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크고 작은 마감의 연속…아름다운 끝맺음이 중요

한겨레 2024. 11. 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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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조민진의 꿈꾸기 좋은 날
좋은 마무리를 위하여
살면서 중요한 건 ‘일’과 ‘사람관계’
진심 어린 이야기는 마음속 지나가
‘메멘토 모리’ 삶의 겸손 되새기며
매 순간 ‘완성하는 마음’으로 살길
‘대사들’(1533년), 한스 홀바인. 부와 권력, 지식과 교양을 두루 갖춘 인물들과 함께 바닥에 왜곡된 해골 형상이 있다. 항상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를 암시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민진입니다. 11월이 되니 올해도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24년’이라고 생각하니 달콤 씁쓸한 생의 한 조각을 또 먹어버린 듯 새삼 아쉬워집니다. 한 해를 보낼 즈음엔 그해 가장 뜻깊은 일들을 꼽아보곤 하는데요, 아무래도 올해는 한겨레 토요판에 ‘조민진의 꿈꾸기 좋은 날’을 연재한 일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합니다. 지난 1월부터 이달까지 모두 11차례에 걸쳐 독자님들께 편지를 띄우는 마음으로 정성껏 썼거든요. 때때로 따스한 화답에 기쁨도 컸습니다. 어느새 마지막 글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삶은 역시 크고 작은 마감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습니다. 지난주엔 최근 두달간 강사로서 진행했던 에세이 쓰기 수업을 종강했습니다. 수강생들이 과제로 제출한 글들을 꼼꼼히 읽고 피드백 하는 역할에 빠져 있다 보면 수업을 모두 끝낼 때쯤엔 그들의 사사로운 이야기가 한가득 마음에 남습니다. 그래선지 만남이 짧아도 여운이 깁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통과해갑니다. 진심 어린 이야기는 마음속을 지나가지요. 지금껏 제 마음에 온기를 채워준 많은 이야기와 인연을 떠올리며 마지막 주제를 고심해봤습니다. ‘좋은 마무리를 위한 자세’가 어떨까 하는데, 괜찮겠지요?

마지막 순간의 좋고 나쁨이 결정적

살면서 마무리가 중요한 두가지 화두가 있다면 ‘일’과 ‘인간관계’가 아닐까 합니다. 모두 시작과 끝이 있지요. 다만 제 경우에 둘에 대한 접근법이 약간 다르긴 합니다. 전자에 대해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열정을 쏟는 의지를 부리는 데 비해, 상대적으로 후자에 대해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그 시작과 끝을 맡기려 합니다. 일을 성취하는 문제라면 힘껏 욕심을 부려보지만, 관계의 문제라면 이른바 ‘시절 인연’이 있음을 믿는 편이랄까요? 물론 일이든 인간관계든 모두 때가 있고 정성이 필요하긴 마찬가집니다만, 굳이 따지자면 일 자체에 견주어 사람을 대하는 일은 혼자 일방적으로 힘을 쏟는 게 능사만은 아니란 걸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도, 인연도 무엇보다 끝이 좋기를 바랍니다. ‘종점 원칙’ 때문이지요. 마지막 순간의 좋고 나쁨에 따라서 그것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게 되는 경향 말입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이 쓴 ‘생각에 관한 생각’에 나오는 사례를 보면요, 예를 들어 ‘60년 동안 아주 행복한 삶’과 ‘60년 동안 아주 행복한 삶+추가 5년 동안 약간 행복한 삶’ 가운데 사람들은 전자를 더 행복한 인생으로 평가한다고 합니다. 설령 5년을 덜 살더라도 ‘약간 행복한 끝’보다 ‘아주 행복한 끝’이 훨씬 낫다고 느낀다는 거지요. 셰익스피어 희극 제목처럼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게 맞나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일과 인연의 끝에서 도움 되는 자세를 딱 하나씩만 꼽겠습니다. 맡은 일에는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요, 그 누구라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기본적 예의를 지키는 겁니다. 책임감은 유능한 사람의 필요 조건이고, 넓은 시야와 매너는 원만한 사람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유능한 사람은 일을 잘 마무리하고, 원만한 사람은 인연을 좋게 끝맺지요.

일과 관계의 문제를 떠나서도 인간은 끝을 의식합니다. 필연적으로 결말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요. 바로 우리가 필멸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삶에서 가장 큰 마감은 ‘죽음’인 셈입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지요? 라틴어로 ‘당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에 나가 승리를 거두고 개선 행진을 하는 장군의 주변에 노예들을 두고 이 말을 외치게 했다고 합니다. ‘오늘 승리한 당신 또한 언젠가는 죽게 된다, 그러니 겸손하라’는 취지였지요. 같은 맥락에서 16~17세기 유럽에서는 ‘바니타스’(Vanitas) 회화가 유행했습니다. 바니타스는 ‘허영’, ‘공허’를 의미하는 라틴어인데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과 같은 도상을 담은 그림을 보며 생의 덧없음을 상기했던 겁니다. 만연한 전염병과 오랜 전쟁으로 불안감이 높았던 시기에 사람들이 자신을 다스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생의 유한함에서 얻는 활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삶의 유한함을 떠올리면 헛된 욕심과 작은 일에 연연하는 마음을 컨트롤하기가 한층 쉬워집니다. 좋은 죽음을 바라게 되고, 그에 앞서 좋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기지요. 좋은 삶을 살려면 매사 좋게 마무리하는 습관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결국 ‘메멘토 모리’가 좋은 결말을 이끄는 거지요. 인간의 모든 서사는 죽음에서 비롯되고,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소중해집니다. 고대 로마 황금기의 황제였고 이성을 중시한 스토아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인생의 짧음과, 네 앞과 네 뒤의 무한한 시간과, 모든 물질의 취약함을 생각하라.” 생명이 깃든 만물은 이 세상에 아주 잠깐 머물다 갈 뿐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시야를 광대하게 밝혀줍니다.

글쓰기 수업을 할 때면 저는 무엇보다 “완성하자”고 독려합니다. “문학이란 능력껏 잘 쓰고 시작한 것을 끝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헤밍웨이의 말이 정말 그럴듯하다고 여기거든요. 쓰는 일을 그저 담담하게 대하는 자세도 멋지지만, 시작했으나 끝내지 못하면 작품이 빛을 볼 수 없다는 절박함도 묻어나는 말이라 더욱 공감하게 됩니다. 헤밍웨이도 애면글면 수없이 마감했겠지요. 수십, 수백번을 고쳐 썼듯이 항상 좋은 마무리를 갈망했을 겁니다. 글을 완성하듯 매 순간을 완성하는 마음으로 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기에 완벽할 순 없어도 완성할 수는 있으니까요.

다만 사는 동안 그렇게 완성을 거듭해도 ‘인생은 미완성’입니다. 노래 가사처럼 “쓰다가 마는 편지”고 “그리다 마는 그림”이지요. 언젠가 죽는다는 걸 알지만 언제 죽을지는 모르는 탓입니다. 마지막 마감 시간을 모르니 때맞춰 성취욕을 부릴 수 없는 까닭이겠지요. 살아가면서 죽어간다는 게 생의 아이러니지만 그 유한함 덕분에 생기와 활력을 얻게 됩니다. 한번뿐인 삶이니까 좋은 꿈을 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여러분, 저는 또 다음을 기약할게요. 멋진 삶을 사시길요!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작가

신문·방송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작가나 강사로 불립니다. 꿈꾸며 노력하는 여러분께 말과 글로 힘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아, 유튜브(‘조민진의 웨이투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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