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한 소망과 해학…민화의 매력에 푹 빠졌네 [ESC]

한겨레 2024. 11. 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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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균의 목업일기 화판·액자 만들기
합판에 프레임 ‘네모반듯’ 각 중요
다양한 그림 즐겨보는 재미 쏠쏠
‘첫 감상’ 특권에 전시 기여 보람도
민화 작품의 액자를 제작하는 것은 그림을 가장 먼저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매출에 상당한 도움이 되지만 왠지 손과 마음이 선뜻 가지 않는 작업이 있다. 구조가 너무 복잡화거나 자재가 고가여서 시행착오가 우려되어서일 때도 있고, 요즘처럼 날씨가 좋아 아이들과 마냥 놀고 싶을 때도 그렇다. 철이 아직 덜 든 것 같다. 드물지만 발주자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흥이 안 난다. ‘핸드메이드 공방’에서 자주 접하는 가장 난감한 접근방식. “얼마예요? 싸게 해주세요.” 싸고 좋은 건 세상에 없다. 그런데 소규모 공방장이란 결국 마감의 질과 디테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기에 고민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반대로 큰돈이 되는 건 아니지만 기쁘게 작업하는 일도 있다. 공방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민화공방 ‘제주그림’에서 의뢰하는 화판과 액자 작업이 그런 경우다. 이 공방은 신규 매출이 간절하던 창업 초반에 자작합판으로 제작한 드로잉 테이블들을 주문해준 고마운 곳인데, 언젠가부터 그림을 위한 화판과 원목 액자 등도 꾸준히 의뢰하고 있다. 화판이요? 해본 적이 없는데요. 하지만 구조와 크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는 그냥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호랑이가 ‘학업 정진’ 독려하고

화판은 4㎜ 두께의 일반 합판에 소나무 판재로 프레임을 덧대 제작했다. 액자는 편백 원목으로 네 귀퉁이의 사각을 45도로 재단해 접합했다. 어쨌든 네모반듯한 ‘각’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간혹 자재를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공방에 쌓여있는 자재로 만들면 되기에 단가가 높지 않아도 빠듯한 공방살림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된다. 걸어서 30초 거리에 있어서 서로 피드백도 빠르고, 배송도 문제없다. ‘이웃 공방’의 작업에 힘이 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그림을 보고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민화공방 ‘제주그림’ 오은희(41) 대표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 민화의 매력”이라고 설명한다. 예로부터 전문적으로 그림을 수련한 장인이 아니어도 거리에서, 그리고 집에서 붓을 들고 슥슥 그려나갔던 게 민화라는 거다. 그림의 형태를 나타내는 ‘본’을 두고, 채색 위주로 하는 작업이어서 초심자도 접근하기 쉽고, 완성도 역시 기대할 수 있다.

이 민화공방에서 10월29일부터 11월17일까지 제주 서귀포 중앙도서관 전시장에서 민화를 주제로 한 ‘일상에 민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전문작가부터 취미로 그림을 즐기는 일반인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전시다. 참여한 작가만 36명이라고 한다. 이 행사에 전시된 그림들의 화판 작업을 했다. 일반에 공개되기 전, 액자 제작과정에서 가장 먼저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도 특권이라면 특권이다. 눈이 호강하는 미술 전시회에 직접 기여했다는 보람은 덤이다. 지난 주말에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전시장에서 그림들을 감상했다. “이 액자 보이니? 아빠가 만들었어.” “우와, 그림도 그렸어요?” “아니, 아빤 그림은 못 그린단다.”

부끄럽지만 미술은 잘 모른다. 민화? 더욱 생소한 장르다. 그런데 직접 제작해 납품한 화판에 곱게 내려앉은 민화를 다시 가져와 액자 작업을 하고 있노라면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탄을 하고 마는 것이다.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민화에는 고답적인 ‘수묵화의 형이상학’이 담지 못하는 해학과 정서가 녹아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주로 구복의 의미를 담은 그림들이 많았다. 어느 날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호랑이 한 마리가 복슬복슬한 꼬리로 책들과 연꽃, 음식을 품고 있는 그림이 들어왔다. 이름하여 ‘책거리도’다. 부정한 기운을 걷어내고 학업에 정진하라는 의미의 그림이란다. 용으로 다시 태어나기 직전 금빛잉어가 배 안쪽에 용의 비늘을 품고 몸을 뒤틀고 있는 ‘어변성룡도’ 역시 자식의 입신양명과 성공을 기원하는 부모의 마을을 담은 그림이라고 한다.

소박한 희망과 행복

제주 서귀포 중앙도서관 전시장에서 36명의 작가가 참여한 ‘일상에 민화’ 전시회가 열렸다. 행사를 주최한 ‘제주그림’ 오은희 대표가 두 점의 ‘책거리도’ 사이에서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어변성룡도는 ‘등용문’ 고사와 관련되어 있는 전통적인 그림인데, 옛 중국의 황하 상류에는 물살이 거세 물고기는 물론 배도 거슬러 올라가기 어려운 ‘용문’이라는 곳이 있었단다. 해마다 따뜻한 봄날이 되면 잉어떼가 이곳 용문에 몰려들었는데 그중 가장 용맹하고 튼튼한 한 마리만이 용문을 지나갈 수 있었고, 그렇게 용문을 거스르는 데 성공한 잉어는 용으로 변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등용문’이다. 물 위를 뛰어오르는 잉어 그림을 상서롭게 여겼던 옛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어변성룡도다.

이번 전시에 미인도와 화접도(나비와 꽃을 담은 민화의 한 종류)를 출품한 김미란(41)씨도 “뭔가 희망을 담은 그림이 민화라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라고 했다. 가족의 건강, 부부의 행복, 주변 사람들과 자신의 성공을 비는 그림들을 접하고 또 그리면서 ‘일상의 꿈’이 그리 먼 것만은 아니라는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민화를 접하고 배운 지 1년 반 만에 전시회에 내놓을 수준의 작품을 그려냈다는 자부심도 크다. 뭔가 거대한 ‘열정의 비용’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관심은 늘 있었지만 전에 그림을 그려본 경험이 없었다는 김씨는 일주일에 한번 공방에 나와 민화를 배웠고, 지금은 취미로 혼자 집에서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적인 민화 외에도 민화의 형식을 담은 재미있는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민화인데, 등장인물이 ‘레고 좀비’ 형상이라거나, 자신이 키우고 있는 반려견의 초상화를 그린 작가도 있었다. 목공을 업으로 하다 보니 이처럼 다른 장르의 예술 작품들을 접하고 그 안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즐거움과 조우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목수, 참 좋은 직업이다.

글·사진 송호균 나무공방 쉐돈 대표

한겨레 기자로 일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 2016년 온 가족이 제주도로 이주했다. 본업은 육아와 가사였는데, 취미로 시작한 목공에 빠져 서귀포에서 목공방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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