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찐친’을 대신해, 모든 낯선 이들에게 감사!
타일러 J. 파월
생면부지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가족 소유 체험형 동물원 사육사
기린·곰·타조와 진정 행복했던 삶
사고사에 바치는 마지막 헌사
세상에는 낯선 사람이 많다. 우리는 낯선 사람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아는 사람보다는 낯선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낯선 사람이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교류가 필요하다. 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몇년을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낯선 사람은 낯선 사람이다. 어느 날 당신은 버스 카드를 가지고 나오지 않아 “어쩌지” 중얼거리는 그에게 말할 것이다. “지갑 안 갖고 나오셨나 봐요. 제가 내드릴게요.” 그 순간부터 그는 낯선 사람이 아니다. 아는 사람이다. 그렇게 아는 사람의 경계는 무너지고 확장된다. 물론 이건 다 케이(K)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내 판타지다. 요즘은 휴대폰으로도 지불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그래도 낯선 사람이 아는 사람이 되는 순간의 기쁨이라는 것이 있다. 요즘은 낯선 사람을 아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 많다. 지나치게 많다. 이를테면 인스타그램이 그렇다. 나는 인스타그램으로 현재 3655명을 팔로하고 있다. 다 아는 사람인가?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이 모르는 사람이다. 낯선 사람은 아니다. 나는 매일 그들이 올리는 사진과 글을 본다. 얼굴을 본다. 생각을 본다. 감정을 본다. 그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를 너무 잘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이 온다. 내가 팔로하는 나를 모르는 사람 중 하나는 입맛이 나와 비슷하다. “이 친구는 음식 취향이 이븐해서 나랑 식당에 함께 가면 정말 재미있겠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스물일곱살 훈남의 안타까운 부고
‘낯선 사람’이라는 제목이 붙은 칼럼의 마지막 회를 도대체 누구에게 바칠 것인가. 며칠 내내 이걸 고민했다. 몇년이나 연재한 칼럼이라 쓸 만한 사람도 몇 남지 않았다. 하루 종일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다가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부고가 떴다. 타일러 제이(J.) 파월. 1996년 9월14일에 태어나 2024년 5월4일에 죽다. 그걸 보는 순간 꺼이꺼이 울고 싶은 마음이 됐다. 아니다. 나는 이 남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저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하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이 양반이 고통 없이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했기를 빌었다. 너무 젊은 나이에 갔다. 부고는 다음과 같다.
“저는 케이틀린입니다. 타일러의 아내입니다. 오늘은 타일러가 5월4일에 세상을 떠난 지 6개월이 되는 날입니다. 4월19일 사고가 일어난 이후, 지금까지 이 사실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타일러를 사랑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립니다. 인스타그램에 있는 그의 영상을 보며 계속해서 그를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얼마나 멋진 사람이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타일러 역시 자신의 유산이 계속해서 사랑받는 것을 원할 겁니다. 이제 이 계정에는 무엇을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그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타일러 제이 파월은 죽었다. 올해 4월19일 사고를 당했다. 5월4일 죽었다.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매일매일 “기도하고 있다”는 댓글이 달렸다. 나는 댓글을 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생사는 지난 반년간 내가 가장 궁금해하던 것 중 하나였다. 나는 타일러를 모른다. 내가 아는 사실은 하나다. 그는 행복한 남자였다. 아니 그래서 타일러 제이 파월이라는 남자가 대체 누구냐고? 그는 자신의 가족이 소유한 동물원 ‘디어 트랙스 정크션 어드벤처 파크’ 직원이었다. 미국 미시간주에 있는 동물원에서 사육사로 일하는 남자였다. 보통의 동물원과 달리 방문객들이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체험형 동물원이었다. 동물원이라기보다는 체험형 동물농장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인스타 인기 폭발 ‘타조와 춤을’
내가 타일러 제이 파월을 알게 된 건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tyamonganimals) 덕분이다. 한국에 사는 내가 미시간주 체험형 동물원에 갈 수 있을 리는 없다. 파월은 거의 매일 동영상을 올렸다. 동물들을 관리하며 교류하는 영상이었다. 그가 가장 자주 영상을 올리는 주인공은 ‘푸’라는 곰과 ‘지미’라는 타조였다. 파월은 유머가 있는 남자였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방문하는 팔로어들에게 동물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동시에, 동물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즐거운 존재인지를 알리려 노력했다. 특히 그가 타조 지미와 함께 춤을 추는 영상은 꽤 인기가 있었다. 내가 이 남자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그 영상 덕분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도 모자를 쓴 웃기게 생긴 백인 남자가 트럼펫을 들고 타조와 춤을 추는 영상을 본 기억이 나는 분이 있을 것이다.
타일러 제이 파월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67만명을 넘어섰다. 유튜브도 잘됐다. 그는 2023년 4월16일에 유튜브로부터 실버 버튼을 받고 곰과 함께 기뻐하는 사진을 올렸다. 나는 파월의 친구도 아니었고 아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함께 기뻐했다. 순수한 기쁨이었다. 당연하다. 나는 이 남자처럼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 주변에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은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친구들이다. 우리의 세계는 협소하다. 평생 교류할 수 있는 동물은 개, 고양이를 중심으로 한 반려동물뿐이다. 혹은 당신 집 베란다에 둥지를 튼 비둘기, 운이 좋으면 황조롱이 정도일 것이다.
파월의 동물원은 어디까지나 체험 동물농장에 가까운 탓에 본격적인 야생동물은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호랑이나 재규어처럼 위험한 야생동물은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곰 ‘푸’와 타조 ‘지미’가 있었다. 낙타와 사슴과 기린도 있었다. 파월은 모든 동물의 보호자이자 친구였다. 그의 동물 동영상이 웃겼던 이유는 하나다. 그가 그 동물과 진심으로 깊은 교류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그를 사랑했다. 그는 동물들을 사랑했다. 나는 어느 순간 ‘다 때려치우고 이 남자처럼 살고 싶다’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더는 그럴 수가 없게 됐다.
낯선 사람들을 기억하기
스물일곱 타일러 제이 파월은 동물원에서 죽었다. 기린 사육장을 수리하기 위해 높은 사다리에 올라가 작업을 하던 중 떨어졌다. 하필 머리를 크게 다쳤다.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기린 중 한 마리가 원인”이라고 한다. 어쩌면 평소 잘 지내던 기린이 그날도 하필 파월과 놀자고 하던 중 사고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비극적인 일이다. 이로써 나는 한 명의 인스타그램 친구를 잃었다. 아니. 친구였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나를 몰랐다. 나도 그를 몰랐다. 그가 인스타그램에서 보여주는 모습만을 보고 그를 잘 안다고 말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동물만 사랑하고 인간은 혐오하는 비뚤어진 성정의 소유자였을 수도 있다. 만난 지 10분 만에 ‘나랑 친구가 되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 소셜미디어로 보이는 모습은 근사한데 막상 만나면 ‘이 사람과 귀가하는 방향은 제발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분에게도 분명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영원히 낯선 사람으로 남고 싶은 사람들 말이다.
그래도 나는 타일러 제이 파월에게 ‘낯선 사람’이라는 칼럼의 마지막을 바치고 싶다. 내가 지금까지 쓴 낯선 사람들 중 가장 낯선 사람이다. 그는 꽤 인기 있는 인스타그래머였지만 유명인은 아니었다. 부고 기사도 몇 없다. 한국어 부고 기사는 당연히 하나도 없다. 우리 대부분 역시 그런 사람이다. 낯선 사람이다. 우리가 죽어도 부고 기사는 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당신의 죽음에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장례가 끝나면 우리는 잊힐 것이다. 남는 건 몇몇 사람들의 기억뿐이다. 그들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겨우 ‘아는 사람’이 된다.
이제 타일러 제이 파월은 아는 사람이 됐다. 적어도 몇몇 독자들에게는 아는 사람이 됐다. 그의 동물원을 찾아갈 수는 없다. 대신 그의 인스타그램을 찾아갈 수는 있다. 이미 죽은 그는 영원히 웃으면서 타조 지미와 춤을 추고 있다. 나는 이 마지막 칼럼을 타일러 제이 파월과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그러니까 낯선 사람들을 위해 쓰고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아는 사람들이 아니다. 평생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존재도 알지 못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만의 춤을 추고 있는 낯선 사람들이 세계를 만든다. 모든 낯선 사람들에게 감사를 보낸다.
문화평론가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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