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맛과 힘에 관한 풍자와 위로
드라마 ‘다리미 패밀리’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은 원인의 십중팔구는 돈이다. 돈 때문에 싸우고, 척지고, 불구대천지 원수가 된다. 심하면 살인까지 저지른다. 돈을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도 만연하다. 돈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라 그렇다. 물론 돈은 없는 거보다 있는 게 좋다. 이미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지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 문제일 뿐이다. 법의 맹점을 이용한 편법과 탈법으로 상속세를 탈루하는 일부 부유층의 행태가 그렇다. 부동산 개발 사기나 주가조작 등의 범죄로 막대한 수익을 올려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거나, 기소조차 되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돈이 만들어준 권력의 힘이거나, 권력으로 만든 돈의 맛이다.
돈이 행복의 척도인 세상에서 주말드라마 ‘다리미 패밀리’는 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태를 풍자한다. 좀도둑이 없는 동네, 청렴동에서 2대째 세탁소를 운영하는 가족들이 주인공이다. 결혼을 앞둔 장남의 신혼집 전세금과 퇴행성 희귀 망막 질환으로 실명 위기에 놓인 막내의 수술비 마련이 시급했던 세탁소의 가장이 100억원의 돈벼락을 맞으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다. 돈이 없어 불편한 가족과 돈을 잃어버려 불행한 가족의 사연을 유쾌하지만 씁쓸하게 풀어내면서 블랙코미디의 장점을 십분 살린다. 돈보다 중요한 가족의 본질을 역설하고, 인생의 참된 가치를 설파한다.
소동의 발단은 상속세 제척기간 15년을 넘기기 위해 비밀 금고에 숨겨두었던 100억원이 도난당하는 사건이다. 지승그룹 회장 부인 백지연(김혜은)은 남편과 아들에게조차 비밀로 감췄던 100억원을 도난당하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다. 돈의 출처를 밝히는 순간, 상속세와 가산세까지 더해 130억원을 토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2인조 도둑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훔친 돈으로 밀항할 계획을 세웠으나, 일이 틀어지면서 쫓기는 신세가 됐다. 100억원이 든 가방은 산속에 파묻혔다. 때마침 고사리를 캐러 산에 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던 세탁소집 노부부 이만득(박인환)과 안길례(김영옥)가 가방을 발견하고 손주들을 위해 빼돌리면서 소동이 본격화한다.
88살의 이만득과 90살의 안길례는 100억원의 행방을 좌지우지하면서 사건을 추동하는 존재감을 발휘한다. 연상연하 노부부의 전복적 관계로 웃음을 유발하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금을 빼돌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연민을 자아낸다. 절도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도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상관없지 않냐고 자문자답할 때는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살 만큼 살았다고 하지만, 여전히 곤궁한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소시민의 삶을 대변하는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사법시험 10수 끝에 세상을 떠난 남편 대신 시부모 공양을 하며 억척스럽게 3남매를 키운 고봉희(박지영)는 돈세탁을 주도한다. 장남의 결혼식 축의금으로 세탁하여 신혼집 전세금을 마련하고, 막내의 눈 수술비는 성공한 대학 동창에게 빌린 것처럼 꾸민다. 돈이 없어 불편하고 불행했던 생활이 끝나는가 싶었지만, 고봉희가 사용한 돈이 백지연에게 흘러가면서 꼬리가 잡힌다. 부잣집 비밀 금고에서 산속에 묻혀 있던 100억의 현금이 세탁소를 거쳐 다시 주인의 지갑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통해 돌고 도는 돈의 속성을 희화화하여 보여준다.
돈의 맛과 힘에 중독되었다면, 헤어나기 어렵다. 100억원을 유산으로 남긴 사채업자도 그랬다. 그는 사채업으로 성실하게 세금을 냈으니, 상속세 정도는 탈루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죽으면서까지 돈의 맛과 힘을 포기하지 못했다. 부의 대물림으로 만들어진 ‘그들만의 세상’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소시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돈은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끊이지 않는다. 행복의 필요조건인 돈이 불행의 씨앗으로 작동하는 꼴이다. 이처럼 돈은 인간을 만들기도 하고, 망가뜨리기도 한다.
드라마는 매회 마지막 장면에 송골매와 권진원의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들려준다. 돈의 자극적인 맛과 강력한 힘에 지친 소시민의 고단한 일상을 따뜻하게 감싼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그런대로 한세상 이러구러 살아가오”라며 위로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꿈으로 살지만, 오늘도 맘껏 행복했으면, 그랬으면 좋겠네”라고 응원한다. 노랫말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또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삶이 그렇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살다가도 아차 하며 돌부리에 걸려 자빠지는 순간 세상을 원망한다. 인지상정이다. 그래도 일부 사기꾼이나 협잡꾼을 제외한 다수의 사람은 남에게 해코지하지 않으면서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충남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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