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영 수원FC 감독 "심박수 145까지…사령탑 7년차 우승 뿌듯"
"내년엔 통합우승 목표…은퇴하는 심서연, 내겐 오늘의 MVP"
(서울=연합뉴스) 설하은 기자 = "손목에 착용한 워치를 보니 심박수가 145까지 올랐더라고요. 하하."
화천 KSPO의 파상공세를 막아내고 여자축구 수원FC 위민을 WK리그 챔피언으로 이끈 박길영 감독이 경기 중 극도로 긴장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박길영 감독이 지휘한 수원FC는 9일 강원 화천생활체육공원에서 열린 디벨론 WK리그 2024 챔피언결정 2차전에서 화천 KSPO에 1-2로 졌으나 1, 2차전 합계 3-2로 앞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박길영 감독은 우승 직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생각이 났다. 올 시즌 다사다난했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오는 과정도 힘들었는데,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줬고 스태프들도 열심히 할 일을 해줬다"며 영광을 돌렸다.
박 감독이 입을 열자마자 '지난해' 얘기부터 꺼낸 이유가 있다.
박 감독과 수원FC는 지난해 인천 현대제철과의 챔피언결정 1차전에서 3-1로 먼저 이기고도 2차전에서 2-6으로 대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올해도 수원FC는 1차전에서 정규리그 우승팀 KSPO를 2-0으로 이겨 기선제압을 했다.
수원FC는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했다. 그러나 박 감독도, 선수들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박 감독은 1차전에서 승리하고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부담이 상당했다"는 박 감독은 "우린 지난해에도 그런 일을 겪어본 팀이기 때문"이라며 "후반전에 KSPO의 파상공세에 밀리면서 워치에서 측정된 심박수가 145까지 찍히더라"라고 말했다.
수원FC는 일주일 만에 플레이오프(PO), 챔피언결정전 2경기를 모두 치르는 강행군을 펼쳤다.
박 감독은 "경기가 없는 날엔 훈련보다 회복에 중점을 뒀는데, 경기 막판 선수들의 다리가 떨어지지가 않는 걸 보니 안타까웠다"며 "KSPO의 공세가 거세질수록 지난해 기억이 떠올랐다"고 털어놨다.
이날 수원FC는 경기 시작 6분 만에 KSPO 최유정에게 실점했다. 악몽이 재현되는 듯했다.
"경기 전 선수들에게 초반 5분만 버티자고 했는데, 실점 시간을 보니 6분이더라. 5분은 버텼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라며 머쓱해한 박 감독은 "10분만 버텨보자고 할 걸 그랬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길영 감독은 전반전 흐름이 좋지 않자 전은하 카드를 전반 30분 만에 꺼내 들었다.
박 감독의 용병술은 적중했다.
전은하가 전반 37분 동점 골을 터뜨렸다.
박 감독은 "계획에 없던 골"이라며 웃은 뒤 "전은하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후반전 상황을 보고 기용하려고 했는데, 미드필드에서 송재은이 밀리는 경향이 있어서 빨리 바꿨다"고 설명했다.
전반 추가 시간 KSPO 최정민에게 한 골을 더 내줘 1, 2차전 합계 점수에서 3-2로 아슬아슬하게 앞서던 수원FC는 KSPO의 계속된 폭격에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손에 땀을 쥐어야 했는데, 결국 추가 실점을 막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심박수 145'는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게 됐다.
이날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수원FC는 14년 만에 왕좌를 탈환했다.
통합 11연패를 달성한 인천 현대제철 왕조도 종말을 고했다.
박 감독에겐 사령탑 경력 7년 만에 얻어낸 첫 우승 트로피다.
2015년 수원FC의 전신 수원시시설관리공단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박 감독은 2017년 시즌 도중 감독 대행을 맡았고 2018년부터 정식으로 팀 지휘봉을 잡았다.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라는 큰 목표를 이룬 박 감독의 시선은 이제 '통합 우승'에 닿는다.
박 감독은 "지난해엔 리그 3위, 챔프전 준우승을 했다. 올해는 리그를 2위를 마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며 "내년엔 정규리그 1위를 하고 통합우승까지 이루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더 큰 목표를 위해 비시즌 자유계약선수(FA)와 외국인 선수 영입으로 세대교체를 꾀할 생각이다.
이날 수원FC의 선발 명단 중 4명이 30대고, 선수단 전체적으로도 20대 후반∼30대 선수들이 많은 편이다.
박 감독은 "내가 알기로도 우리 팀 스쿼드의 평균 연령대가 리그에서 가장 높다"며 "세대교체가 어느 정도는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피를 수혈해 신구 균형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를 끝으로 그라운드와 작별하는 심서연(35)을 향해서는 고마움을 표했다.
박 감독은 "2010년 수원시시설관리공단에 입단해 우승을 경험했고, 선수 생활의 끝도 우승으로 장식했다. 그만큼 관리를 잘했다는 것"이라며 "올해 초 모친상 이후에도 잘 버텨 줘서 감독 입장에서는 정말 존경스럽고, 고맙다"고 말했다.
심서연에게 지도자 생활에 관한 의중을 물었다가 퇴짜만 맞았다는 박 감독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쉬겠다더라. 지도자는 죽어도 안 한다고 했다"며 "오히려 내게 '감독님은 안 힘들어요?'라고 반문하더라"라고 전했다.
후반 시작 직후 최유정의 결정적인 슈팅을 골 라인에서 머리로 건져낸 심서연이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상을 받고 싶어하는 눈치였다고 전한 박 감독은 "오늘만큼은 최고의 MVP"라며 그의 활약을 칭찬했다.
MVP를 수상한 문미라에겐 "주장으로서 중심을 잡아준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며 "후배 선수들과 선배 사이에서 조율을 잘 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soru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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