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페널티’를 없애는 법[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이미지 기자 2024. 11. 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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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있는 직장 여성. 동아일보DB

최근 모 언론사 기자가 회사 측을 상대로 노동청에 진정을 냈다. 이 기자는 언론인 대상 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했다가 면접 과정에서 회사 임원으로부터 ‘육아휴직으로 인한 공백’이 길다는 지적을 받았고, 결국 최종적으로 휴직 공백 등을 이유로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소식을 들은 노동조합과 사내 구성원들은 ‘육아휴직자 차별’이라며 즉각 회사에 항의했다. 하지만 사측은 ‘차별은 아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엔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노동청까지 가게 된 것이다.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는 회사 측의 문제 발언이 명확했기 때문에 금방 해결이 되겠거니 했다. 누구도 아이 키우는 사람을 차별하는 게 ‘옳다’고 할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한 달여 지난한 싸움을 거쳐 결국 노동청 진정까지 가게 되는 걸 보면서 또 한 번 이런 문제의 해결이 어려움을 실감했다. 출산과 육아에 따른 고용상의 불이익, 일명 ‘육아 페널티(차일드 페널티)’는 우리 사회에 적잖이 만연해 있지만, 이처럼 그 해결이 쉽지 않다. 왜일까?

지난달 주형환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유혜미 대통령실 저출산대응 수석비서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5차 인구비상대책회의가 열린 모습. 동아일보DB

● “일 못해서 그런 거야” 증명 어려운 육아 페널티

첫째, 육아 페널티는 증명부터 어렵다. 사측이 ‘육아휴직’을 정확히 언급하며 차별의 티(!)를 내주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잘 없다.

두 번 육아휴직 한 회사원 A 씨(39)는 동료들보다 수년 늦은 승진에 대해 상사에게 문의했을 때 이런 답을 들었다. “고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한 마디로 동료들보다 일을 못 했기에 승진도 늦다는 이야기였다. 평소 느끼기에 남들보다 좋은 성과를 내왔던 그라 납득할 수 없었지만, 회사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소송을 걸지 않고선 증빙할 방법이 없었다. “내 탓이라고 딱 그래 버리니까 그때부터 말문이 턱 막히더라고요. 육아휴직 얘기를 했으면 어떻게든 들이받았을 텐데….” A 씨 말이다.

설사 차별을 당한 게 맞다고 해도 그게 A 씨의 육아휴직 탓인지, 성별 탓인지, 심지어는 성격이나 외모 탓인지도 알기 어렵다. 인사에는 정말이지 무수히 많은 요소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도 다양하다. ‘오래 쉰 탓인지 업무 성과가 좋지 않아서’ 또는 ‘너는 10년 일했고, 네 동기는 13년 일해서’ 승진을 못한 거라고 설명하면 대부분 대거리할 말이 없어진다. “네가 월등히 잘했다고 해 봐. 승진 못 했겠니? 휴직 탓하지 말고 그럴 시간에 좀 더 정진해.” 결국 이런 소리를 듣고 끝나기 십상이다.

수도권의 아침 최저기온이 10도를 기록하며 쌀쌀한 날씨를 보인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에 수크령이 피어있는 가운데 시민들이 움츠리며 이동하고 있다.

● 유자녀 vs 무자녀…서로 다른 입장

두 번째 이유는 좀 더 골치 아프다. 노노(勞勞) 간에도 입장 차가 있어 회사가 마냥 유자녀 직원을 두둔할 수 없다. 그러기엔 요즘 회사에 무자녀 직원도 많고 또 갈수록 늘고 있다. 이들은 업무만 두고 객관적으로 평가받길 바라는 게 사실이다. 내가 ‘쎄빠지게’ 일하는 동안 집에서 예쁜 아기를 키우다 돌아온 동료가 나와 같은 평가를 받는 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둔 B 씨(40)도 인사 담당 직원에게 육아휴직 기간 경력 인정 관련 문의를 했다가 “육아휴직자와 비육아휴직자를 동일한 잣대에서 평가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 “어쨌거나 (B 씨가) 쉰 건 맞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실제 요즘 무자녀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커지고 있다. 유자녀 동료들이 누릴 수 있는 복지혜택이 점차 늘어나면서다. 요새 기업 HR 담당자들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것 중 하나가 ‘왜 자녀 장학금은 있고 본인 장학금은 없느냐’ 같은 ‘유자녀 vs 무자녀’ 불만 충돌이다. 최근 육아휴직 급여와 기간이 늘고, 단축근로 범위가 확대되고, 각종 가족 지원도 커지면서 무자녀 직원들 가운데 이제는 되레 자신들이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졌다.

이런 가운데 육아 페널티를 해소하자며 육아휴직자의 경력 인정 같은 이야기를 해봐야 흔쾌히 수용될 리 없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안 그래도 혼자라 서러운데 (유자녀 동료들은) 휴직도 누려, 일찍 들어가, 지원금 받아, 그러면서 일도 나만큼 한 걸로 인정받겠다니 그건 도둑놈 심보 아니냐”고 반 농담, 반 진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동아일보DB

● 육아로 인한 불이익부터 명확히 해야

앞선 두 가지 이유는 육아 페널티가 더 이상 못된 업주나 상사, 동료들 같은 개인과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사람과 (인사)제도, 집단과 집단 간의 문제가 된 것이다. 과거 모성보호제도가 얼마 확산되지 않았을 때, 소수의 이용자와 소수의 억압자만 있었을 때는 각 개인에게 유자녀 직원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 정신 같은 것을 요구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두루뭉술하고 이상적인 말로 다수의 사람을 설득해서 육아 페널티를 없앨 순 없다. 제도를 정비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일단 차별은 없어야겠다. 누구든 업무능력과 무관하게,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처지로 인해 부당하게 차별받아선 안 된다. 그게 여성이든, 아빠든, 육아휴직자든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진 무엇이 육아휴직으로 인한 차별이고 어디까지가 공정한 차등인지 잣대가 모호했다. 사업장별로 상황도 천차만별이라 ‘2년까지 휴직은 동일평가, 2년 넘어가면 차등’ 이렇게 무 자르듯 하기도 어려웠다. 이러다 보니 근로감독하기도 쉽지 않았다. 부당해고, 육아휴직 미허용 같이 차별행위가 선명한 위반 행위와 달리 ‘부당 처우’는 적발해서 처벌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다.

정부가 꾸준한 사례 수집과 단속으로 전범을 만들어 가야 한다. 무엇이 불이익하고 부당 처우인지 좀 더 명확한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다. 지금보다 정확한 기준과 가이드라인이 생기면 근로자들도 보다 안심할 수 있고 기업도 불이익을 범하지 않도록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올 6월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 성남시 HD현대 아산홀에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화위원회 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육아가정뿐 아니라 모두가 누려야 할 워라밸

그럼 무자녀 직원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게 아니냐고 걱정할 수 있다. 육아휴직과 단축근로에 따른 인사상 불이익을 없앤다고 무자녀 직원이 피해를 입진 않는다. 둘은 제로섬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든 말든, 개인 사정이 있든 없든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 평가하는 건 ‘공정’한 게 아니라 그냥 ‘기계적 평등’일 뿐이다. 진짜 공정한 건 오히려 유자녀 직원들이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육아 페널티’를 없앤다고 유자녀 직원에게만 ‘육아 인센티브’를 주는 건 조심해야겠다. 그런 건 직원 간에 위화감을 부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자녀가 있든 없든 ‘워라밸’의 혜택을 누리게 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모두가 누릴 수 있다면 딱히 서로를 질시할 필요가 없다. 육아휴직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부모나 친척 돌봄으로 불가피하게 휴직하거나 일찍 퇴근해야 한다면, 피치 못할 개인 사정으로 휴가를 내야 한다면 쉬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육아휴직’을 ‘돌봄휴직’으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 미래엔 부모나 형제, 혼외반려자, 반려생물까지, 돌봐야 하는 대상이 확대될 수 있으니 말이다.

육아 페널티는 역설적으로 유자녀와 무자녀까지 아우르는 범복지 시스템이 꾸려져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먼 길이다. 하지만 차근차근 가보면 된다. 지금부터.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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