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격수 3명이나 있는데…허경민 KT행 발단, 한화는 왜 50억 써서 심우준 영입했나
[OSEN=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FA 시장이 이틀 사이 3건의 이적이 발생했다. 연쇄 이동을 일으킨 한화 이글스의 내야수 심우준(29) 영입이 이번 FA 시장의 상징적 계약이 될 수 있다.
한화는 지난 8일 오전 투수 FA 최대어로 평가된 엄상백(28)을 4년 78억원(계약금 34억원, 연봉 총액 32억5000만원, 옵션 11억5000만원)에 영입했다. 대형 계약이지만 이날 오후에 KT가 두산의 16년 원클럽맨 내야수 허경민을 4년 40억원(계약금 16억원, 연봉 총액 18억원, 옵션 6억원)에 영입하면서 이슈가 이쪽으로 쏠렸다.
한화가 지난 7일 4년 최대 50억원(계약금 24억원, 연봉 총액 18억원, 옵션 총액 8억원)에 영입한 심우준이 허경민의 KT행 발단이 됐다. KT도 내부 FA 심우준을 잡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계약을 제안했지만 한화가 50억원 거액을 쓰며 1호 이적 계약을 이끌어냈다. 엄상백, 허경민의 이적이 발표된 뒤에도 심우준의 계약이 계속 화제가 되고 있다.
50억원이라는 금액 자체도 파격적이지만 한화가 심우준을 데려온 것을 의외로 보는 시선이 있다. 쓸 만한 유격수 자원이 3명이나 있기 때문에 중복 투자로 보일 수 있다. 하주석이 시즌 후 FA 권리를 신청하긴 했지만 B등급으로 이적이 쉽지 않은 상태에서 심우준이 왔다.
한화는 올해 하주석, 이도윤, 황영묵이 유격수 자리를 번갈아 맡았다. 이도윤이 112경기(89선발) 784이닝으로 가장 많이 뛰었고, 그 다음 황영묵(46경기 29선발 265이닝), 하주석(42경기 26선발 221⅔이닝) 순이었다.
하주석이 개막전 선발 유격수로 나섰지만 개막 11경기 만에 왼쪽 햄스트링 부상으로 두 달간 장기 이탈했다. 하주석이 빠진 자리에 신인 황영묵이 들어와 기회를 받았지만 6월부터 2루수로 출장 비중을 높였다. 그 이후 이도윤이 주전 유격수로 뛰었다. 부상에서 돌아온 하주석이 7월말부터 8월초까지 기회를 얻었지만 8월 중순부터 이도윤으로 고정돼 시즌을 마무리했다.
하주석은 부상 여파로 64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제한된 기회에서 타율 2할9푼2리(137타수 40안타) 1홈런 11타점 OPS .743으로 타격은 나쁘지 않았다. 황영묵은 123경기 풀타임을 뛰며 타율 3할1리(349타수 105안타) 3홈런 35타점 OPS .737로 빼어난 컨택 능력을 뽐냈다. 이도윤도 134경기 타율 2할7푼7리(336타수 93안타) 1홈런 46타점 OPS .665로 크게 빠지는 성적은 아니었다.
시즌 개막부터 끝까지 풀타임 고정은 없었지만 나름 돌려가며 쓸 수 있는 유격수 구성이었다. 그러나 내년에 성적을 내야 할 한화 입장에선 불안감을 안고 갈 순 없었다. 하주석은 부상 여파로 내구성이 약화됐고, 수비도 예전 같은 안정감이 아니다. 황영묵은 2루에서 더 좋은 움직임을 보였고, 이도윤도 확실한 주전으로 쓰기에는 조금 아쉬운 구석이 있었다.
어느 감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김경문 한화 감독은 유격수 수비를 매우 중시한다. 두산 사령탑 시절 주전 유격수 손시헌을 두고 15승 투수에 비교할 정도로 그 가치를 높게 본다. 김 감독은 NC로 팀을 옮겨서도 손시헌을 FA로 데려왔다. 그런 김 감독의 눈에 심우준이 들어왔다. 지난 여름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앞두고 한화는 심우준 영입을 시도했다. 트레이드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결국 FA로 심우준을 데려왔다. 시즌 후에도 보강 포인트로 유격수를 짚은 김 감독의 요청에 손혁 단장과 한화 구단 프런트에서 움직였다.
2015년 KT에서 1군 데뷔한 심우준은 9시즌 통산 1072경기 타율 2할5푼4리(2862타수 726안타) 31홈런 275타점 156도루 OPS .639를 기록했다. 타격이 뛰어나진 않지만 수비와 주루에 특화됐다. 운동 능력이 뛰어난 심우준은 강한 어깨와 빠른 발, 순발력을 갖춰 유격수로서 넓은 범위를 자랑한다. 한화는 올 시즌 인플레이 타구를 아웃 처리한 비율인 수비 효율(DER)이 10위(.649)로 최하위였는데 그만큼 수비 범위가 좁았다. 좌우를 폭넓게 커버하는 심우준의 가세로 류현진 같은 땅볼 유도가 많은 투수들이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2020년 도루왕(35개)에 오른 심우준은 주력도 좋다. 김경문 감독이 두산, NC 시절부터 추구한 스피드 야구에 딱 들어맞는 선수다. 내년부터 KBO리그도 피치 클락을 정식 도입할 예정이라 발 빠른 선수들이 도루하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올해 한화는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한 선수가 장진혁(14개) 단 1명밖에 없었다. 심우준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피치 클락 시대에 뒤처지는 느림보 팀이 될 수 있었다. 심우준도 “수비와 주루 덕분에 좋은 조건으로 팀에 오게 됐다고 생각한다. 내 강점을 살려 도루 20~30개는 무조건 할 생각이다”고 의지를 보였다.
여기에 심우준은 상무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7월부터 1군에서 뛴 올해를 제외하고 8시즌 평균 127경기를 출장할 만큼 내구성도 우수하다. 풀타임 주전이 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연평균 137경기를 소화할 만큼 튼튼했다. 커리어 내내 방망이가 약하긴 하지만 8억원의 옵션 대부분 타격 성적으로 넣어 안전 장치도 마련했다.
지난 6월 시즌 중 부임한 김경문 감독에겐 첫 FA 선물이 됐다. 한화 관계자는 “(김경문) 감독님이 심우준을 많이 원하셨다. 구단에서도 현장과 충분히 논의해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판단했다”며 “감독님이 발 빠른 선수를 워낙 좋아하신다. 감독님 야구에 맞춰드리는 것도 프런트가 해야 할 일이다”고 말했다. 심우준도 “김경문 감독님과 처음으로 함께 야구를 하게 됐다. 감독님을 뵙게 되면 어떤 방향으로 한화 야구가 가야 할지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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