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3종 ‘찍먹’만 하진 않겠다…아이언맨 코스 향하여 [ESC]
지난달 ‘기말고사’ 3시간5분 기록
30만원 웨트슈트 구입, 휠 ‘업글’도
“‘철인’ 호칭, 아이언맨 코스 완주 때”
지난달 27일 경남 통영에서 열린 ‘2024 통영 월드트라이애슬론 컵’ 대회는 내게 기말고사와도 같았다. 시즌 막바지에 열리는 대회인 데다 지난해 9월 처음으로 참가한 대회와 같은 올림픽 코스(수영 1.5㎞, 사이클 40㎞, 달리기 10㎞)여서 지난 한 해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들여다보기 제격이었다. 첫 대회 이후 나는 올해 6월 경남 고성에서 열린 ‘2024 아이언맨 70.3 고성’ 대회와 8월 경기 여주에서 열린 ‘제8회 경기도지사배 전국 철인3종 그레이트맨 하프 대회’ 등 두 차례 하프 코스(수영 1.9㎞, 자전거 90.1㎞, 달리기 21.1㎞) 대회에 참가했다.(여주 대회는 수영 경기 중 인명사고가 발생해 중도 취소됐다.)
이젠 올림픽 코스쯤은 가볍게 완주
통영 대회를 두 달가량 앞두고 스포츠팀에서 젠더팀으로 갑작스레 인사 이동을 했다. 생활 패턴이 크게 달라졌다. 이전 팀에선 정해진 경기 시간에 맞춰 근무 일정이나 출퇴근 시간 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 훈련 일정을 짜기가 비교적 수월했다면, 새 팀에선 언제 어떤 일이 불쑥 터질지 몰라 일정을 종잡기 어려웠다. 예정에 없던 야근을 하고 나면 다음 날 새벽 훈련 대신 모자란 잠을 택하게 됐다. 덕분에 운동량이 줄어 체중이 2㎏ 불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세 종목 가운데 그나마 가장 자신 있는 수영에 투자하던 시간을 줄이고, 부족했던 달리기 마일리지를 늘리기로 했다. 수영과 달리 정해진 수업 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부담이 없으니, 늦게 퇴근한 날에도 꾸역꾸역 운동화를 갈아신고 동네 뒷산을 달렸다. 주말에는 늦잠 대신 네오 트라이애슬론 팀 훈련에 가급적 참석해 평일에 모자란 운동량을 채웠다.
기말고사 목표는 ‘서브3’(세시간 이내 완주)였다. 수영과 달리기를 각각 30분, 1시간 안에 완주하고 두 차례 바꿈터에서 각각 2분가량을 소요한다고 가정하면, 사이클을 1시간25분 안에 타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하지만 통영 대회는 사이클 코스에 ‘낙타 등’ 같은 언덕이 반복되기로 유명해 자신이 없었다. 지난겨울 반짝 하고 만 평롤러 훈련을 대회 3주 전에야 다시 시작하는 등 ‘벼락치기’를 했다.
결과는? 3시간5분49초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그렇다고 받아 든 성적표가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1년 전 3시간13분2초에서 무려 7분이나 줄여냈다. 30∼34살 여성 참가자 11명 중 6위이던 연령대 순위는 12명 중 7위로 비슷했다.
종목별로는 수영이 34분32초에서 31분33초로 2분59초 줄었지만, 목표한 30분은 약간 넘겼다. 훈련량이 가장 적었던 사이클은 35㎞ 1시간20분59초(평균 시속 약 27㎞)에서 38㎞ 1시간33분41초(평균 시속 약 25㎞)로 평균 시속이 오히려 2㎞가량 처졌다. 언덕이 많은 코스인 걸 감안해도 아쉬운 기록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크게 만족스러운 점이 있었다. 직전 대회까지만 해도 핸들바에서 손을 놓는 게 두려워 사이클 경기 중 물을 마시거나 파워젤을 꺼내 먹지 못해 목마름과 배고픔에 시달렸는데, 이번에는 한 손을 놓고 제때 보급을 하는 데 성공했다. 여름내 집중한 달리기는 1시간10분25초에서 54분38초로 15분47초나 단축했다.
무엇보다 기쁜 건 이전과 달리 마지막 달리기 경기를 치르는 내내 몸 곳곳에 통증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근전환 훈련 덕분인지 달리는 발걸음이 전에 없이 가뿐했다. 대회가 다 끝나고 몸이 으스러지는 듯한 근육통도 없었다. 지난 1년의 훈련으로 올림픽 코스쯤은 가볍게 해낼 수 있는 몸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아 뿌듯했다.
사실 첫 대회에 나설 때만 해도 이 운동에 이렇게 깊이 빠져들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수영할 때 입는 웨트슈트 구입조차 망설였다. 단돈 3만원에 웨트슈트를 대여해 주는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했다. 10만원이 훌쩍 넘는 대회 참가비에, 경기장을 오가는 교통비와 숙박비까지. 경기 한 번 나가려면 드는 돈이 적지 않은데, 앞으로 얼마나 더 출전할지 모를 대회를 위해 50만원이 넘는 웨트슈트를 사기엔 부담스러웠다.
‘진짜 철인’ 되기 위한 도전 계속
사회초년생이던 7년 전 장만한 입문용 로드 사이클로 ‘뽕’을 뽑아야겠다는 생각도 컸다. 하지만 훈련을 계속할수록 기변(기기 변경) 유혹이 찾아왔다. 첫 대회 후기를 담은 기사에 “휠(바퀴)만 하이림(바퀴의 가장자리인 림의 높이가 50㎜ 이상으로 높은 바퀴. 로우림에 비해 바람의 저항을 덜 받는다)으로 바꿔도 사이클 시간이 훨씬 단축될 것”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동호회에서 만난 선배들도 알루미늄 재질 로우림 휠을 카본 재질 하이림 휠로 바꾸면 평균 시속이 2∼3㎞는 빨라질 거라고 했다. 모두 애써 못 본 척, 못 들은 척했다.
꼬박 1년이 지난 지금, 집 다용도실과 차량 트렁크는 작년 이맘때는 갖고 있지 않던 장비들로 가득 찼다. ‘관리만 잘하면 평생 쓴다’는 말에 썩 괜찮은 웨트슈트를 이월상품 할인가인 30만원에 장만했고, 가성비 좋다는 중국 브랜드 제품을 추천받아 휠 업그레이드에도 100만원 상당을 투자했다.(정작 중요한 건 ‘엔진’, 그러니까 몸뚱아리이긴하다.) 1천만원이 넘는 자전거를 타는 다른 철인들이 보기엔 귀여운 수준일지 몰라도, 내 소득 수준에 비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기변은 지금 타는 자전거로 연령대 입상을 세 차례 이상 하거든 그때 가서 고민해 보기로 했다.)
장비 투자는 철인3종을 ‘찍먹’만 하고 끝내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지금껏 대회에 출전한 횟수를 다 꼽아도 다섯 번이 채 안 되지만, 지난 1년간 키워 온 트라이애슬릿(철인3종 선수)이라는 ‘부캐’는 생활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마시던 술을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줄였다. 그러자 체지방률이 20%대에서 10%대로 떨어졌다. 숨어있던 11자 복근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러나 맥주 몇 번 마시면 금세 사라진다.) 20대 초반부터 달고 살던 불면증이 사라졌고, 침실 조명조차 끄지 못한 채 곯아떨어지는 날도 부지기수다.
두번째로 참가한 대회이자 첫 하프 코스 대회였던 고성 대회를 마치고 네오 팀의 한 선배가 말했다. “엄연히 ‘철인’이라는 호칭은 아이언맨 코스(수영 3.8㎞, 자전거 180㎞, 달리기 42.195㎞)를 완주해야 비로소 주어진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열심히 준비해서 아이언맨 코스까지 완주해 당당히 철인 호칭을 답시다!” 연재는 여기서 마치지만, ‘진짜 철인’이 되기 위한 도전은 계속해 볼 작정이다. 지금까지 들인 돈이 아까워서라도!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한겨레신문 젠더팀 기자. 일하지 않는 시간엔 요가와 달리기, 수영, 사이클, 케틀벨 등 각종 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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