 죽음이 군 복무와 관련 있다는 입증은 원고인 심씨 측이 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군 복무 중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군인, 유족에게 국가 지원을 결정하는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은 계속 제기돼왔다. 군인 당사자와 유족에게 강하게 부여된 ‘입증 책임’이 구제받아야 할 이들도 구제받지 못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나왔다. 소송에서 심씨를 대리하는 김정민 변호사는 지난 11월 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배씨 사건의 경우 우울증이 촉발된 구체적인 원인이 군에서 입은 부상으로 특정돼 있다”며 “해병대를 자원해서 갈 정도로 적극적이고 건강했던 사람이 다른 핑계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런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쉽지 않은 사건이지만 기본적으로 군 복무 중 다쳤을 때 구제받는 절차가 상당히 복잡하고 어렵다”며 “진상규명위가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는데 순직 심사 등에서는 또다시 판단하고 다른 결론을 내니 유족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2022년 군인사법 개정으로 의무복무 중 군인이 사망하면 원칙적으로 순직자로 분류하도록 해 유족들의 입증 책임을 완화했지만 여전히 예외범위는 넓다. 자살의 경우엔 입증하기가 더욱 까다롭다.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군인이 사망하더라도 그 군인이 했던 직무수행과 교육훈련이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 관련이 있어야 순직을 인정하는 제도를 개선하라고 국방부 등에 권고했다. 군대 자체가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를 위해 조직된 집단인데 이런 기준을 추가로 들이대면 국가가 자의적으로 지원대상을 걸러낼 수 있어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해 군인사법 개정으로 군 복무 중 입은 부상이 직접적 원인이 돼 사망한 경우 순직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개선된 제도는 과거 사례인 배씨 건에는 적용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심씨가 말했다. “아들이 누구한테 피해준 것 없이 살았어요. 남의 돈 떼먹은 것도 없고 말도 잘 듣고요. 그런데 군대에 가서 다치고 사고가 난 거죠. 이런 일을 겪고 보니 국가라는 게 진짜 나빠요. 국군의 날이고 무슨 날이고, 몇 년을 외치고 다녔는데 아직도 해결이 안 되고 있어요. 애를 군대 보내준 죄밖에 없는데 왜 가족들까지 이렇게 못 살게 하나요. 법을 바꾸면 뭘 하나요. 엄마는 왜 지금도 이렇게 애가 타고 있고, 국가를 믿을 수 없는 건가요.”
매년 1000여명이 심신장애로 조기 전역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국방부·병무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 총 6531명이 심신장애를 사유로 의병 전역했다. 2020년 1509명, 2021년 1516명, 2022년 1492명, 2023년 1307명, 올해는 8월까지 707명 등 매년 1000명 넘는 군인이 군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조기 제대하는 것이다. 이중 현역병이 94.5%(6172명)였다.
그러나 인권위가 2022년 실시한 실태조사를 보면 ‘질병이나 부상 관련해 공상 신청을 하는 절차를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군 병원 입원 병사의 56%가 “전혀 모른다”고 답변했다. 국가유공자 신청 절차에 대해서는 59%가 “전혀 모른다”고 했다. 보훈보상 제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전역 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내용도 있다.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제대군인 지원센터는 5년 이상 중·장기 복무한 제대군인만 지원한다. 군 복무 자체가 위험을 상시로 동반하고 국가에 대한 희생임에도 병사들에 대한 의료와 보상 시스템 구축, 인식 확산은 부족한 실정이다.
서울시는 2022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청년 부상 제대군인 상담센터를 설립하고 지원 조례를 만들었다. 상담센터는 원스톱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법률·의료 지원을 한다. 청년 부상 제대군인들이 모여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는 자조모임도 있다. 경기도도 지난해 조례를 만들었다. 다른 지자체엔 조례가 없다.
2019년 해병대 장교로 재직할 때 지뢰를 밟아 부상을 당한 당사자이면서 상담센터 실무를 맡은 이주은 실장은 지난 11월 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부상 군인에게 필요한 것은 보상도 있지만 나라를 지키다 다쳤다는 의미의 명예 회복도 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작전에 나간 군인들뿐 아니라 행정병이나 PX병(매점을 관리하는 병사) 등 모두가 자기의 자리에서 역할을 하기에 지금의 한국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라며 “이들의 명예를 인정해주는 것에서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그는 이어 “(국가유공자 인정을 위한) 기준이 너무 높아서 발가락이 두 개 절단된 경우엔 등급이 나오지 않고 3개 절단부터 최소 등급이 나온다”며 “전역 후 심사 단계를 통과하기까지의 시간도 오래 걸리고 기준에서도 상식과 법의 간격이 커서 사각지대가 생긴다”고 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