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의 아름다움을 만끽⋯ 경기도 산성 투어

조혜정 기자 2024. 11. 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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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산세를 이용해 쌓은 성곽을 산성이라고 한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산성이 발달했고 평야 등 너른 땅을 앞에 두고 높은 산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고구려 시기부터 산성을 이용한 방어전략을 사용했으며 이런 방식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읍성 인근에는 1개 이상의 산성이 자리했다.

산성은 크게 포곡식(包谷式) 산성과 발권식(鉢圈式) 산성으로 나뉜다. 포곡식 산성은 산기슭에서 시작해 능선을 따라 정상 가까이 축조한 성곽이다. 계곡을 하나 이상 포함해 성내 가용면적을 넓히고 수원을 포함해 평소 주민들이 거주하거나 지구전으로 이어질 경우 용이하도록 쌓은 것으로 북한산성, 남한산성 등이 대표적인 포곡식 산성이다.

발권식 산성은 산 정상을 중심으로 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모습으로, 산 둘레를 성벽으로 두른 것처럼 보여 테뫼식 혹은 머리띠식으로 불리기도 한다. 포곡식에 비해 작은 규모의 산성이 이에 속하며 부여의 증산성, 순천의 검단산성 등이 있다.

높은 지형에 짓는 산성은 그만큼 방어하기 유리하다는 것이 전시시 가장 큰 장점이다. 산의 경사와 높이가 적군에겐 상당히 부담을 주는 요소였고 평지에 비해 큰 기술을 보이지 않아도 방어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산의 크기에 맞춰 짓는 성곽이어서 원하는 크기로 지을 수 없고 산세가 험한 것은 교통이 불편하다는 의미로 전쟁이 길어지고 물이나 식량이 끊기면 병력의 삶은 피폐해졌다.

산과 숲 사이 방어를 위해 지은 성곽은 현대인들에겐 걷기 좋은 산책로이자 지역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한다. 산이나 성곽 규모에 따라 코스도 다양해서 본격적인 등산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도 가을 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된다.

남한산성.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제공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1624년(인조 2) 서울의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축성을 시작해 1626년에 완공했다. 평균 고도 해발 480m 이상으로 험한 산세를 이용해 지형적으로도 방어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곳으로 둘레가 12km에 이르며 산 위에 도시가 위치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분지로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조선시대 보장처로 지었다. 완공 10년 뒤인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의 대표적인 탐방로는 사방에 나 있는 문에서 시작하거나 회귀하는 코스다. 첫 번째 동문길은 약 9.5km로 남한산성 동문(좌익문)에서 시작해 남한산성 로터리를 지나 북·서·남문을 지나는 순환길이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서 출발해 남한산성 서문(우익문)까지 이르는 서문길은 약 2.1km 1시간 남짓 소요되며 감이동 초입의 먹자골목을 지나 남한산성의 다양한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다.

위례동주민센터에서 출발해 위례성복교회를 지나 남한산성 남문(지화문)까지 이르는 남문길 약 6.5km로 3시간 이상 소요되며, 하남시 광주향교에서 출발해 남한산성 북문(전승문)까지 걷는 북문길은 초입에 위치한 광주향교와 상사창동연자마 등 다양한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

독산성. 오산시 제공

■ 권율 장군의 기세를 엿보다, 독산성
독산성의 축조 시기는 분명치 않다.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백제가 쌓은 고성이었고 신라통일기·고려 시대에서도 군사상 요지로 돼 있어 그 시기를 짐작할 뿐이다.

본성의 총연장은 1천100m, 내성은 350m에 불과한 아담한 산성인 독산성은 군사기지로 주요 위치에 놓여있었지만 물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다.

1593년(선조26) 독산성 전투 당시 왜군을 이끌던 우키다 히데이에는 독산성 내부에 물이 떨어졌을 것을 짐작하고 탐정 군사에게 물을 올려보냈다. 하지만 권율 장군은 이에 속지 않고 오히려 백마를 산 위로 끌어올려 흰쌀을 끼얹어 말을 씻기는 것으로 위장해 왜군을 교란했다. 이를 본 왜군이 물이 많은 것으로 짐작하고 퇴각했다는 일화는 물이 부족한 단점을 권율 장군이 슬기롭게 극복한 일화로 전해진다. 이 병법 전략에서 유래해 지금은 ‘세마산’ 또는 ‘세마대’로 부르기도 한다.

독산성 숲길은 오산시 오색길 중 4코스에 해당하는 길로 1km 남짓, 왕복 1시간이면 가능하다. 우선 독산 정상에 오르면 보적사를 만나게 된다. ‘보적사’라는 이름은 춘궁기에 먹을 것이 부족했던 노부부가 부처님께 공양을 하고 집에 오니 곳간이 쌀로 가득찼고, 이를 부처님의 은덕으로 여긴 노부부가 더욱 열심히 공양했다는 전설이 담겼다.

강화산성. 강화군 제공

■ 흙으로 지어진 토성의 굳건함, 강화산성
1964년 사적으로 지정된 강화산성은 몽골의 2차 침략을 막기 위해 1232년 착공해 1234년부터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했다.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뤄진 이 성은 모두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내성은 강화성으로 둘레가 1천174m, 중성은 5천381m, 강화 동쪽 해협을 따라 지어진 외성은 1만1천232m였으나 1270년 몽골의 요구로 헐어 버렸다. 이후 1973년 남문, 2004년에 동문을 복원한 상태다.

산성 내부에는 남문인 안파루, 서문인 첨화루, 동문인 망한루, 북문인 진송루가 남아있으며 암문 4개, 수문 2개 그리고 높은 곳에서 망을 보기 위한 남장대와 북장대 등 방어시설이 있다. 성의 동쪽이 허물어진 것에 비해 남북쪽은 잘 보존돼 있는 편이다.

강화산성을 둘러볼 수 있는 여러 코스 중 강화 나들길 15코스에 해당하는 ‘고려궁성곽길’은 총 11km 길이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강화산성 남문에서 출발해 남장대를 거쳐, 서문, 북문과 고려궁지를 지나 동문에 다다른다. 특히 감시를 위해 지어진 남장대에 오르면 강화읍과 영종도까지 내다보일 정도로 풍광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조혜정 기자 hjc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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