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北 찬양 안 해… 낡은 국가보안법 업데이트할 때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2024. 11. 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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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뷰파인더] 조롱거리로 전락한 北, 대한민국 안보관도 변해야

● 로제 ‘아파트’ 패러디 영상에 달린 의문의 욕설 댓글
● ‘캡틴제임스-g7m’, 진지하게 화냄으로 희화화 완성
● 더는 지향점 아니게 된 北, 수명 다한 국보법
● “김정은 만세” 외친다 해도 찬양 아닌 조롱인 시대
● ‘北만이 우리의 주적’ 관념에서 벗어나야

10월 18일 곡 ‘아파트(APT.)’를 발표한 걸그룹 블랙핑크 로제(왼쪽)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 10월 31일 유튜브 채널 ‘화성인 릴도지’에 업로드 된 ‘APT. 🇰🇵’ 영상 일부. 영상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김여정 부부장을 딥페이크 기술로 합성해 제작한 패러디물이다. [더블렉래이블, 유튜브]
"이딴 것 만들지 마라. XX 놈들아."

원색적 욕설이 담긴 문장을 독자께 보여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겠다. 하지만 이 문장은 매우 중요하다. 북한 김정은 3대 세습 체제와 북핵 문제, 더 나아가 국가 안보‧정체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전후 맥락을 짚어보자.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가 '아파트(APT.)'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의 협업 하에 발표한, 마치 2000년대 초 인기를 끌었던 여자 솔로 락가수 에이브릴 라빈을 떠올리게 하는 경쾌한 락 스타일의 음악이다. 요즘 한 번쯤 들어 봤을 그 가락이 반복된다.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MTV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레트로한 뮤직비디오까지 결합하여 '아파트'는 쾌속의 흥행을 이어갔다. 11월 4일 기준 아이튠즈 1위, 스포티파이 1위, 유튜브(동영상) 1위에, 빌보드 글로벌 200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일본, 캐나다, 호주, 타이완, 베트남 등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차트로 1위를 기록하고 있거니와, 한국에서도 1위(애플뮤직)다.

옛날에는 노래가 흥행하면 리어카에 불법 복제한 테이프를 싣고 다니는 잡상인이 등장했다. 지금은 유튜브와 틱톡 등에 다양한 패러디 영상이 업로드된다. '아파트' 역시 마찬가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기발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재치를 뽐낸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다루게 될 영상 'APT. 🇰🇵'다

웃자고 만든 영상에 왜 진지하게…

10월 31일 북한이 최신형 대륙간탄도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한 날, 구독자 30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화성인 릴도지'에 새 영상 'APT. 🇰🇵'가 공개됐다. AI를 이용해 '아파트' 원곡과 김정은과 김여정의 모습을 딥페이크 기술로 합성해 만든 패러디 영상이다.

원곡 '아파트'의 가수 로제의 본명은 박채영이다. 로제는 술자리 게임을 좋아한다. 그래서 노래부터 "채영이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 랜덤 게임, 게임 스타트"를 외치며 시작한다. 패러디 영상은 북한을 대표하는 얼굴이자 목소리인 리춘희 아나운서가 등장해 "어버이가 좋아하는 도발 계획, 도발 계획, 개~수작!"을 외치며 시작한다.

노래가 본격적으로 이어지면서 나오는 모습도 그렇다. 원곡 뮤직비디오의 로제는 김여정으로, 브루노 마스는 김정은으로 바뀌어 있다. 후렴구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는 당연하다는 듯 "로~케트 로케트! 로~케트 로케트!"가 된 채 60번도 넘게 반복된다. 누구라도 단 1초 만에 알아볼 수 있는 강렬한 패러디다.

이 영상에 대한 호응은 실로 뜨거웠다. 영상이 업로드된 건 10월 31일. 11월 7일 기준 조회수가 400만 회를 넘겼다. 물론 이는 조회수 2억4000만 회를 넘긴 원곡에 비하면 아주 적은 것이지만, 일개 패러디 영상이 조회수 100만 회 단위를 넘기는 일은 결코 흔치 않다. 한마디로 '대박'이 터진 것이다.
10월 31일 유튜브 채널 ‘화성인 릴도지’에 업로드 된 영상 ‘APT. 🇰🇵’에 유저명 ‘캡틴제임스-g7m’이 단 욕설 댓글. [유튜브]
‌이 글을 시작하며 언급한 욕설 댓글은 바로 이 영상에 달린 것이다. 댓글 작성자가 누구인지 경찰이나 국정원이 수사 내지 조사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즉 우리는 그 댓글의 작성자 '캡틴제임스-g7m'이 진짜 북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캡틴제임스-g7m'이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영상을 만든 '화성인 릴도지'는 본 댓글을 최상단 '고정 댓글'로 선정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했다. 웃자고 만든 패러디 영상에 진심으로 화내며 달려드는 누군가는 이 작품의 패러디를 입체적으로 완성시켰다. 이 댓글에 지금까지 2만4000개 이상의 '좋아요'가 찍히게 된 이유다.

이젠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는 北

‘아파트'와 '로케트', 그리고 정체불명의 댓글. 이 세 가지 현상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이 모두를 한 번에 놓고 고민할 때 우리는 현재 대한민국 및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모습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다.

하나씩 따져보자. 첫째, 대한민국의 소프트파워는 이미 세계 수준에 이르렀다. 이 점에 대해서는 굳이 더 반복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이제 K팝은 세계 음악 시장의 주류 장르 가운데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전 세계가 한국 음악을 듣고 들썩거린다'는 식의 '국뽕'에 도취 되는 것은 지양해야 하겠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결코 작지도, 약하지도 않은 나라가 됐다는 사실까지 의심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이다.

둘째, 대한민국의 안보‧반공의식, 특히 젊은이들의 그것은 매우 확실하다. 필자가 이 글을 쓰기 위해 'APT. 🇰🇵'의 댓글과 각종 커뮤니티의 반응을 나름대로 열심히 모니터링해서 확인한 사실이다. '아파트'를 흥얼거리며 '로케트'를 패러디로 받아들이는 대한민국의 젊은이 가운데 북한을 우리보다 우월하거나, 우리가 현재의 위치를 버리고 추구‧추종해야 할 어떤 대안이나 이상으로 여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적어도 2030 세대는 그렇다. 북한은 그저 조롱거리일 뿐, 우리가 가야 할 지향점이 아니다.

셋째,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이용한 북한의 여론 공작과 비정규 작전이 늘 벌어지고 있다. '캡틴제임스-g7m'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되지 않았으니 저 한 사람만을 두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여론 조작과 선거 개입은 현실에서 늘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가령 미국 대선을 얼마 앞둔 시점, 미국 중앙정보국과 연방수사국은 외세의 선거 개입 정황을 공개했다. 러시아, 이란, 중국이 주로 미국 선거에 개입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그들은 특정 후보를 띄우거나 비방하는 여론을 조장하기도 하고, 선거 용지가 찢어졌거나 개표가 잘못됐다는 식의 여론을 조성해서 선거 자체에 대한 불신을 키우기도 했다. 사진‧영상을 조작하는 것은 그런 공작을 위해 동원되는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미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한국에서도 공작이 벌어지고 있음을 합리적으로 의심해 볼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종종 '로케트'에 달린 댓글처럼, 분명 한국어를 쓰고 있지만 어딘가 말투가 어색하고, 통상적 한국인이라면 보이지 않을 정서와 반응을 드러내는 네티즌을 맞닥뜨리곤 한다.

세 가지 현상을 종합해 보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분명하다. 국가보안법은 수명을 다했다. 국가보안법으로 대표되는 구시대의 안보관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국제적 현실은 더욱 엄혹해졌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변화한 현실에 맞는 포괄적 법과 업그레이드된 안보관이 절실하다.

실효성 잃은 찬양‧고무죄

여기서 잠시, 국가보안법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7조 1항 찬양‧고무죄(이하 찬양‧고무죄)를 살펴보자. 본 조항은 다음과 같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6‧25전쟁이 끝나고 대한민국의 기틀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을 무렵, 냉전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20세기 중반이라면 이 조항도 존재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지구 여기저기서 소련 등 공산국가를 배후에 둔 혁명이 벌어지고, 정부가 전복되며 사회가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일이 벌어지곤 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물론 여전히 일각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을 옹호하고, 북한이 한국을 점령하는 적화통일이야말로 '민족'이 나아갈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중적 설득력을 조금도 갖지 못한다. 반면 북한의 세습 통치를 조롱거리로 삼는 네티즌들이 즐비하며, 그들 가운데 일부는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북한을 진지한 찬양‧고무 대상으로 삼는 건 처벌하기 어렵고, 그럴 가치도 없는 신앙‧미신의 영역에 속한다는 이야기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국가보안법, 특히 그 가운데 찬양‧고무를 처벌한다는 이유로 국민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약하는 찬양‧고무죄는 이상한 역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그 법을 어긴 이들이 민주투사 행세를 하게끔 하는, 일종의 '알리바이'로 기능하는 것이다.

2020년 9월 노무현재단 유튜브 토론회에서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김정은을 두고 "계몽 군주"라 발언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이 커지자 그는 "(북한이 개혁을 하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는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취지에서, 김정은을 고무·선동할 목적으로 그런 말을 했다"고 해명했다.

유 전 이사장은 베스트셀러 작가다. 자타공인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문필가다. 그런 그가 '고무·선동할 목적'이라는 어구를 동원한 것은 결코 실수가 아니다. 찬양‧고무죄로 나를 기소할 테면 기소해봐라, 그럼 나는 더 좋다'는 식의 도발이다.

찬양‧고무죄의 위상이란 이런 것이다. 2030세대는 아무도 북한을 진지한 찬양‧고무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설령 그들 입에서 "김정은 만세"라는 말이 나온다 해도 그것은 맥락상 조롱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반대로 스스로를 '민주화 세대'라 여기는 어떤 이들에게 찬양‧고무죄는 일종의 '깨진 유리창'과 같다. 그들은 찬양‧고무죄 위반을 마치 치안이 무너진 거리에서, 그래피티(낙서처럼 그리는 거리예술) 벽화를 그리다가 경찰에 체포되는 것처럼 여긴다. 국가보안법 사범이 되면 자신들의 또래 집단에서 졸지에 '우월한 자'가 될 수 있으니 오히려 대놓고 법을 어기거나, 어기겠다고 조롱하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게 완전히 달라졌음에도 60대 이상 고령층은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가운데 비현실적이거나 실효성이 없는 조항들을 폐지하자는 말만 꺼내도 "빨갱이에게 나라가 넘어간다"며 아연실색하는 모습이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국가보안법의 다른 조항들 역시 마찬가지다. '적국'이라는 단어로 함축된 북한만을 겨누고 있다 보니, 다른 각도에서 다가오는 소리 없는 총구를 알아채지도, 대비하지도 못하고 있다.

글로벌 히트곡 보유국다운 안보관 필요

10월 28일 중국에서 일하던 50대의 한국인 엔지니어가 지난해 12월부터 중국 공안에 의해 체포‧연행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중국이 지난해 7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신방첩법(반간첩법 개정안)이 한국인에게 적용된 것이다.

체포된 50대 A씨는 통상적 의미의 '스파이'가 아니었다. 그는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출신으로,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에 있는 메모리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 근무하던 엔지니어였다. 국가 기밀에 해당하지 않는 정보라도 '국가 안보 및 이익에 관한 경우'에는 간첩 행위로 수사하고 처벌할 수 있게끔 규정한 신방첩법을 우리 국민에게 적용한 사례다.

정보기관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자국민과 외국인에게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는 것은 인권 침해 우려를 키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형법 제98조 간첩죄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향해 있다.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으로 인해, 북한이 아닌 제3국의 간첩 혹은 그 협조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막대한 법적 구멍을 안고 있는 것이다.

로제의 '아파트'와 화성인 릴도지의 '로케트'로 돌아가 보자.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나라다. 우리가 만든 노래뿐 아니라 그 노래의 패러디 영상까지 전 세계에 퍼져 나간다. 제 아무리 '골수 주사파'라고 해도 이런 우리나라를 버리고 북한으로 가고 싶다고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청년층에게, 더 나아가 대다수의 상식인에게, 북한은 동경의 대상이 아닌 조롱의 소재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역사적 관성, 인적 구성, 그 외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이유로 김정은 3대 세습 체제에 우호적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분명히 비합리적‧비상식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가운데 절반가량이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 왜일까. 반대편에 있는 국민의힘 역시 시대를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한을 절대적 위협으로 강조하고 국민을 동원하던 시대의 관성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과 제3국의 요원으로 의심되는 이들이 유튜브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댓글을 달고, 중국은 우리 국민을 간첩죄로 체포하는데, 우리는 '북한만이 우리의 주적'이라는 낡은 관념에 사로잡힌 법에 짓눌려 이 현실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빌보드 글로벌200 1위 곡 '아파트' 보유국다운 안보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jeongtaeroh@rie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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