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치밀했던 육군 중령의 살인극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피해자 살아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1인2역까지
(시사저널=정락인 객원기자)
강원도와 경기도를 흐르는 북한강은 한강의 상류를 이루는 국가하천이다.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위라리와 화천읍 하리 사이의 북한강에는 화천대교가 있는데, 1985년 국방부가 군사작전과 병력 수송, 보급로 확보를 위해 건설했다. 11월2일 오후 2시46분쯤 화천대교 하류 300m 지점인 화천체육관 앞 북한강에 사람의 다리로 보이는 시신 일부가 떠올랐다. 이를 목격한 고등학생은 곧바로 112에 전화를 걸어 "사람 다리가 물 위에 둥둥 떠있다"고 신고했다.
고등학생이 하천에 떠있는 토막시신 발견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은 여성으로 추정되는 토막시신 일부를 발견하고 수사본부를 차렸다. 나머지 시신을 찾기 위해 재난구조대, 수색견, 드론 등을 대거 투입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
다음 날 오전 시신이 처음 발견된 곳에서 600m쯤 떨어진 붕어섬 선착장 인근에서 몸통과 팔, 다리 일부가 든 비닐봉지 여러 개가 추가로 발견됐다. 3일째인 11월4일 오전에는 머리 등 나머지 시신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찾아냈다. 훼손된 시신은 10여 개의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다. 다행히 시신의 부패 상태가 양호해 지문과 디옥시리보핵산(DNA) 감정을 통해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임기제 군무원인 A씨(여·33)였다.
피해자 신원을 파악한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하기 위해 A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분석하고 가족 탐문 등을 벌였다. 그러다 시신 유기에 사용된 비닐봉지의 묶음 테이프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다.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성인 남성의 지문이 검출된 것이다. 경찰은 피해자와 같은 부대에 근무하는 양아무개씨(남·38)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 그는 사이버전을 수행하는 국방부 산하 국군사이버작전사령부 소속으로 중령 진급 확정자였다.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추적,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양씨를 추적하다가 11월3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서 그가 몰던 승용차를 발견한다. 차량 주변을 탐문하던 경찰은 한 시민으로부터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가는 수상한 남성을 봤다"는 제보를 받는다. 경찰은 양씨가 지하철을 이용해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인근에 있는 3호선 일원역 일대를 집중수색해 지하차도를 배회하던 양씨를 발견하고 긴급 체포했다. 양씨는 저항 없이 순순히 체포에 응했으며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범행 후 짜인 각본처럼 행동
양씨와 피해자인 A씨는 경기도 과천의 사이버작전사에서 함께 근무했다. 양씨에 따르면 두 사람은 평소 친하게 지냈으나 사건 당일인 10월25일 금요일 오후 3시쯤 부대 주차장에 있던 양씨 승용차에서 심하게 말다툼을 벌인다. 화가 난 양씨는 A씨를 그 자리에서 목 졸라 살해했다. 이때부터 양씨는 치밀하고 대담하게 움직인다. 시신을 옷가지로 덮은 다음 승용차는 그대로 주차장에 놓았다. 시신을 트렁크로 옮기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 주차하기보다는 부대 주차장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짙은 선팅으로 차량 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을 수 있었다. 범행 후 양씨는 A씨의 휴대전화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퇴근 후인 오후 7시쯤에는 시신이 들어있는 승용차를 몰고 부대 밖으로 나섰다. 부대 인근을 돌며 시신 훼손 장소를 물색하고, 작업에 필요한 흉기와 도구를 챙겼다. 오후 9시쯤 양씨는 승용차를 몰고 미리 점찍어둔 건물 철거 공사장으로 이동한다. 이곳은 밤에는 인적이 드물고 이미 철거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범행 장소로는 최적지로 판단됐다. 하지만 아직 퇴근하지 않은 공사장 관계자가 있었고, 낯선 차량이 주차돼 있자 "여기서 뭐 하느냐. 공사장이니 나가라"고 하자 양씨는 태연하게 "이곳에 주차하면 안 되냐"고 물으면서 인근의 같은 공사장으로 간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간다.
양씨는 차량에서 시신을 꺼낸 후 미리 준비한 도구를 이용해 잔혹하게 훼손하고 여러 개의 비닐봉지에 나눠 담았다. 그 안에 물에 잘 가라앉도록 무거운 돌덩이를 넣고 테이프로 밀봉했다. 양씨는 훼손한 시신을 차량으로 옮겨 싣고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향한다.
양씨는 시신 유기 장소로 강원도 화천 지역을 선택한다. 이곳은 10여 년 전 근무한 적이 있어 지리를 잘 알고 있었다. 범행 2일째인 10월26일 오후 양씨는 국도를 이용해 화천으로 이동했고, 중간중간에 시신 훼손에 사용한 도구들을 버렸다. 오후 9시40분쯤 화천대교 인근에 도착하자 훼손한 시신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하나씩 북한강에 던져 가라앉혔다. A씨의 옷가지와 소지품 일부도 불에 태웠다. 범행 3일째에는 차량에 묻은 혈흔이나 지문 등 범행 흔적을 지우기 위해 세차를 했다.
양씨는 범행 이후 피해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위장했다. 자신이 피해자인 척 1인2역을 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A씨의 휴대전화를 십분 활용한다. 임기제인 A씨는 10월말로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었다. 주말을 빼면 출근 일자는 4일 정도 남았었다. 만약 A씨가 무단결근할 경우 범행이 탄로 날 것이 뻔했다.
그러자 양씨는 A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10월27일 일요일 부대 관계자에게 '남은 근무 일수는 연가 처리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부대 측은 근무일이 며칠 남지 않은 A씨가 출근하지 않자 연락을 시도했으나 휴대전화가 꺼져 있었다. A씨는 예정대로 10월말에 계약이 종료됐다. 양씨는 A씨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면서 전원을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A씨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어디 가서 머리를 식히고 오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A씨 어머니는 딸이 귀가하지 않고 통화가 되지 않자 경찰에 미귀가 신고를 했으나 범죄 피해 사실은 인지하지 못했다.
A씨가 출근하지 않은 날인 10월28일 월요일 양씨는 서울 송파구에 있는 산하 부대로 전근 발령을 받았다. 그는 이날 정상적으로 출근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이때만 해도 양씨의 뜻대로 완전범죄가 되는 듯싶었으나 범행 일주일 만에 시신 일부가 떠오르면서 덜미가 잡힌다. 양씨가 용의선상에 오르더라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으면 실종 사건으로 처리돼 미제로 남을 가능성도 있었다. 양씨는 검거 직전까지 A씨의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가 파손한 후 일원역 일대 주차장 배수로에 버리면서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경찰은 양씨에 대해 살인 및 사체손괴, 사체은닉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사건의 실체 여전히 베일에 싸여
이번 사건은 범인을 빠르게 잡았지만 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피해자의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에서도 구체적인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시신 훼손에 사용된 도구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경찰은 양씨와 A씨의 휴대전화를 확보한 후 디지털포렌식 작업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휴대전화에서 사건의 실체가 얼마나 드러날지는 미지수다. 그나마 A씨의 휴대전화는 훼손 정도가 심해 복구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태다. 양씨의 진술에만 의존하다 보면 자칫 사건의 진실이 묻힐 수도 있는 것이다.
■범인 잡혔으나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
초범으로 보기엔 너무도 대담한 범행 수법
먼저 양씨의 범행동기가 불분명하다. 지금까지는 승용차 안에서 말다툼하다 우발적으로 목 졸라 살해했다고 알려졌으나 어디까지나 양씨의 주장에 불과하다. 양씨가 A씨를 자신의 승용차로 유인한 후 계획적으로 살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낮에 그것도 군부대 주차장에서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면 목격자가 있을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실제 말다툼을 하고 그것이 살인으로 이어졌다면 그게 어떤 내용인지 우선 밝혀야 한다. 양씨가 무엇 때문에 살인충동을 일으켰는지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다.
양씨는 범행 후 지금까지 죄책감을 느끼거나 반성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면서 기자들이 '피해자나 유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묻자 침묵으로 일관했다. 보통은 가식적으로라도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지만 양씨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이것은 양씨가 자신의 범행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상대에 대한 앙심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양씨와 A씨의 관계도 의문이다. 두 사람이 단순히 친한 부대 동료였는지 아니면 치정 문제로 엮였는지 알 수 없다. 여기에 금전 문제나 업무상 갈등 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을 수도 있다.
양씨는 또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고 있으나 범행 전후의 행동을 보면 계획적 살인에 무게가 실린다. 그는 범행 후 무서울 정도로 대담하고 잔인하고 치밀하게 움직였다.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마치 짜인 각본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고,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살아있는 것처럼 위장까지 했다.
양씨가 A씨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던 점도 석연치 않다. 두 사람이 단순한 친분 이상의 관계일 수도 있지만 흉기로 위협해 비밀번호를 알아낸 다음 살해했을 수도 있다. 계획범죄라면 후자에 속한다.
양씨의 범행에서 특히 소름 돋는 것은 시신 처리 과정이다. 양씨는 시신을 승용차에 싣고 다른 곳이 아닌 부대 인근 공사장으로 이동했다. 공사장 관계자에게 들키자 태연하게 빠져나와 다른 지역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는 같은 공사장으로 갔다. 양씨는 또 이곳에서 직접 준비해온 도구를 이용해 혈흔과 흔적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처리했다. 양씨를 검거한 후 경찰이 이곳을 압수수색했지만 이미 옹벽과 바닥 등이 철거돼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시신 처리 장소와 방법이다. 지금까지 발생한 토막살인은 대부분 실내에서 이뤄졌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영철·오원춘·김하일·조성호·이은석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시신을 들키지 않고 건물 밖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시신을 훼손했다. 양씨의 경우에는 승용차 안에서 살해했기 때문에 암매장 등의 방법으로 얼마든지 시신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들키기 쉬운, 훼손하는 방법을 택했다. 양씨가 시신을 훼손한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양씨의 범행은 초범으로 보기에는 너무 대담하고, 학습효과를 통한 수법이라면 여죄를 의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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