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반환점] 윤 대통령, 선전한 '외교'…'트럼프 시대' 어려워진 후반전
트럼프 당선에 북한군 파병…위기 속 외교력 주목
(서울=뉴스1) 정지형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전반기 한미동맹 강화부터 시작해 한일관계 정상화를 발판으로 한 한미일 3국 협력 체계 구축까지 외교 분야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에 맞게 기존 4강(미국·중국·일본·러시아) 위주였던 외교 지평을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로 넓히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도 소득으로 꼽힌다.
여소야대라는 불리한 국내정치적 조건 탓에 '내치'(內治)에서는 고전했지만 '외치'(外治)에서는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으며 종횡무진했다.
임기가 절반을 지나는 동안 탄탄대로를 걸었던 외교지만 눈앞에 놓인 상황은 녹록지 않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조 바이든 행정부 뒤를 잇게 되면서 지금까지 공을 들였던 한미관계가 안갯속에 놓이게 됐다. 북한이 러시아에 군대를 파병한 것도 안보에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첫 과제는 한미동맹 강화
10일 윤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에 서게 된다.
지난 2022년 5월 10일 취임한 윤 대통령은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외교 비전으로 삼고 인도-태평양(인태) 전략을 수립하는 등 숨 가쁘게 2년 반을 달려왔다.
무엇보다 자국 우선주의와 함께 미중 갈등으로 자유무역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이념과 가치에 기반한 국가 간 연대가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우선 한미동맹을 한층 더 강화하는 데 집중하며 활로를 모색했다.
북한이 날로 핵·미사일 기술을 고도화하면서 이전과 같은 대북 억지력으로는 안보에 공백이 생길 우려가 커진 탓이다.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기술과 경제, 공급망 분야에서도 생존을 위해서는 미국과 협력 강화가 요구됐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열하루 만에 곧바로 방한한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것은 한미동맹 강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한국을 제일 먼저 찾았다.
이듬해인 2023년 4월 한국 대통령으로는 12년 만에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워싱턴 선언'에 합의하며 한미동맹을 '글로벌 포괄 전략동맹'으로 격상시켰다.
특히 양국은 한반도 핵 운용에 관한 공동기획·실행을 골자로 하는 핵협의그룹(NSC)을 출범하며 '한미 일체형 확장억제'라는 결실을 도출했다. 한미는 지난 7월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하며 미 핵전력에 한국 첨단 재래식 전력을 통합하는 확장억제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일 공개된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인터뷰에서 "북한이 만약 핵 공격을 했다고 하면 한미 핵 기반 안보동맹에 기초해 즉각적인 핵 타격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일관계 정상화 승부수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로
윤 대통령이 지난해 3월 국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에 '제3자 변제' 방안을 내놓으며 한일관계 정상화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반도 안보를 강화하려면 일본과도 협력이 필요했으며 한미일 3국 협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약한 고리였던 한일관계를 다시 접합해야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일본이 한국을 대상으로 반도체 핵심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수출 통제를 강화하면서 국산화 움직임이 컸지만 타격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점도 해결이 요구됐다.
윤 대통령은 당시 일부 참모들이 지지율 하락 우려를 나타내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며 글로벌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일 협력이 필수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윤 대통령은 미국을 국빈 방문하기 전인 지난해 3월 일본에서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와 회담을 하고 12년 만에 셔틀외교를 재개했다.
윤 대통령은 총 13차례에 걸쳐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며 일본 화이트리스트 한국 복원, 통화 스와프 재개, 한일 경제안보대화 신설 등을 달성했다.
한일관계 정상화에 힘 입어 윤 대통령은 한미일 3국 협력 체계 구축으로까지 나아갔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8월 미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3국 정상회의 연례화와 협력관계 제도화에 합의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미일이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을 강화하기로 했는데 미국이나 일본이 확보하는 군사정보뿐 아니라 경제정보도 같이 공유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외교 지평' 확장 노력
윤 대통령은 한미·한일·한미일 관계에서 나아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작업에도 매진했다.
안보와 기후변화 등 글로벌 복합위기에 대처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 국면에서 우방국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절실해졌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3년 연속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영국과 네덜란드,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과 협력을 강화한 것도 이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에 닿기까지 113개국을 대상으로 211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한-아세안 연대구상, 한-중앙아시아 K-실크로드 협력 구상 등 맞춤형 지역 전략을 수립하며 동남아, 중앙아에도 손을 내밀었다.
또 실패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2030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해 태평양도서국(태도국)과 아프리카 국가들까지 부지런히 접촉해 왔다.
적극적인 '세일즈 외교'도 강점을 보인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에서 300억 달러(약 37조 원) 투자 유치 약속을 따낸 것을 계기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는 타이틀로 세일즈 외교를 수행했다. 윤 대통령이 UAE와 사우디, 카타르에서 유치한 투자만 해도 112조 원에 이른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순방 때마다 비즈니스 포럼을 열면 대통령이 국내 기업인이 상대국 실력자를 만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해주려고 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사업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며 원전 수출에 청신호가 켜진 상태다.
잡음이 없지는 않았다.
임기 초반에는 소위 '날리면' 논란으로 한바탕 소동을 치렀으며, 부산엑스포 유치전에서 정부 예측과 달리 사우디에 대패하면서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오점으로 남아 있다.
만만치 않을 후반전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긍정평가 1위에 항상 '외교'가 오를 만큼 정상외교에서만큼은 상대적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기세가 계속 이어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예고되면서 임기 전반기 윤 대통령이 이룬 성과가 유지될 수 있을지부터가 관건이다.
더 강한 자국우선주의를 앞세우며 되돌아온 트럼프 대통령이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간에 이뤄진 합의를 바꾸려고 할 경우 한국으로서는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대통령실은 미국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측 공약을 분석하면서 캠프 인사들과도 긴밀한 접촉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도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지난달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집권 여당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즉흥적 성향이 강한 미국 정상, 임기 초반부터 궁지에 몰린 일본 정상과 함께 캠프 데이비드 합의사항이 모두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윤 대통령은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계기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뛰어넘는 '신한일관계'를 꿈꾸고 있기도 하다.
나아가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면서 한반도 안보에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른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북한이 실제 전선에 투입될 경우 전투 경험을 배양할 수 있게 되며, 파병으로 러시아에서 받을 반대급부로 핵·미사일 성능을 강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분명한 것은 북한 참전이 우리 안보에 칼을 겨누고 있다는 것"이라며 "필요한 예방 조치를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밖에 훈풍이 불기 시작한 한중관계를 진전시킬 방안도 윤 대통령을 고심하게 만드는 외교 사안이다.
kingko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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