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보고 싶다, 단 한 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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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성 두러잉은 슈퍼마켓을 하는 부모님 집에 얹혀산다.
당황한 러잉은 집을 뛰쳐나가 남자친구와 절친을 호출한다.
상처받을 대로 받은 러잉에게 찾아온 진정한 반전의 기회는 다름 아닌 전단지다.
전문가들은 러잉의 사연을 들으려 하지 않고 꾸짖을 뿐이고 제작진은 자극적인 연출에만 관심이 쏠려 '악마의 편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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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충전소 ㅣ 넷플릭스 영화 ‘맵고 뜨겁게’
30대 여성 두러잉은 슈퍼마켓을 하는 부모님 집에 얹혀산다. 하루 일과는 소파에서 티브이를 보는 것, 그리고 고기 꼬치를 먹다 잠드는 것이다. 소파와 한 몸인 듯 사는 그는 가족들의 오랜 걱정거리다. 하루는 방송사 기자인 사촌이 불쑥 찾아와 카메라를 들이댄다. 무기력한 인간들에게 직장을 찾아주는 방송 프로그램에 그가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연자라서다. 당황한 러잉은 집을 뛰쳐나가 남자친구와 절친을 호출한다. 속상함을 토로하며 맥주를 마시는데, 덜컥 남자친구의 이별 통보가 날아든다. 절친과 바람이 났단다. 서러운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을 무시하는 동생은 아파트 명의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넷플릭스에 지난 7월 공개된 영화 ‘맵고 뜨겁게’는 자포자기의 상태에 놓인 러잉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러잉은 삶의 방향을 잃은 인간처럼 보인다. 그런 그에게도 변화는 찾아온다. 우연한 계기로 한 체육관의 복싱 코치를 만나면서다. 물론 러잉에게 ‘분홍빛 결말’이 갑자기 다가올 리 없다. 코치 역시 체육관에서 눈칫밥을 먹는 신세로 러잉을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유사 연애’ 감정을 이용한다. 이 와중에 기자인 사촌도 그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소비할 생각뿐이고 세상은 그를 교정해야 할 게으른 존재로 본다. 상처받을 대로 받은 러잉에게 찾아온 진정한 반전의 기회는 다름 아닌 전단지다. 정확히는 이렇게 묻는 전단지 속 문구다. “이겨본 적 있습니까? 단 한번이라도!”
자포자기의 늪에서 빠져나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곁에 무조건적인 지지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 강도 높은 운동을 해나간다. 포기하지 않고 축적된 날들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는 러잉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몸무게는 50㎏이나 줄었고 눈에 생기가 돈다. 과거의 그가 친구와 연인, 동생에게도 그저 맞춰주기만 했다면, 이제는 “기권해도 된다”는 코치에게 “그러지 말라”고 대꾸할 만큼 의사가 확실해졌다. 영화는 복수심이나 인생 역전의 꿈 같은 게 아닌 그저 ‘한번이라도 이겨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새 삶을 찾아가는 러잉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이기는 경험의 중요성을 말한다.
이 과정이 깊은 울림을 주는 데는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자링의 역할도 크다. 그는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한데, 영화를 준비하며 일부러 증량을 했고 러잉의 변화되는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실제로 50㎏의 몸무게를 감량했다고 한다.
영화는 이른바 ‘비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들도 풍자한다. 특히 그가 사촌의 요구대로 구직 방송에 출연하는 장면에서 이런 시선이 여실히 드러난다. 전문가들은 러잉의 사연을 들으려 하지 않고 꾸짖을 뿐이고 제작진은 자극적인 연출에만 관심이 쏠려 ‘악마의 편집’을 한다.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전시하고 대중들에게 비난의 창구를 만들어주는 모습은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여러 방송 프로그램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고된 훈련 끝에 복싱 대회에 출전한 러잉, 그는 그토록 원하던 승리를 맛봤을까? 어쩌면 복싱 대회에서의 1승은 그가 그동안 쌓아온 작은 승리들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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