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적 신자유주의에 맞선 불복종 연대를 꿈꾸며
동아시아 민중의 인권과 존엄
한미일 기업들 동아시아로 쇄도
막대한 기업이익, 극심한 양극화
중국은 개혁개방 뒤 불평등 최고
생존·민주주의·평등 위한 저항을
2014년 봄 당시 삼성전자서비스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하청 수리기사들은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고자 투쟁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삼성은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노조를 탄압했는데, 협박이나 감시뿐만 아니라, 위장 폐업도 그 탄압의 일부였다. 탄압에 맞서 싸우던 노동자들은 공장 라인들이 대부분 베트남으로 철수했다는 점, 상당수 노동자들이 이미 일터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장 안에 노조가 없으니 사회적으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당시 삼성은 베트남 공장에 생산라인을 옮기고 있었다. 일본 전자기업들이 1985년 ‘플라자 합의’ 후 동남아시아와 중국에 투자를 늘리고 공장 이전을 확대했듯, 미국 제너럴모터스가 중국에 공장을 짓고 한국에선 대우자동차를 인수했듯, 미국 애플이 대만 기업 폭스콘에 아이맥과 아이폰의 조립을 전적으로 맡김으로써 대규모 위탁생산 체계를 구축했던 것과 맥락이 다르지 않다. 저렴한 노동력을 대규모로 동원해 더 많은 잉여가치를 얻기 위해서다. 참고로 중국 개혁개방이 결정된 1978년, 중국 임금 수준은 미국의 약 3%였다.
중국의 통치자들은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 사회를 경천동지할 수준으로 변화시켰다. 그 마중물은 화교자본을 비롯한 외국 자본의 투자, 자본가들이 보다 자유롭게 노동자들을 착취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노동권을 제거하고 경영자들에게 막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극단적 시장주의 노선의 폐해는 명확하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불평등 정도가 심한 나라가 됐다. 해외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 명품으로 치장한 소수의 중국인 부자들이지만, 그 이면에는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들의 고통이 있다.
‘경제개발 뒤 민주주의’ 신화의 파탄
한때 서구 이론가들은 경제적으로 발전하면 민주주의가 달성된다는 식의 근대화 이론을 주창했고, 발전주의 신화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동아시아의 현실을 보면, 이 믿음이 보기 좋게 깨졌다는 걸 알 수 있다. 2009년 금융위기와 2020~21년 팬데믹 이후 모두가 “신자유주의의 종말이 왔다”고 말했지만, 파국 이후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것은 권위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발전이 지배하는 재앙뿐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을 둘로 쪼개 ‘민주주의 대 공산주의’의 구도로 설명하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타이(태국)·대만 등 친미 노선 국가들을 ‘민주주의’로, 중국과 베트남 등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을 ‘공산주의’로 거칠게 가르는 언술이 그것이다. 하지만 전자에 속하는 나라들이 민주주의를 경험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현재 한국은 정치의 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고, 타이 정치는 습관적 쿠데타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은 그 누구보다 친자본 노선을 걷고 있다. 여기 어디에 민주주의 혹은 공산주의가 있는가? 동시대 동아시아는 권위주의와 불평등으로 통일되고 있을 뿐이다.
유튜브의 ‘국뽕’ 콘텐츠들은 삼성 자본이 국외에서 시장을 넓히면 마치 한국인 모두의 영예인 것처럼 자부심을 고취시키려 애쓴다. 정말 그런가? 이재용 부회장은 1997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고통받고 있을 즈음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에스디에스(SDS) 지분을 저가에 인수했고, 20년 뒤엔 159배의 수익을 올렸다. 2020년 한해 동안 이재용의 주식 재산은 2조원 넘게 증가했고, 2021년 4월 상속으로 8.9조원에서 15.6조원으로 한달 만에 7조원이 늘었다. 이에 반해 2000년 당시 141만원이었던 한국 중위소득자의 월 소득은 2010년 179만원, 2020년 250만원 정도로 오르는 데 그쳤다. 더 저렴한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공장을 옮기면 대주주와 극소수 임원들은 돈을 벌지만,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장시간 저임금 노동의 수렁에 빠진다.
무한경쟁과 자기계발, 자본에 대한 무제한적인 개방과 자유 등으로 점철된 신자유주의적인 교리가 우리 사회의 수다한 문제들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킨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퇴행을 거듭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퇴행은 불평등을 심화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노동권을 진작해야 국민 삶이 개선될 수 있다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공격하고, 이에 맞서 대안 사회를 이야기하는 사회운동에 총체적 공격을 가하고 있다.
식민지·전쟁·억압의 트라우마
지난 3년 반, 이 코너를 통해 동아시아 곳곳에서 거대 권력이나 자본에 맞서 생존과 민주주의, 평등을 위해 저항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외침을 소개했다. 한데 그때마다 거대 양당에 대한 호불호를 기준으로 뭉툭하게 구획을 나눠 애써 직시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중국 농민공들이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저항했던 것을 말하면 “한겨레가 웬일로 중국을 까?”라고 비난하고, 어딘가에서 자행되는 폭력이 초국적 자본의 이윤 놀음과 연결되어 있음을 이야기하면 “빨갱이냐”는 댓글을 여지없이 발견했다. 일부의 반응이지만, 전반적인 담론 양상은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20세기 동아시아는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통치를 경험했고, 끔찍한 전쟁과 반공주의적인 억압을 거치며 극심한 사회 분열을 겪었다. 동아시아에서 이는 1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사회적인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글로벌 신자유주의 체제가 낳은 불평등과 억압, 자연 파괴, 기후위기 등 동시대 모순들은 광범위한 불복종운동을 낳고 있지만, 이런 운동들은 국경과 민족, 성별을 경계로 단절되고 있다. 국적을 막론하고 모든 권력자들은 이 불복종들이 국경을 넘어 계급적으로 연결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권위주의적 국가권력도, 자본이 자유롭게 착취할 ‘자유’도 위협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치와 사회의 위기를 낳고, 각국의 군비 증강과 무기 개발 경쟁, 전쟁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이를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통해 제어하지 못하면, 중동과 같은 파멸적 상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20세기 동아시아는 식민주의의 최전선이었고, 오늘날에는 초국적 자본에 의한 착취와 권위주의 통치의 최전선이 됐다. 민주주의의 파괴와 불평등 심화에 맞선 불복종을 점화해 국적을 넘나드는 동맹으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귀 기울이고 연결하지 않는다면, 우발적으로 이어지는 이 불복종의 연쇄에 힘을 불어넣지 않는다면, 동아시아 민중은 ‘말’할 수 있는가?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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