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원하는 일자리 없으면 한국의 미래도 없다

한겨레 2024. 11. 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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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대학생들이 취업하고 싶은 기업을 설문조사해보면 중소기업은 16%에 불과하고 대기업 64%, 공공부문 44%다.

OECD는 2022년 '한국경제보고서'에서 "생산성이 낮은 중소기업에 대한 과도한 지원을 축소하고 규제 개선, 연구개발 지원을 통해 생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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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경제의 속살
취업준비 없이 쉬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청년들이 갈 만한 일자리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못하는 데 있다. 서울시 청년일자리센터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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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은 쉬고 엄마들이 일한다’. 고용 통계가 나올 때마다 보게 되는 기사 제목이다. 20대 청년은 집에서 게임이나 하며 놀고 있고, 60대 엄마가 ‘아들, 이 돈으로 점심이라도 챙겨 먹어. 일 갔다 올게’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요즘 애들은 곱게 자라서 의지가 없어’라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다.

한국 고용시장을 살펴보면 그런 분석이 틀린 것 같지도 않다. 실제로 청년 취업자는 감소하고 중장년 여성 취업자는 증가한다. 구직조차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뭔가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청년들의 의지 부족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한국 고용시장의 진짜 문제는 청년들이 취업하지 않는 게 아니라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는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데 있다.

한국 고용 상황은 좋은데…

우선 한국의 고용 상황을 살펴보자. 대부분의 사람은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한국의 고용 상황은 매우 좋다. 기획재정부는 2024년 9월 ‘고용률·경활률 역대 최고, 실업률 역대 최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전달인 8월 기준 15살 이상 고용률은 63.2%로 역대 최고 수준이고, 실업률은 1.9%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안 좋은 일자리만 늘어났겠지’ 하는 냉소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로 분류하는 상용직 비중도 56.6%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통계적으로 전체 고용시장에서 특별한 문제를 찾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정말 청년들은 놀고 엄마들이 일하는지 살펴보자. 2023년 1년 동안 늘어난 취업자 수는 32만7천 명이다. 60살 이상 취업자는 36만6천 명 증가했다. 전체 취업자보다 60살 이상 취업자 수가 더 많다. 60살 미만 취업자 수는 3만9천 명 감소했다.

성별로 분류해보면 전체 32만7천 명 중 여성 취업자가 30만4천 명이나 된다. 남성은 2만4천 명에 불과하다. 연령과 성별을 함께 반영해 비교해보면 60살 이상 여성 취업자는 20만4천 명 늘었고 39살 이하 남성 취업자는 8만1천 명 감소했다. 엄마 취업자는 늘어났고 청년 취업자가 줄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 자주 거론되는 통계로는 ‘쉬었음’이라는 통계가 있다. 고용률, 실업률은 ‘일할 생각이 있는 사람’(경제활동인구)을 기준으로 집계한다. 일할 생각이 있는데 취업을 못하면 실업률에 반영되지만, 일할 생각조차 없으면 취업을 못해도 실업률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를 ‘비경제활동인구’라고 한다.

비경제활동인구에는 육아, 가사, 재학, 연로 등의 이유로 일할 수 없는 사람이 포함된다. 그중에 ‘쉬었음’이라는 항목이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구직활동은 하지 않고, 말 그대로 ‘쉰 사람’이다. 2024년 8월 기준으로 ‘쉬었음’ 인구는 256만7천 명으로 전년 대비 10.6%나 급증했다. 이 가운데 청년층인 20~38살은 74만7천 명으로 10.5% 증가했다. 청년 고용 통계는 취업자 수가 감소하고, 취업하려는 의지조차 없는 사람도 늘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현실을 개별 청년의 의지 문제로만 보면 한숨에 그칠 뿐이다. 하지만 일자리 측면에서 보면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더 큰 문제를 볼 수 있다. 취업은 취업을 희망하는 노동 공급 측면에서 볼 수도 있고, 어떤 일자리가 얼마나 만들어지는지 노동 수요 측면에서 볼 수도 있다.

노동 수요 측면에서 보면 청년들이 취업을 못하는 이유는 청년들이 갈 만한 일자리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못하는 데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2023년 늘어난 전체 취업자 수는 32만7천 명이다. 산업별로 분류해보면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취업자가 14만3천 명으로 가장 많이 늘었다.

한국 전체에서 만들어진 일자리의 43%가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이다. 이 업종은 고령 여성이 많이 종사하기 때문에 사회복지서비스업 일자리가 증가하면 고령 여성 취업자 수가 증가한다. 반면,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지만 보건업 일자리가 늘면 2030 여성 취업자 수가 증가한다.

제조업과 건설업 경기가 좋으면 4050 남성 취업자 수가 증가하고 운수창고업 일자리가 늘면 2030 취업자 수가 증가한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배달 라이더가 어떤 연령의 어떤 성별의 사람인지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한 일자리 늘어야

어떤 일자리든 늘어나면 좋다. 더 많은 사람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돈이 잘 순환되면 전체 경제에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한다면 미래 성장 동력에 도움이 되는 산업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이 좋다. 노령 인구를 돌보는 업종에서 취업자 수가 증가하면 전체 취업자 수는 늘어난다. 고용률이 높아졌으니 우리 경제가 좋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청년들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 업종에서 취업자 수가 감소하는 것은 치명적이다.

청년들이 취업시장에 잘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는 다들 알고 있다. 지금 당장 소득을 위해 취업할 때와 미래를 생각하며 취업할 때의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취업이라는 게 임금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이지만, 미래를 생각하며 취업하려고 하면 선택의 폭이 매우 좁아진다.

한국에서는 어디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는지가 평생을 좌우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대기업 근로자 평균소득은 월 591만원으로 중소기업(286만원)의 2.1배다. 20대 청년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1.6배지만 40대는 2.2배, 50대 때는 2.4배로 확대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한국에서는 미래를 생각하며 취업하려면 선택의 폭이 매우 좁아진다. 서울 세종로사거리 출근길 시민들. 연합뉴스

실제 대학생들이 취업하고 싶은 기업을 설문조사해보면 중소기업은 16%에 불과하고 대기업 64%, 공공부문 44%다. 이런 통계를 다룬 한국경제연구원(KDI)의 보고서 제목은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이다. 대기업은 규제하고 중소기업은 지원하는 우리의 산업 정책은 청년들의 취업을 늘리는 방향에 역행한다.

청년들은 ‘스타트업’은 가고 싶어 하는데 ‘중소기업’은 안 가고 싶어 한다는 농담이 있다. 스타트업도 중소기업인데 청년들이 겉멋만 들었다는 비아냥 섞인 농담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기준은 미래 성장 가능성이다.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낮은 원가로 생존만 하는 곳을 ‘중소기업’으로, 미래를 위해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가는 기업을 ‘스타트업’으로 분류해보면 관점이 달라진다.

한국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많은 나라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예산은 2018년 8조9천억원에서 2022년 19조원으로 대폭 늘었다. 사실 중소기업 정책은 중소벤처기업부만 하는 것이 아니어서 정확한 중소기업 지원 예산의 규모는 파악하기 어렵다. 직접 지원뿐만 아니라 정부 보증을 통한 간접 금융지원 규모도 상당히 크다. 한국의 정부 보증 중소기업 대출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0.1%에 견줘 압도적으로 높다.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정책은 한국 사회에서 ‘절대선’으로 인식된다. 중소기업 정책은 산업 정책이지만 마치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는 복지 정책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기업 숫자도 전체 기업의 99%를 중소기업이 차지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유리하다. 하지만 중소기업 정책이 명확한 기준을 잡지 않으면 정부 지원으로 생존하는 좀비기업을 늘리고 혁신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한국 중소기업 정책의 현실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오히려 더 냉정한 평가를 하고 있다. OECD는 2022년 ‘한국경제보고서’에서 “생산성이 낮은 중소기업에 대한 과도한 지원을 축소하고 규제 개선, 연구개발 지원을 통해 생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미래를 위한 투자는 지원하되 생존만을 위한 지원은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OECD의 냉정한 평가

OECD의 2018년 ‘한국경제보고서’에도 같은 맥락의 언급이 있다. OECD는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대비 생산성이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낮은 30%대 수준이며 정부 보증 대출 수준이 OECD 회원국 중 2위임에도 글로벌 혁신 네트워크와 연계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또 “이미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거의 1천 건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중소기업 지원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것인지, 연명을 위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래 성장 가능성이 낮은,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일자리 유지를 위해 천문학적인 자원이 투여되고 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후진국에서, 아버지는 개발도상국에서, 아들은 선진국에서 태어난 나라가 한국이다. 지금까지는 전세계가 주목하는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그 성공 공식이 앞으로 한국 경제의 방향을 조명해주지는 않는다. 고용률이 높으면 현재의 한국 경제를 운영할 수는 있지만 청년들이 일하고 싶은 일자리가 없으면 미래가 없다. 힘들고 어렵고 임금이 적은 일자리를 청년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혀를 차며 한탄할 일이 아니다.

권순우 삼프로TV 취재팀장 soon@3pro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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