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노상현 "금수저 아냐… 20대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 겪은 적 있어"[인터뷰]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와 기자의 인터뷰 자리들이 최근 들어 판에 박힌대로 흘러가는 경우들이 왕왕 있다. 매주 3~4개 이상의 영화, OTT, 공중파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각 주연배우들의 인터뷰가 넘쳐난다.
각 배우들과 매체 취재진의 1대 1인터뷰를 통해 심층 취재가 오갔던 것은 호랑이 담배 피던 옛날 옛적 이야기다. 많게는 20여명의 취재진 적게는 10여명의 기자들을 눈 앞에 두고 한 명의 배우가 라운딩 인터뷰라는 이름 하에 기자간담회 비슷한 형식의 인터뷰가 이어지곤 한다.
아무리 질의에 나서는 매체의 기자들이 달라진다 해도 공통 질문은 나올 수 밖에 없고 인터뷰에 나서는 배우의 입장에서는 하루에 5~6시간 동안 비슷한 질문의 대답을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면 서로 다르게 답하려고 해도 '그 나물에 그 밥'같은 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장흥수 역을 연기한 노상현은 언론시사회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 현장에서의 모습부터 좀 색달랐다. 상당히 긴장하며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한 호흡으로 고르고 골라 대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면 서울 삼청동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의 모습은 연기자 혹은 배우로서의 면모보다는 인간적 면모가 더 두드러졌다. 보통의 인터뷰이들이 질문을 듣고 대답하는 역할에 자신의 중심을 둔다면, 노상현은 시작부터 기자에 대한 여러가지를 물었고, 대화를 능동적으로 여러 차례 주도해 나갔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신선한 인터뷰였다.
대부분의 신인 배우 인터뷰에서 연기 활동에 대한 욕심이나 성공에 대한 열망 같은 것들이 은연 중 드러나 보인다면 노상현은 "그런 마음이 저를 그곳에 데려다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 것은 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면 된다. '파친코'도 그런 마음으로 했다. 제 자리에서 할 일에 집중하면 알아서 온다. 만일 오지 않았다면 내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내 모토같다. 내 것이 아닌 것이 내게 오는 걸 바라지 않는다.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성공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전의 양면 같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라면 미래에 저에게 독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것은 원하지 않는다. 제가 가질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가더라도 조절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공이면 좋겠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노상현의 차기작은 김은숙 작가가 대본을 쓰고 김우빈, 수지와 함께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시리즈 '다 이루어 질지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언희 감독)은 남들의 시선이나 눈치 따위에는 아랑곳없이 사랑을 향해 직진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재희(김고은)와 고교 시절 성정체성에 대해 깨닫지만 세상에 거리를 두는 것에 익숙한 흥수(노상현)가 한 집에서 동거동락하며 펼치는 그들만의 사랑법을 그렸다.
- 이번 영화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
▶ 영화사에서 먼저 연락을 주셨다.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가벼운 미팅을 하며 이언희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흥수와 재희의 이야기가 직관적으로 잘 그려져 있었다. 이 감독님은 섬세하시기도 했고 디렉션도 잘 주실 것 같은 분이셨다. 참여하게 된 과정 자체가 순조로웠는데 알고 보니 제가 캐스팅되기 전 남자 배우 캐스팅에 1년 반 정도 딜레이된 시간이 있었다고 하더라. 김고은 배우가 2년 넘게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렵게 들어가게 된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 이언희 감독이 제안 당시 어떤 이야기를 했나.
▶ 저에 대해 존중하는 말씀을 해주셨다. 너무 잘 할 것 같다고 말씀주셨다.
- 캐나다와 미국에서 중고교 시절을 거쳤고 미국 뱁슨 칼리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일반적인 국내 남자배우들과는 다른 이력을 가지고 있다.
▶ 배우로 데뷔한지 7~8년 정도 됐다. 공식 데뷔작은 독립 영화인 '악인은 살아있다'다. 저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것 같다. 제가 생각했을 때 배우들이 가지는 길이 어떤 패턴이 있다거나 그려지는 이미지 같은 것들이 있는데 '나는 어느 길을 깔까'를 상상해봤다. 쉽게 방법이 그려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모방한다거나 롤모델을 삼고 발자취 삼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만의 방식대로 가고 싶었다. '저 나름대로의 길로 가다보면 길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했고 학업 중 한국에 들어와 모델 일을 시작했다가 우연한 기회에 배우로 이어지게 됐다.
- 애플TV+ 시리즈 '파친코'의 이삭 역이 본격적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매력적 인물이어서 큰 사랑을 받았다. 인물 해석이나 목표점을 어떻게 가지고 갔나. 결핵을 앓는 이삭 역을 연기하고 나서 '병약 섹시'라는 별명도 생겼던데.
▶ 이삭은 따뜻하고 배려심 깊은 인물이었다. 이삭을 연기할 때 이상주의적인 면 가지고 있는 그의 내면을 제대로 구축하고 싶었다.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 어떤 인물을 파고들고 분석할 때 그가 어떤 사상을 가지기까지 어떤 생각과 경험을 했을까하는 걸 계속 고민한다. 이삭은 이상주의적인 생각을 현실적으로 풀어내려고 하는 인물이라고 봤다. 저 또한 어릴 떄 이상주의를 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그런 생각을 하는 걸 좋아했다. 그런 마음들로 내면을 만들려고 했고 표현 방식이나 이런 부분들은 여리고 순하게 표현해봤다. 많은 사랑과 이해가 넘치는, 포용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 '파친코'가 시즌2까지 방영을 진행했다. '파친코'는 노상현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나.
▶ 너무 소중했고 새로운 걸 많이 배웠다. 제 배우 인생 커리어에 변환점을 준 작품이다. 정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연기에 대해 몰입했고 열심히 했다. 연기를 하는 동안의 경험들이 저에게 굉장히 큰 심지를 만들어줬다. 내 배우 인생에 하나의 중심을 남겨줬다. 이후 많은 촬영들을 하면서 하나 하나 해나가면서 또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 '대도시의 사랑법' 이야기를 나눠보자. 흥수 역에는 어떻게 다가갔나.
▶ 흥수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힘들어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에게 가장 크게 작용한 건 정체성의 문제였다. 어릴 적 스스로를 나 자신으로서 인정하지 못한다는 결핍감과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결핍과 아픔이 있는 인물이다. 어릴 때 억압된 감정이 많을 거라 생각했고 그런 아픔이 있는 흥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겪었을 고독감, 수치심, 다양한 억울함 같은 감정들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저의 경제적 여건이 어떻던 간에 그의 아팜에 공감하고 표현해낼 수 있으면 저 또한 해낼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 오랜 북미 유학 생활로 인해 연예계 대표 엄친아로 손꼽히고 있다. 금수저 설이 한동안 연예가에 풍문으로 퍼졌었다.
▶ 금수저가 아니다. 저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도 겪었고 어려움을 겪은 시기도 있다. 그런 선입견을 가지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저도 젊은 시절 아픔이나 고통도 겪었고 흥수의 아픔을 알아보고 공감할 수 있었다. 감정 이입할 수 있었기에 이 인물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그에게 충분히 다가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 이언희 감독의 연출적 특징은 무엇이었나.
▶ 촬영할 때도 그랬지만 후반 작업과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 상업 영화로서도 충분히 재미있으면서도 소수자의 아픔이라던가 여성의 아픔 등 다양한 감정들을 잘 다루시고 또 그린 지점이 높게 평가됐다. 사실 우리는 만드는 입장이다보니 객관화되어 우리 영화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관객들 또한 너무 호응이 좋으시고 재미있어 하는 반응들을 보고 안심이 되더라.
- 영화에 대한 만족도를 점수로 표현한다면?
▶ 100점 만점에 100점을 주고 싶다. 음악도 좋았고 음악이 전체적 템포감을 잘 살려줬다.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졌고 풍성해지는 느낌이었다.
- 상대역 김고은은 데뷔 때부터 잘 했지만 특히 이 작품에서 연기가 물이 올랐더라.
▶ 나이는 저보다 한 살 동생이었지만 정말 저도 고은 배우가 연기 에너지가 너무 좋다는 걸 현장에서 느꼈다. 감정 표현이 특화되어 있었다. 표현을 탁월하게 잘 하더라. 말할 때 그만의 특별한 소리통이 있다. 대사할 때 나오는 소리가 다르다. 감정 표현이 대사에 잘 담겨나온다. 재희가 산부인과에서 나와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신에서 정말 너무 잘 표현해서 다시 한번 놀랐다.
- 재희와 흥수의 티키타카가 너무 좋더라.
▶ 마치 친구와 놀듯이 촬영했다. 실제 결도 잘 맞았다. 친해지고 나서 실제로도 장난을 많이 쳤다. 그런 느낌을 처음 느낀 순간은 재희 집에서 촬영 했을 때였던 것 같다. 첫신이 라면을 먹으며 소주를 가지러 가던 신이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탁 소주를 가지러 가는 신이 있었다. 지문에는 없었지만 고은 배우가 탁 튀어나가는 순간 앞으로 두 사람의 호흡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 이후로 호흡이 척척 맞았다.
- 살아 오면서 흥수처럼 혼란스러웠거나 고민한 시기가 있었나.
▶ 유학 시절이 그랬던 것 같다. 처음 갔을 때도 그랬고 유학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도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정체성은 무엇인지 고민이 됐었다. 유학생이긴 하지만 '한국인인가, 외국인인가' 고민이 들더라. 정서적, 문화적 차이도 있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어려움도 있었다. 나에 대해 많은 고민이 들었고 나만의 정체성에 대해 위기의식을 겪은 적이 있다. 20대 때 그런 혼란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세상을 알아가고 싶고 나에 대해 알아가고 싶었다. 워낙 고민을 하다보니 인생에 대해 알고 싶었고 사람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심리적인 것, 본질적인 것이 궁금했다. 그런 고민을 하다보니 연기에 자연스럽게 고민이 쏠리더라. 영화를 보거나 할 때 그렇게 관심이 생기게 됐다. 처음 연기자가 되고 싶었던 계기는 류승범 선배의 연기를 보고 그런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작품은 기억이 안난다. 자연스럽고 재미있었던 작품이었다. 류승범 선배에게서 이 직업을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느꼈다.
- 배우를 향한 꿈을 그렇게 꾸기 시작했나.
▶ 그런 것들이 흥미로웠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나 인물이 어떤 스토리를 끌고 가는 과정들이 재미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 스스로 필드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좋아하는지 알고 싶었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기 위해 한국에 와서 오랜 시간 한국에 있을 시간이 생겼다. 외국 생활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홀로 유학을 떠났다가 가족들과 지내기도 하고 또 홀로 지내기도 하면서 캐나다 밴쿠버와 미국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뉴욕과 보스톤 등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한국에서 섬머 스쿨을 지낼 수 있어서 군대 가기전 모델을 시작할 계기가 생겨서 모델 일을 시작했다. 그 경험을 하고 나서 너무 매력적이더라. 그러다가 다시 학교를 다 마치고 본격적으로 한국에 돌아와 배우에 도전하게 됐다. '오늘도 형제는 평화롭다'라는 웹드라마도 데뷔작에 가까운 드라마인데 이 드라마를 찍고 군대에 갔다. 군에 다녀온 뒤 기적적으로 '파친코'를 만나서 전역 1년 후 '파친코'를 찍게 됐다. 연기 시작한지 8년이 됐는데 중간에 쉰 시간도 있고 흥수처럼 대혼란을 겪은 시간도 있다. 그랬기에 흥수의 마음이 공감이 많이 갔다.
- 데뷔도 늦었고 아직은 신인 배우에 가까운데 성공을 향한 조바심이나 주연을 향한 기합 같은 것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 그런 마음이 저를 그곳에 데려다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 것은 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면 된다. '파친코'도 그런 마음으로 했다. 제 자리에서 할 일에 집중하면 알아서 온다. 만일 오지 않았다면 내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내 모토같다. 내 것이 아닌 것이 내게 오는 걸 바라지 않는다.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성공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전의 양면 같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라면 미래에 저에게 독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것은 원하지 않는다. 제가 가질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가더라도 조절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공이면 좋겠다. 차근차근 가다보면 10년 뒤 어떻게든 되어 있지 않을까.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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