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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승패 가른 러스트 벨트
올해 전 세계 최고의 정치 이벤트라 손꼽히는 2024 미국 대선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민주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으로 후보를 교체했고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유세 중 피격을 당하며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대선으로 기억될 듯 한데요.
미국의 47대 대통령을 선출한 이번 선거는 그 누구도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초박빙의 선거로 치러졌습니다. 그렇다 보니 선거기간 내내 경합지역에 대한 언급이 많았는데요. 오늘의 오리저널 이야기는 이번 대선 결과의 분수령이 됐던 지역, 바로 ‘러스트 벨트’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미국 산업화의 자부심, 러스트 벨트
러스트 벨트(Rust Belt). 직역하면 녹슨 지역인데요. 러스트가 바로 녹을 뜻하는 영어단어입니다. 금속이 부식하며 산화해 생기는 물질인 녹은 보통 철이 녹슨 ‘산화철’을 뜻합니다. 처음 생산돼 단단하고 매끈한 철들이 시간이 흐르고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생기는 녹은 결국 찬란했던 전성기를 지나치고 관리하지 못해 멈춰버린 산업의 쇠퇴를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러스트 벨트라 불리는 지역은 어디일까요. 한 때 전 세계 산업 흐름을 주도하던 심장부였던 러스트 벨트는 오대호와 애팔래치아 산맥을 사이에 중공업 도시들이 몰려있는 미국 북동부 지역을 지칭합니다. 서쪽 위스콘신주와 일리노이주를 시작으로 미시간주, 인디애나주, 오하이오주를 거쳐 동쪽 끝 펜실베니아주와 북부 뉴욕주가 러스트 벨트에 묶이는 지역입니다.
지금은 녹이 슨 도시들로 불리지만 이들 지역의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저 그런 유럽 이민자들의 나라에서 초강대국 미국으로 발돋움했던 세계 대전 전후가 바로 그때였습니다. 18~19세기 영국에서 본격화된 산업혁명의 여파는 미국으로도 빠르게 전파됐습니다.
특히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은 철강, 자동차, 기계 등 중공업 산업을 이끌 선도기업과 산업자본의 등장으로 전 세계 질서의 변화를 주도했습니다. 유럽에서 시작된 제1·2차 세계대전은 아메리카 대륙의 맹주에서 세계 질서의 수호자를 자청하는 미국의 탄생을 가져왔고 포드, GM, GE, US 스틸 등 20세기를 전후해 등장한 미국 기업들은 표준화와 대량생산을 앞세워 미국 산업의 역군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철강, 자동차, 기계 등 중공업 기업들이 꽃핀 텃밭이 바로 이 곳 러스트 벨트입니다.
풍부한 물과 석탄, 러스트 벨트를 키우다
이곳이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한 데는 지리적인 장점이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끼어 있는 오대호와 미국을 대표하는 미시시피강은 산업단지에 필요한 핵심 용수를 충분하게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석탄 매장량이 풍부하고 적지만 유전도 있어 석유와 셰일 가스도 채굴되는 애팔래치아산맥은 산업화의 핵심 원자재를 넉넉하게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진행되며 전 세계서 수요가 넘쳤던 군수용품과 물자를 생산하고 공급했던 지역 역시 바로 이 곳 북동부의 산업지대였습니다. 또한 전쟁이 끝난 뒤 전역한 군인들이 수많은 산업단지와 생산공장이 즐비한 이곳 러스트 벨트로 몰려들며 본격적인 성장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 곳은 틸 벨트 또는 팩토리 벨트로 불리며 불이 꺼지지 않는 활력 넘치는 도시들이 즐비했습니다.
철강의 피츠버그, 자동차의 디트로이트
산업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철강과 자동차가 바로 이 곳에서 생산됐습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피츠버그의 별명은 ‘철의 도시’입니다. 1901년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주도해 만든 ‘US 스틸’의 본사가 바로 피츠버그입니다.(흥부전-36화 참고) 또한 미국풋볼리그(NFL)의 해당지역 팀명 역시 ‘피츠버그 스틸러스’입니다. 국내서도 철로 유명한 도시 포항의 축구팀 이름이 포항 스틸러스입니다.
미국 산업 성장의 상징과도 같던 이 회사는 미국의 중공업 산업 쇠퇴와 함께 어려워졌고 결국 일본 제철이 이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선언했죠. 현재 그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이 역시 철이 녹스는 러스트 벨트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번 대선 국면에서 트럼프, 해리스 후보는 서로 경쟁적으로 일본제철에서 인수를 추진 중인 US 스틸을 절대 뺏기지 않겠다고 공약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산업화의 상징과도 같은 기업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것인데요. 이는 해당 지역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고 미국인들의 자부심을 지켜 지지층을 두껍게 만들려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미시간주의 대표적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도 러스트 벨트를 대표하는 곳입니다. ‘모터 시티’로 알려진 이 곳은 미국 자동차 산업 성장과 함께 메카로 성장했습니다. 포드, GM 등 크고 힘센 가장 미국스러운 자동차들이 대량 생산돼 전국 각지로 공급되던 전진기지가 바로 이 곳 디트로이트였죠. 디트로이트의 프로농구팀 이름이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인 것만 봐도 멈추지 않던 당시 자동차 공장의 이미지를 연상케 합니다.
멈춰버린 엔진, 석유파동에 무너지다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던 이 곳의 열기는 1950년대부터 살짝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미국 제조 부문의 GDP 성장률은 1953년 정점을 찍은후 감소하기 시작했고 1960년대에부터는 전쟁의 후폭풍을 모두 지나친 일본·독일 등 아시아와 유럽의 제조강국이 본격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미국 제조업을 위협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쳐 발발한 ‘석유 파동’은 미국 제조업 쇠락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중동발 정치적 불안으로 석유 공급이 부족해지고 가격이 폭등하면서 전 세계적 위기를 가져왔는데요. 자동차가 사람의 발 역할을 했던 미국에서는 석유 파동으로 인한 자동차 산업 타격은 디트로이트의 쇠퇴를 가져오게 됩니다.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이 부흥했던 당시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에 이어 인구 4위 도시까지 오르며 강력한 노동계층이 성장해던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1950년 185만명으로 최다 인구를 찍은 후 1970년 151만명에서 1980년 120만명으로 급감하며 인구 감소 충격파를 맞기도 했습니다.
당시 크고 잘나가던 미국 자동차는 그만큼 연비가 좋지 않았었는데요. 석유파동이 터지면서 연비가 좋고 튼튼한 일본·독일 차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며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이 완전히 몰락하게 됩니다. 토요타, 혼다, 닛산과 같은 일본 차가 대거 미국으로 진출했던 시기도 바로 이 때입니다.
녹슨 도시들, 악의 고리를 만들다
도시를 이끌어가는 산업이 길을 잃자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남아있던 제조업체들조차 친노동자 분위기가 강했던 이 곳 러스트 벨트를 떠나 남부나, 서부 등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고 기업이 사라지자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도시는 슬럼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가 슬럼화되면서 치안도 나빠지고 사건 사고가 늘어나는 도시도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결국 반짝이던 철근과 자동차들은 녹이 슬고 부서지며 고장나 버렸습니다.
다시 대선으로 돌아와 사실 수많은 노동자가 거주하던 러스트 벨트 지역은 친노동자 정당이라 불리는 민주당의 강력한 텃밭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민주당은 이 곳 러스트 벨트를 떼놓은 당상처럼 여겼고 지지층 관리를 소홀하게 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45대 대통령에 올랐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당시 러스트 벨트를 집중하여 공략해 민주당 텃밭을 빼앗은 것 역시 선거 승리의 숨은 공신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후 정신을 차린 민주당과 재미를 맛본 공화당은 러스트 벨트 사수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엎치락뒤치락 그 결과가 뒤바뀌고 있는 해당 지역의 정치색은 이번 대선에서도 성패를 가를 핵심 경합지역으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지역을 이끌던 중공업 산업은 퇴색했지만 정치적 영향력 만큼은 반짝반짝 빛나는 철과 같은 러스트 벨트. 스러진 녹을 잘 긁어내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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