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공사를 어떻게 3년에 끝냈을까①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경기일보 2024. 11. 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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뎡니의궤…“공사 실제 기간 겨우 28개월”
호참 공사 삭제, 낮춘 성 높이, 운반에 다양한 노력, 특별한 노임 정책 등
화성 성역은 평지북성과 그 시설물을 먼저 착수하기 위해 화홍문에서 시작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화성은 여러 면에서 독보적이다. 가장 놀라운 이야기는 “10년 걸릴 공사를 3년에 끝냈다”는 공사 기간 단축에 관한 내용이다. 뎡니의궤도 “1794년 봄 역사를 시작하여 1796년 가을에 공역을 마치니 총 34개월이다. 중간에 여섯 달을 쉬었으니 실제 기간은 겨우 28개월이다. 귀신의 도움이 있는 듯하다”라고 기록한다.

기간으로는 7년, 비율로는 70%를 단축한 것이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공기 단축 요인을 찾아볼 예정이다. 먼저 ‘3년’과 ‘10년’에 대해 정의해 보자. 이에 대한 정의가 바르지 않으면 단축 기간에 시비가 생기기 때문이다. 먼저 실제 공기 3년이다. 착공은 1794년 1월7일 부석시역, 14일 입표정기, 25일 성지개기 중 하나이고 준공은 1796년 9월9일 여장 필역, 10월15일 낙성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의궤에 34개월이라 했으니 실제 공기 3년은 확실하다.

다음 계획 공기 10년이다. 정조가 화성성역 기본계획인 ‘어제성화주략’을 공포한 후 조심태에게 “대체로 몇 년이나 걸릴 것 같은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조심태는 후에 감동당상이 된 인물이다. 이에 조심태가 “대략 10년을 기한으로 삼았습니다”라고 답변한다. 이 10년이 지금까지 알려진 계획 공기다. 10년은 정조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착공한 첫해 10월 흉년으로 공사 중단을 논의하던 중 정조가 “당초 10년을 기한으로 잡았으니 반드시 시일이 급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10년을 뒷받침하는 자료다.

화성은 처음 10년을 계획했으나 3년 안에 끝내 공기가 7년 단축됐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단축 기간은 당초 계획과 실제 공사의 공사량 차이와 관계가 있다. 당초 계획은 어제성화주략에 기록된 공사가 기준이고 실제 공사는 준공도서인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이 기준이다. 이를 비교하며 공기 단축 요인을 살펴보자. ‘공기 단축 7대 요인’이다. 게재 순서가 단축 기간의 크기 순서가 아님에 유의하기 바란다.

첫째, 호참 공사를 삭제했다. 당초 계획은 성 주위에 호참을 파도록 돼 있었다. 호참이란 성 밖에 연속된 웅덩이를 파 놓아 적의 접근을 지연시키는 시설이다. 화성에 계획된 호참의 크기는 ‘깊이는 1장5척, 바닥 너비는 3장, 위 너비 7장’이다. 깊이 3m, 평균 너비 10m, 길이는 최소 4천600보(5.4㎞)를 인력으로 파내고 양쪽 측면을 돌로 쌓는 어마어마한 공사다. 그러나 정조는 화성 주위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도랑이 있다는 이유로 호참공사 전체를 삭제하도록 지시했다. 이런 대규모 공사를 생략했으니 공기 단축에 큰 효과가 있었다.

둘째, 성 높이를 낮췄다. 당초 계획은 성 높이는 25척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정조는 평지성은 20척으로, 산상성은 16척으로 낮췄다. 이유는 여장 높이를 5척으로 대폭 높였고 성석의 크기에서 뒷길이를 길게 했고 내탁 크기도 최대한 넓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상성을 더 낮춘 것은 산을 기어오르는 적군에 비해 산 위의 아군이 방어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성 높이는 공기 단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평지성에서는 성 쌓기와 내탁 쌓기에서, 산상성에서는 필요한 성돌의 운반량을 대폭 줄인 것이다. 성 쌓는 공사량이 줄어 공기 단축에 큰 효과가 있었다.

셋째, 석산을 가까이에서 찾았다. 돌이 주재료인 화성 공사는 돌을 어디서 갖고 오느냐가 공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석산을 화성부 서쪽 5리쯤 숙지산과 그 서쪽으로 5리쯤 여기산에서 찾았다. 짧은 운반 거리다. 만일 용인 석성산이나 안양 관악산에서 채취했다면 공기 단축은 불가능했다. 당시에는 덤프트럭은 없었고 우마차가 유일한 운반 수단이었다. 당시에는 운반 거리가 공기에 결정적 요소였다. 가까운 석산 개발로 공기 단축에 큰 효과가 있었다.

화성 공사의 주재료는 돌이다. 운반 거리에 영향을 주는 석산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넷째, 운반에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화성 공사는 돌, 벽돌, 목재, 흙의 운반이 공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운반과 관련된 도로, 장비, 인력, 자재로 나눠 따져보자. 운반도로는 다행히 기존 도로를 대부분 사용하고 일부만 새로 길을 닦았다. “매우 평탄해서 운반하기가 쉬웠다”는 기록이 있다. 만일 오르막내리막이나 구불구불했다면 새로이 길을 닦아야 했다. 운반장비는 다양한 기구가 적재적소에 사용됐다. 대차, 평거, 유형거, 설마 등이다.

운반 인력의 노임정책은 특별했다. 첫째, 날품이 아니고 짐 수로 따져 능률급으로 지급했다. 둘째, 거리에 따라 차등을 둬 차등급으로 지급했다. 셋째, 힘이 약한 사람도 먹을 벌이는 되게 최저임금을 보장했다. 이런 운반 노동자에 대한 특별한 임금으로 운반 효율은 높았을 것이다. 운반 자재의 부피와 중량을 대폭 줄였다. 돌은 채석장 인근 치석소에서, 목재는 구포 치목소에서 1차로 크기별로 다듬어 부피와 무게를 감축해 운반량을 줄이고 나르기 편하게 했다.

기존 도로는 곧고 평탄해 새로이 길을 닦을 필요가 없었고 다양한 운반 기구를 적재적소에 사용했다. 운반 인력에는 특별히 성과급과 최저임금을 보장했으며 돌과 목재는 운반 전 다듬어 중량과 크기를 최소화한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노력은 공기 단축에 큰 효과가 있었다.

인력, 소, 말, 수레로 운반했다. 운반은 공기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지금까지 호참 공사 삭제, 성 높이 줄이기 등 골사량 축소와 석산의 인근 개발, 운반 도로, 운반 도구, 운반 인력의 효율 증대 등 여러 요인이 공기 단축의 바탕이 됐음을 밝혔다. 다음 편에는 나머지 단축 요인 세 가지를 밝힐 예정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알려진 공기 단축에 대한 여러 허구와 오류를 밝힐 예정이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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