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만 숙였다’…어떤 사과[신문 1면 사진들]
※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11월 4일
미국 대선을 이틀 앞두고 쓸 1면 사진은 명확했습니다. 대선 앞둔 마지막 주말 유세에 나선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와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사진을 붙여서 쓰는 것이지요. 외신으로 들어온 두 후보의 유세사진에서 앵글과 표정과 동작을 봐가며 한 장씩 골라냅니다. 해리스의 사진을 내려받을 땐 트럼프 사진을, 트럼프 사진을 고를 땐 해리스의 맞춤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립니다. 일단 그림을 맞춰야 하지요. 비슷한 크기로 나란히 구성해야 해서 크로핑을 했을 때 붙이기 좋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배치했을 때 두 사람의 시선입니다. 시선은 안쪽으로 향해 서로 마주 볼 수 있도록 고릅니다. 동작도 중요합니다. 동작의 크기와 팔의 위치 등을 고려합니다. 잔뜩 골라낸 사진에서 짝을 찾지 못한 것들은 후보군에서 탈락합니다. 짝을 이뤄 남게 된 사진을 붙였습니다. 웃으며 손 흔드는 해리스와 자신감에 찬 손짓을 하는 트럼프 사진입니다. 두 장의 사진이지만 한 장처럼 어울린다고 판단했습니다.
■11월 5일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열린 2025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불참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본회의장에서 대통령의 시정연설 원고를 대신 읽었지요. 우원식 국회의장은 “대통령의 시정연설 거부는 국민에 대한 권리 침해”라고 비판했습니다. 민주당도 “대통령의 고집불통에 기가 막힐 뿐”이라며 성명을 냈고요.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 이유로 최소한의 예우가 없는 야당 의원들을 탓했습니다. 대통령이 불편한 자리에는 가지 않겠다는 뜻이지요.
한 총리가 대독한 연설에서 대통령은 예산안 처리에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22대 국회 개원식에도 불참했습니다.
■11월 6일
4년마다 15분 주목 받는 마을이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 투표와 개표를 가장 먼저 진행하는 뉴햄프셔주 딕스빌노치입니다. 유권자가 6명인 이 마을은 자정부터 투표를 진행합니다. 예전 광산이 있던 때 투표를 하고 이른 새벽 일터로 가던 전통 때문이랍니다. 가장 먼저 투·개표를 하는 상징성으로 선거 때마다 일종의 ‘풍향계’로 관심을 받는 마을입니다. 딕스빌노치에서는 투표에서 개표까지 15분쯤 걸립니다. 이날 해리스와 트럼프 개표 결과는 3 대 3 동률을 이뤘습니다. 미 대선의 ‘초박빙’ 판세를 보여주는 수치였지요. 이날 유권자보다 더 많은 취재진이 몰렸습니다.
미국과의 시차 때문에 1면 사진 결정이 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만, 이 매력적인 마을의 ‘자정 투표’ 전통 덕에 1면 사진을 잘 썼습니다.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가 귀환했습니다. 미 대선 투표 결과 공화당 후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선거 기간 내내 ‘초박빙’ 구도라 하여 긴 야근을 할 태세로 출근을 했습니다만, 트럼프가 선거인단을 빠르게 확보하면서 당선 가능성 높이더니, 투표 마감 2시간 30분 만에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1면 사진은 트럼프 사진 한 장으로 가는 걸로 정리가 됐습니다. 현지시간 6일 새벽 트럼프는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했습니다. 라이브 방송이 진행됐고 방금 봤던 TV 화면으로 지나간 장면이 얼마 지나지 않아 외신사진으로 속속 들어왔습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선거다보니 현장 외신기자들이 경쟁적인 속도전이 그려졌습니다. 사진에는 드러나지 않는 그들의 마감 스트레스를 이해할 것 같습니다. 거의 실시간으로 마감된 외신사진들을 훑으며 ‘당선’이라는 타이틀에 맞는 표정과 제스처의 사진을 골랐습니다. 그 시간 전 세계 매체의 사진 담당자들이 저와 같은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묘한 위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진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결국 이 한 장이었습니다.
해리스가 맥없이 패배한 것보다 트럼프라는 사람이 다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미국이란 나라가 참 희한하다 싶었습니다.
■11월 8일
의례적인 인사를 한 것이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발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으니 이는 사과인 것이지요.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시작하며 국민을 향해 사과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를 기자가 묻자 “어찌 됐든 사과드린다”라거나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라는 답을 했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은 등은 부인했고, 야당이 추진하는 김 여사 특검은 “정치 선동”이라 비판했지요.
이날 1면 사진은 대통령이 고개를 숙인 사진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과라는 의미를 담은 액션이었기 때문이지요. 텍스트 없이 사진만 본다면 이 사진은 어떻게 읽힐까요. 지지 여부에 따라 달리 읽힐 수도 있겠습니다만, 1면 편집자는 오독을 우려해서인지 위 사진 마이크 위 공간에 무릎을 치게하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고개만 숙였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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