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전남도립대의 익숙한 ‘굴욕’…“이번엔 행감 거부당했다”
총장 ‘채용비리 얼룩’…부실 답변에 행정사무감사 중단
정부 재정지원 대학 ‘탈락’…100억원 공중에 날리기도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흔들리는 전남도립대학교가 또 수모를 당했다. 현직 총장이 채용 비리 의혹으로 직위 해제 당한데 이어 이번엔 전남도의회 행정사무감사마저 제때 받지 못하는 굴욕을 맛봤다. 도의원들의 질의에 학교 측이 명확하고 충분한 답변을 못하면서 급기야 '감사 불가'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지방의원들의 1년 농사는 행정사무감사로 귀결된다. 지방의회의 가장 큰 역할은 집행부 견제와 감시이기 때문에 행정사무감사는 의정활동의 '꽃'으로 불린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매년 11~12월은 지자체 행정사무감사 시기다. 오죽했으면 전남도의회가 울며 겨자먹기로 행정사무감사를 중단했을까.
전남도의회 기획행정위원회는 7일 전남도립대학교(이하 도립대)에 대한 올해 행정사무감사를 돌연 중단하고 11일로 연기했다.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도립대 총장 직위 해제와 목포대와 통합 추진 등 주요 현안에 대한 부실답변으로 행정사무감사(행감)가 중단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전남 유일의 공립대학인 도립대가 얼마나 부실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다.
"오죽했으면"…도의회, '1년 농사' 행감 중단 선택
이날 벌어진 사상 초유의 일은 도립대 총장이 중도에 낙마하면서 비롯됐다. 제10대 전남도립대 총장 A씨는 이달 1일자로 채용 비리 의혹으로 직위 해제됐다. 취임한지 1년 3개월만이다. 이에 지난 4일부터 장헌범 전남도 기획조정실장이 총장 직무대리를 겸직하고 있다. 장 실장은 지난해 4월에도 전임 총장이 학내 문제에 책임지고 사퇴하자 직무대행을 맡은 적이 있다.
이에 따라 이날 행감에서는 국립목포대와 통합 등 현안 질의에 대해서는 주로 서명희 교무기획처장이 대신 답변했다. 그렇다보니 재대행으로 애매한 포지션의 서 처장이 의원들의 민감한 질의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경선 도의원은 "현재 도립대는 정확한 의사 결정 주체가 없으며, 의원들의 질의에 회피하거나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학교 측의 책임감 부재를 지적했다. 특히, 국립 목포대와의 통합 추진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합의 이후 1년 동안 구체적인 추진 계획이나 성과가 없고 질의에 대한 답변도 '그럴 겁니다',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식의 모호한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또 "한두 가지 간단한 질문에도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며 "총장이 특정감사를 받고 고발 조치될 때까지 어떠한 대비도 하지 않은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고, 이렇게는 도저히 감사를 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강문성 기획행정위원장은 정회 후 속개된 행감에서 책임 있는 답변이 어려운 점을 꼬집으며 감사 중지를 선언하고 오는 11일 감사를 재개하기로 했다.
'비리 의혹' 총장 1년 만에 낙마…또 하나의 '굴욕'
앞서 전남도는 지난 1일자로 '직원 채용비리 의혹'에 오명에 휩싸인 A 총장을 직위해제했으며 검찰도 인지수사에 착수했다. 전남도 감사를 통해 A 총장이 교무처장으로 재임하던 시기 부적격자를 채용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도는 도립대의 2022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채용·근평·계약·복무 전반에 대한 특정감사를 벌여 A총장에 대해 채용 비리 의혹을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도 감사결과에 따르면, 도립대는 2023년 1월 '우수 신입생 모집을 위한 입시종합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며 전문임기제 나급 공무원 신분인 입학지원관 선발을 추진했다. 한 명을 뽑는 전형에 모두 3명이 지원했는데, 관련 경력이 전무한 B씨가 최종 선발됐다. B씨의 경력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교무실무사로 근무한 것이 전부였다.
전남도 감사관실은 이 같은 내용의 전남도립대 감사결과를 지난달 8일 내놨다. 조 총장에 대해서는 중징계를 요구했다. 징계위원들은 다만 조 총장에 대한 검찰의 인지수사도 진행 중인 점을 감안, 기소 여부와 시점에 맞춰 다시 징계위 열고 징계 수위를 정할 방침이다. 다만, A 총장은 도 감사에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흑역사 들여다보니…운영 부실 심각·업무 태만 다반사
도립대의 굴욕은 이 뿐만 아니다. 교육부의 일반재정지원대학 평가에서 전국 7개 도립대 중 유일하게 탈락해 2023년부터 3년간 100억 원의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덧붙여 소송 패소, 학생 수업 거부, 2022년 고등직업교육거점지구 사업 탈락 등으로 대학이 총체적 난국에 빠짐에 따라 도의회로부터 강도 높은 혁신을 요구받아 왔다.
도립대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100억원 가까운 정부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21년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 진단'에서 재정지원 대학에 선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탈락한 대학 50여 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추가 평가에서도 떨어졌다.
지금은 자체 혁신 노력을 통해 다소 나아졌다는 평가지만 운영 부실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남도가 2022년 11월 말 공개한 '전남도립대학 종합감사결과'를 보면 교수 상당수는 연구 실적이 1건도 없었고 파손된 학교시설물은 방치됐다. 연간 80억원을 전남도민의 혈세로 지원받는 이 대학은 전국 7개 도립대 중 신입생과 재학생 충원율 등 모든 지표에서 최하위다.
도립대 교수 41명 중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 '교원업적평가'에 활용되는 연구 활동이 단 1건도 없는 사람은 13명에 달했다. 이들은 업적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아야 했지만 대학은 일괄적으로 12점을 부여했다.
교수 3명 중 1명이 4년간 연구실적 '0'…기숙사가 직원숙소로 둔갑도
업무 태만도 다반사였다. 주 9시간의 '책임 시수'를 채우지 못한 교수를 징계하지 않았다. 교수 3명은 최대 4개월이나 허가 없이 다른 대학 등에서 강의했다. 개인 해외여행 을 '출장'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교수 중 정교수 비율은 85.4%로 다른 지역 도립대 평균(52.9%)보다 훨씬 높고, 50대 이상은 92.7%나 됐다.
직원들의 업무태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도립대는 2019년 12월 100억원을 들여 복합학생생활관(체육관)을 신축했다. 준공 이후 4차례 하자 검사에서 매번 균열과 누수 등을 발견했지만 직원들은 이를 방치했다. 빗물이 유입돼 고장 난 체육관 승강기는 2년이 넘도록 수리하지 않았다. 교내에 설치된 자동판매기 8대의 운영도 2021년 1월 중지됐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놔뒀다.
학생 기숙사를 직원 숙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대학은 2021년 기숙사 7개 실을 '학술 교류 외부인과 동문 등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겠다'며 6800만원을 들여 리모델링했다. 게스트하우스는 7실 모두 교직원들이 '1인 1실' 숙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남도립대는 2022년 기준 전국 7개 광역단체가 설립한 도립대학 중 신입생 충원율 등이 가장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립대의 신입생 충원율은 2020년 91.8%, 2021년에는 83%로 크게 떨어졌다. 다른 6개 도립대학의 평균 신입생 충원율은 2020년 99.9%, 2021년 97.8%였다.
교수가 학생 고소한…'막장 드라마' 연출
지난 2021년 7월에는 교수가 학생 2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막장까지 보여줬다. 학생 2명이 C 교수에 대한 수업거부를 주도하는 등 명예를 실추시킨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듬해 9월 경찰 수사 결과 혐의 없음 처분이 내려졌지만 C 교수가 수사에 이의를 제기했고, 학생 2명은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결국 해당 교수가 도의회의 중재로 검찰에 학생 2명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면서 사실상 사건이 일단락됐지만 깊은 상처를 남겼다.
1998년 전남도가 설립한 전남도립대는 부지 규모가 약 22만m²로, 풍광이 좋은 주변에 관광명소인 죽녹원과 관방제, 국수거리, 군청 등이 근처에 있어 기반 시설과 교육환경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전남도립대는 전남도로부터 매년 운영비 45억원과 교원 인건비 35억원 등 80여억원을 지원받고 있다.(2021년 기준) 총장은 차관급 지방공무원으로 전남지사가 임명한다. 임기는 임용일로부터 4년이다. 교수는 전남도 소속 '지방교육공무원'으로 신분이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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