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10억달러 받는 게 더 쉬웠다"…아빠 건물서 월세 걷던 그 소년[대통령의 직업]
[편집자주] 대통령의 '전직'은 중요합니다. 그들의 정치 성향과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후보를 소개할 때 그들의 전직을 내세우는 이유입니다.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은 '검사' 해리스와 '범죄자' 트럼프라는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공화당은 트럼프를 '성공한 사업가'로, 해리스를 '존재감 없는 부통령'으로 그렸습니다. 결국 미국은 '성공한 사업가'를 선택했습니다. 트럼프의 전직은 미국의 미래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요. 대통령의 전직이 미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앞선 대통령들의 삶을 통해 돌아봤습니다. 이 여정의 마지막 주인공은 미국 45대 대통령이자 47대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입니다.
미국 45대 대통령이자 47대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1946년생)가 2019년 재임 시절 한국과 방위비 협상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던진 허풍이다. 협상 분위기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소환한 어릴 적 아버지와의 추억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언급됐던 일화다.
트럼프의 아버지 프레더릭 트럼프는 뉴욕 최대 부동산 개발업자였다. 그는 뉴욕 외곽 퀸스와 브루클린 아파트를 돌며 월세를 받을 때 어린 트럼프를 데리고 다녔다. 나중에는 아들 혼자 월세를 받게 시켰다. 아버지 건물 월세 수금이 10대 시절 트럼프의 첫 아르바이트였던 셈이다. 그는 훗날 자서전 '거래의 기술'에서 아버지로부터 "월세 낼 능력이 없는 나쁜 세입자는 내보내는 게 이득이다" 등 가차 없는 사업 교육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던 트럼프는 1971년 경영권을 이어받고 사명을 '트럼프 그룹'으로 바꿨다. 1983년 '트럼프 타워' 등 부동산 개발로 이름을 알렸으나 카지노 사업에서 재정 문제를 겪기도 했다. 이후 그는 사업에 큰돈을 투자하는 방식보다 이름을 빌려주고 이득을 취하는 '네이밍 스폰서' 사업에 주력했다. 그는 자기 이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피자나 햄버거 광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곳곳 '트럼프' 간판이 걸린 건물 중엔 트럼프가 짓지 않았지만 이름만 빌려준 곳들이 많다.
트럼프는 연예 쪽 사업에도 발을 들였다. 그는 1996년 미스 유니버스, 미스 USA, 미스 틴 USA 등 미인 대회 지분을 사들여 2015년까지 운영했다. 2017년까지 '트럼프 모델 매니지먼트'라는 모델 에이전시도 소유했었다. 공동 제작한 NBC방송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수습생)'에서는 진행을 맡아 "넌 해고야(You're fired)"라는 유행어를 남기며 타고난 '쇼맨'의 자질을 드러냈다.
방송 진행자로서 키운 쇼맨십은 정치인 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 그는 TV쇼에서 보인 직설적이고 감정적인 어조를 정치 무대에서 그대로 사용했다. 시청자가 친숙하게 느끼던 스타일을 유지해 대중과 연결을 강화한 것이다. SNS(소셜미디어)에서도 강한 어조를 사용하며 유권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느낌을 강조했다. 그는 자극적인 언행으로 언론의 시선을 끄는 방법을 알았으며 대선 캠페인을 대형 TV쇼처럼 연출하기도 했다. 이는 기존 정치인들의 정제된 모습에 익숙했던 대중에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나아가 정치 경력이 전무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례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첫 임기 당시 트럼프는 정책 전반에 걸쳐 사업가적 사고방식을 드러냈다. 우선 세금을 줄여 경제 성장을 촉진하려는 전형적인 기업가적 접근 방식을 취했다. 2017년 '감세 및 일자리 법안'을 통과시켜 개인 소득세와 법인세를 낮췄다. 또 정부 규제를 기업 성장의 장애물로 간주해 환경 보호 관련 규제를 일부 완화하고 은행과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줄였다. 외교 정책에서도 전통적인 외교관이 아닌 거래적 관점을 반영해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한국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 대표적인 예다.
이번 대선에서도 '쇼맨'이자 '사업가'로서의 면모는 승리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는 지난 7월 야외 유세 중 총에 맞아 오른쪽 귀에 피를 흘리면서도 지지자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고 "싸우자" 외쳤다. 타고난 쇼맨십을 발휘해 악재가 될 수 있던 사건을 호재로 만든 순간이었다. 집권 1기 당시 사업가다운 정책을 더욱 강화한 그의 공약은 이번 대선 승리의 결정적인 이유로 꼽힌다. 먹고 살기 힘들어진 유권자들이 성공한 사업가에게 다시 한번 나라를 맡긴 것이다.
1기 시절 트럼프는 역대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갤럽 조사에서 그의 4년 임기 평균 지지율은 41%로 1938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았다. 재임 이후 발표되는 미국 정치·역사학자들이 매긴 역대 대통령 순위에서도 꼴찌를 거의 독점해왔다. 하지만 대중의 생각은 달라졌고, 그는 전국 총투표에서도 절반을 넘기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벌써 트럼프 2기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쏟아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역사가 트럼프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주목된다.
이영민 기자 letsw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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