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소송법 대가 이시윤 前 감사원장 별세

이시윤 전 감사원장. /조선DB

민사소송법학계의 대가(大家) 이시윤(89) 전 감사원장이 9일 별세했다.

고인은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58년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광주·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춘천·수원지법원장 등을 지냈다. 판사 생활 중 서울대 등에서 6년간 민사소송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다 1988년 헌법재판소가 설립된 후 초대 헌법재판관을 맡았고, 이어 1993~1997년 16대 감사원장을 역임했다.

고인은 민사소송법에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信義則)을 도입하고, 학계에 독일 이론을 소개하는 등 민사소송 제도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1982년 펴낸 민사소송법 교과서는 법학도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베스트셀러였다.

고인은 초대 헌법재판관으로서 이론적 기틀을 다지고 주요 결정을 내리며 헌법재판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권리구제형 헌법소원 1호 사건의 주심을 맡아 법원을 통하지 않고 직접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또 1993년 7월 국제그룹 양정모 전 회장이 낸 헌법소원 사건의 주심으로 5공화국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지시한 국제그룹 강제 해체 작업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대통령의 통치 행위에 대해 헌재의 첫 위헌 결정이었다. 이 밖에 검찰의 불기소 처분도 헌법소원 대상으로 삼기 위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재판관으로 재임 중 김영삼 정부의 감사원장으로 임명돼 공직 생활을 이어갔다. 고인은 특히 부정부패 척결에 집념을 쏟으며 감사원장 자문 기구로 부정방지대책위원회를 설치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 대형 사고 이후 부실공사 조사 및 방지 활동에 집중했고, 1995년 감사원법 개정으로 감사원의 독립성과 인사 자율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감사원장 퇴임 후에는 한국민사소송법학회 회장을 지냈고, 1999년부터는 민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민법 개정 작업을 지휘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고문변호사 등으로 활동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이광득·항득씨와 며느리 김자호·이선영씨, 손녀 이지원씨, 손녀 사위 류성주씨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2일 오전 8시. (02)2227-7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