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도 국가유산 될 수 있을까[산업이지]

남지원 기자 2024. 11.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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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공산품이 ‘국가가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최근 빙그레가 출시 50주년을 맞은 ‘바나나맛 우유’ 용기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다고 밝혔거든요. 빙그레는 왜 바나나맛우유를 국가유산으로 등재 신청한다는 걸까요.

국가등록문화유산은 ‘제작·형성된 지 50년이 경과한 문화유산 가운데 보존·활용 조치가 필요하다고 국가유산청이 판단한 근현대문화유산’입니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려면 먼저 만들어진 지 50년이 지나야 하고, 역사·문화·예술·사회·경제·종교·생활 등 각 분야에서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죠.

1974년 출시된 바나나맛우유는 일단 첫 번째 ‘기간 조건’을 갖췄습니다. 문제는 두 번째입니다. 공산품이 국가유산에 오른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자동차의 첫 독자생산 자동차인 ‘포니’와 최초의 세탁기인 금성 세탁기 등도 이미 국가유산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다만 이것들은 한국의 자동차산업과 전자산업 발전이라는 역사의 한 단면을 반영한다는 분명한 의미를 갖습니다. 산업 발전이라는 시대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도 공장에서 대량생산되고 있는 바나나맛우유 용기도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라붙습니다. 바나나맛우유가 국내 ‘대표 스테디셀러 제품’인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 50년간 95억개가 팔렸고, ‘바나나우유’라고 하면 빙그레 바나나맛우유가 곧바로 떠오르는 것도 맞고요.

그렇다고 단순히 오랫동안 잘 팔린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유산 반열에 오르기는 어렵겠죠. 바나나맛우유보다 더 나이가 많은 해태제과 연양갱, 농심 새우깡 등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1974년부터 50년간 바나나맛우유 패키지 디자인 변화. 빙그레 제공

빙그레는 바나나맛우유 용기의 생활사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빙그레가 국가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하는 것은 바나나맛우유 자체가 아니라 바나나맛우유 ‘용기’ 입니다.

빙그레 관계자는 “한국인의 정서가 담긴 ‘달항아리’를 모티브로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바나나맛우유 용기의 국가유산 등재를 신청하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나나맛우유 용기가 단순 대량생산 공산품이 아닌 문화적, 생활사적 유산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거죠. 올해 정부가 ‘문화재’라는 용어를 ‘국가유산’으로 바꾸면서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기로 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빙그레의 얘기를 들어보면 바나나맛우유 하면 떠오르는 배불뚝이 항아리 모양의 독특한 용기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철저한 기획하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바나나가 시중에 드문 고급 과일이었고 음료에 활용된 사례도 전무했던 때라 바나나의 고급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유 용기로 흔히 사용되던 비닐 팩이나 유리병과 차별화된 특별한 용기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지금 바나나맛우유 용기에 쓰이는 폴리스티렌입니다. 지금은 플라스틱 용기가 흔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해요.

소재를 결정하자 형태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뒤따랐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국인에게 친숙한 외형을 찾던 중 우연히 도자기 박람회를 찾았다가 달항아리를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 지금의 바나나맛우유 용기입니다.

바나나의 노란색을 살리기 위해 용기는 반투명으로 제작했고요. 장독대의 항아리를 닮은 고유 디자인은 이촌향도 현상이 심했던 1970년대에 떠나온 고향집의 장독대를 연상시키면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단순히 내용물을 담는 데만 집중한 게 아니라 기능과 모양, 정서 등을 고려한 포장 전략을 쓴 셈입니다. 이 용기는 50년간 모양이 바뀌지 않으며 바나나맛우유 하면 떠오르는 상표이자 브랜드 자체가 되었죠. 빙그레는 2016년에 바나나맛우유 용기 모양 자체를 상표권으로 등록하기도 했습니다.

‘K-헤리티지 아트전, 낙선재遊_이음의 결’ 바나나맛우유 협업 전시 작품. 빙그레 제공

빙그레는 최근 바나나맛우유의 모티브가 된 달항아리와 연관된 문화예술 관련 활동도 강화하는 중입니다. 지난 7월에는 대전에서 열린 ‘K-헤리티지 아트전, 반아호연(盤牙浩然)’ 전시에, 9월에는 서울 창덕궁에서 열린 ‘K-헤리티지 아트전, 낙선재遊_이음의 결’ 전시에 협찬사로 참여해 바나나맛우유 용기를 형상화한 달항아리 및 오브제 등을 활용한 별도의 협업 전시 공간을 운영했습니다.

빙그레는 바나나맛우유의 국가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자료를 열심히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빙그레의 시도가 대량생산품이 그 자체의 생활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는 이례적인 사건을 만들지, 아니면 단순 마케팅으로만 남을지 궁금해지네요.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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