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나 발굴되던 유적이 경산에···"역사 문화 자산, 보존과 활용 시급"

김철우 2024. 11. 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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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신라 초기 경북 경산에 있었던 고대국가 압독국의 존재를 알려주는 곳이 임당동 고분군입니다.

여기에서 경주에서나 발굴되던 4단짜리 금동관과 함께 4~6세기 압독국의 최고 지배계층의 유물로 추정되는 유물과 흔적들이 함께 발굴됐습니다.

◀한지욱 조사팀장 경북문화재단 문화유산원▶ "이런 크기는 임당동에서 발굴 조사됐던 석실의 크기에 비해서 아주 큰 사이즈가 되겠고요, 봉분의 너비로 봤을 때 저희가 추정한 봉토의 범위(지름)는 대략 15m 정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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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신라 초기 경북 경산에 있었던 고대국가 압독국의 존재를 알려주는 곳이 임당동 고분군입니다.

여기에서 경주에서나 발굴되던 4단짜리 금동관과 함께 4~6세기 압독국의 최고 지배계층의 유물로 추정되는 유물과 흔적들이 함께 발굴됐습니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 출토됐고, 이 일대에 더 많은 유물이 묻혀 있는 것으로 예상되지만, 예산 부족 탓에 땜질식 발굴 조사만 이뤄지고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김철우 기자입니다.

◀기자▶
경북 경산 임당동 고분군의 발굴 조사가 한창입니다.

고대국가 압독국 지배층의 무덤입니다.

석실의 크기는 길이 330cm, 넓이 245cm로 꽤 큰 규모입니다.

◀한지욱 조사팀장 경북문화재단 문화유산원▶ 
"이런 크기는 임당동에서 발굴 조사됐던 석실의 크기에 비해서 아주 큰 사이즈가 되겠고요, 봉분의 너비로 봤을 때 저희가 추정한 봉토의 범위(지름)는 대략 15m 정도 됩니다."

석실 바닥은 경산 지역 암반 대부분을 차지하는 퇴적암 위에 자갈을 깐 형태입니다.

석실 벽은 화강암을 가져와 다듬은 뒤, 아치형으로 쌓았습니다.

석실 벽에는 회칠까지 한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 4단짜리 신라의 금동관이 발굴되면서 고분의 주인은 지위가 상대적으로 꽤 높은 지배층 인물로 추정됩니다.

이 밖에도 순금 귀걸이와 허리띠 장식 등도 함께 발굴됐습니다.

◀정인성 교수 영남대 문화인류학▶ 
"신라 중앙정부에서 지방을 다스리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회유책을 썼을 것인데, 금동관 자체도 신라 중앙에서도 흔하지 않은 타입이기 때문에 이번 발굴에서 나온 금동관과 이식(귀걸이)을 소유하고 있었던 피장자는 이 지역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

그런데, 이번 발굴 조사는 훼손된 고분 천장 부분에 해당하는 개석이 발견되면서 시작됐습니다.

발굴 장소 주변에도 유물이 출토될 가능성이 많지만 예산 부족으로 추가 발굴 조사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신영애 조사연구 1팀장 경북문화재단 문화유산원▶ 
"(임당동) 대형 봉토분 같은 경우에는 20~30%(발굴 조사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대형 봉토분 아래 그 이전의 유구들이 많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임당동) 전체를 보면 아주 미미할 것 같습니다, 조사된 것은."

4~6세기 사이는 신라가 경주를 넘어 경상도 지역으로 벗어나 본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던 시기입니다.

경주를 비롯해 경북 지역에는 기원전 2세기부터 천 년이 넘는 고대 국가의 역사 유적과 유물들이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때그때 땜질하듯 발굴 조사만 되풀이하기보다 우리의 역사 문화 자산을 지속 가능하게 보존하고 활용할 긴 안목의 계획과 실행이 필요해 보입니다.

MBC 뉴스 김철우입니다. (영상취재 장성태, 그래픽 한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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