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필요한 브랜드 리더십이란?
[브랜드 인사이트]
엔비디아가 10월 25일 뉴욕 증시에서 애플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등극했지만 그럼에도 빅테크의 힘은 여전하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은 인터브랜드 ‘베스트 글로벌 브랜드 2024’ 순위에서 톱3를 수성했다.
12년째 1위를 지키고 있는 애플은 4889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브랜드 가치가 전년 대비 3% 감소했지만 이는 인공지능(AI)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에서 비롯된 일시적 감소다. 브랜드 가치는 미래에 재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2위인 MS는 3525억 달러, 3위인 아마존은 2981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11%, 8% 상승했다. 이처럼 시장은 AI 기술을 두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빅테크에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AI 거품론’도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벤처캐피털인 세쿼이아캐피털의 데이비드 칸 파트너는 현재까지 AI 기술에 6000억 달러가 투자된 반면 빅테크의 매출은 40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AI 기술에 대한 소비자 불안은 여전히 높고 빅테크가 잇달아 출시하는 AI 서비스의 구독료 및 전환비용은 투자금액 대비 낮다. 챗GPT 이후로 AI 모델인 라마2(메타), 바드(구글)가 연달아 출시됐지만 이러한 서비스를 유료로 이용하는 유저는 전체 이용객의 5%에 그친다.
경쟁 구도의 전환 : 아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 MS, 아마존의 브랜드 가치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적 역량이 아닌 ‘고객 니즈’에 기반한 경쟁력 강화에 있다. 고객 데이터의 수집·분석·거래가 보편화되면서 경쟁의 경기장이 ‘산업’에서 ‘아레나(Arena)’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경쟁의 구도는 이미 오래전에 바뀌었다. 소비자는 더 이상 기술 하나로 브랜드를 고르지 않는다. 소비자는 자신의 니즈를 이해하고 생활과 밀착해서 페인 포인트(고충점)를 해결해줄 수 있는 브랜드와 함께하길 원한다.
예컨대 애플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브랜드를 알렸지만 애플페이 및 애플워치를 바탕으로 금융 및 웰빙 영역까지 사업 영토를 확장했다. 이처럼 소비자는 다양한 생활 영역에서 신뢰하는 브랜드와 자신의 삶을 공유하기를 원한다.
인터브랜드는 이러한 현상을 ‘아레나 싱킹(Arena Thinking)’이라고 칭한다. 업계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지금, 브랜드 차별화 가치는 공급자의 기술혁신이 아닌 소비자 니즈에서 발굴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적 해자 : 브랜드 역할력
경쟁이 심화하는 AI 시대에 복수의 아레나로 활동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어떻게 해야 브랜드만의 경제적 해자를 구축할 수 있을까. 브랜드 역할력(Role of Brand)은 고객 구매 과정에 ‘브랜드’가 미치는 영향력을 의미한다.
즉 브랜드 역할력이 높을수록 고객 충성도가 쌓여 타 브랜드로의 이탈 가능성이 낮아진다. 업역 간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는 브랜드 역할력 강화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브랜드 역할력은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브랜드 강도에 있다.
잠재 리스크에 대한 회복성을 측정하는 브랜드 강도는 총 10가지의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서 인지도·신뢰도·호감도는 브랜드의 연관성, 즉 ‘브랜드가 고객 일상에 얼마나 맞닿아 있는가’를 대변하는 항목들이다.
AI 기술을 기반으로 고객에게 개인 맞춤화·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브랜드라면 주목해야 하는 요소들이다.
AI 시대의 과제 : 신뢰도 구축
브랜드 강도는 인지도·신뢰도·호감도를 단계별로 구축하는 중장기 전략으로 향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AI 기술을 활용하는 브랜드라면 신뢰도를 먼저 확립하는 게 복리의 관점에서 유리하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소비자 불신을 AI 보편화의 최대 보틀넥(병목현상)으로 지목했다. 이러한 여론은 IAAP가 지난해 19개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보안 및 소비자 신뢰’ 스터디에서도 드러난다.
전체 응답자의 68%는 ‘AI의 보안’에 대해 우려를 표했으며 이 중 57%는 ‘AI가 개인 보안을 침해할 리스크가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소비자들은 신뢰를 AI의 필수 사용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AI에 대한 불안이 팽배한 상황에서 신뢰도 구축은 더 높은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 발판이자 호감도의 근간이 된다. 소비자는 ‘믿을 수 있는 브랜드인가’ 하는 의심이 해소돼야만 혁신기술을 사용해볼 용기가 생긴다.
이후 긍정적 경험에 의해 신뢰도가 누적되면서 브랜드에 록인이 되고 추후에 브랜드가 다른 아레나로 확장을 할 경우 함께 이동할 확률이 높다. AI를 활용하는 브랜드가 어떤 경험 원칙을 기반으로 신뢰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지 살펴보겠다.
원칙① 투명성
AI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해 결과물을 생성한다. AI의 작동 프로세스는 불투명하다. AI의 파운데이션 모델이 어떤 데이터를 토대로 어떻게 학습하는지는 공개돼 있지 않다. 현재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완전히 공개한 브랜드는 메타가 유일하다.
나머지 빅테크는 알고리즘 약점 노출 리스크와 경쟁력 약화를 명목으로 ML 알고리즘의 일부만 공개하고 있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알고리즘의 공개 범위를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게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 관점에서 불투명한 알고리즘 운영은 소비자 불안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AI 기술을 접목하려는 브랜드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는 투명성의 적절한 중간점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소비자에게 명확하게 전하는 것이다.
원칙② 진정성
AI와 분리될 수 없는 키워드는 ‘개인 보안’이다. 앞서 언급했듯 소비자 불신은 AI 보편화를 가로막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49%는 ‘AI로 인해 개인 보안이 취약해질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69%는 ‘기업이 수집한 개인 데이터는 윤리적으로 사용 및 관리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테슬라는 지난해 판매된 차량에 탑재된 내부 카메라에서 고객 영상을 탈취해 사내 메신저에 유통한 바 있다. 이 사건은 테슬라가 대외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데이터는 너의 것이다’라는 약속을 위반한 사례다.
테슬라의 올해 브랜드 가치는 전년 대비 9% 하락했다. 브랜드 진정성은 고객 신뢰의 초석이다. 개인 보안이 AI 기술의 가장 큰 페인 포인트로 거론되는 만큼 소비자에게 투명한 보안 정책 제시와 이에 대한 소통을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기적 이익 창출을 위해 ‘보안 워싱’을 범하는 브랜드로 오해받을 수 있다.
원칙③ 상호작용성
AI의 대표적인 특징인 ‘상호작용성’은 맥락적 이해에서 비롯된다. AI가 가미된 서비스를 이용하는 유저는 자신의 상황적 니즈에 맞는 대응을 제공받길 원한다.
아마존 뮤직이 올해 공개한 프롬프트 기반 플레이리스트 생성 AI 마에스트로는 유저의 감정을 읽기 위한 첫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마에스트로는 기존 플레이리스트 생성 AI와 달리 이모티콘과 같은 비언어적인 프롬프트에도 개인 맞춤화된 사운드트랙을 생성하며 유저 성향에 맞춰서 프롬프트를 역으로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AI와 상호작용하는 경험은 점차 감정적인 교류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하는 브랜드에 신뢰를 느끼고 이는 결국 호감도로 이어지는 단초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은 타협 없는 신뢰다. 현 경기장을 넘어 새로운 아레나에서도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리더로 성장하고 싶은가. 앞서 설명한 3가지 경험 원칙을 어떻게 브랜드 자산으로 승화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박정원 인터브랜드 한국법인 선임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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