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kg 현금 뭉치가 집에서 나왔다…서민들 저축 허공으로 날려버린 이 사건 [신짜오 베트남]

홍장원 기자(noenemy99@mk.co.kr) 2024. 11. 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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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엉미란(가운데)이 재판을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신짜오 베트남 - 315] 한 개인이 한 나라 GDP의 3%에 달하는 돈을 횡령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베트남에서 벌어졌습니다. 베트남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범죄로 손꼽히는 사건의 주범은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이제는 자비로운 판결을 내려달라며 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사건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 사건의 주인공은 부동산 재벌 쯔엉미란(Truong My Lan)입니다. 그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부동산 기업 ‘반틴팟 홀딩스(Van Thinh Phat Holdings)’의 회장이었습니다. 베트남 경제와 금융계를 뒤흔든 거대한 사기극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11년 동안 사이공 상업은행(SCB)을 개인 저금통처럼 활용하여 허위 대출로 약 304조 동(약 17조 원)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 4월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는 베트남 GDP의 약 3%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수많은 베트남 국민의 저축은 그의 횡령과 함께 허공으로 사라졌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수십 명의 대리인 명의로 SCB의 대규모 지분을 확보해 법적 지분 제한 규정을 회피했습니다. 사실상 은행을 지배했던 그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허위 대출을 신청하여 막대한 은행 자금을 빼돌렸습니다. SCB에서 그녀가 빼돌린 자금은 은행 전체 대출의 93%에 이를 정도입니다. 108조 베트남 동(약 6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자금을 현금으로 인출해 자신의 지하실에 보관했습니다. 이 현금의 무게는 2t에 달해 베트남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는 범죄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중앙은행인 베트남 국가 은행(SBV)의 감독 책임자들에게 약 520만 달러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녀는 SCB에서 불법으로 조달한 자금을 통해 자신이 소유한 여러 호텔과 레스토랑 등의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습니다.

이번 재판은 베트남 법정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사건으로 분류됩니다. 재판에는 2700명의 증인이 소환되고, 104개의 증거 상자가 제출되었으며, 관련 피고인은 무려 85명에 달했습니다.

피고 중 쯔엉미란을 포함한 4명은 종신형 혹은 사형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피고인들은 징역 3~20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쯔엉미란의 남편과 조카도 각각 징역 9년과 17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사형 선고 이후 벌어진 별도 재판에서 쯔엉미란은 공범들과 함께 불법 채권 발행으로 약 30조 동(약 1조 6000억 원)의 금액을 투자자 3만 5800명에게 판매한 혐의 등이 추가로 인정돼 종신형을 추가로 선고받았습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금융 범죄를 넘어, 베트남 사회와 공산당의 권력 구조, 그리고 금융계의 고질적인 부패 문제를 폭로하며 대중의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베트남 정부가 대규모 경제 범죄를 엄중히 다루며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입니다. 평소 내부적으로 사건을 처리하고 언론에 세부 사항을 공개하지 않던 베트남 공산당은 이번만큼은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공개했습니다.

쯔엉미란 회장의 범행은 베트남 금융 시스템과 권력 구조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는 데 역할을 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금융 및 법률 체계의 개혁 요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경제 성장은 오랫동안 부패한 관행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왔습니다.

일부 전문가는 10년 넘게 범행이 발각되지 않은 이유는 쯔엉 미란이 베트남 정치인으로부터 보호를 받았기 때문으로 추측합니다. 이미 쯔엉 미란이 은행을 사금고처럼 이용하는 것은 베트남 권력층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었을 거란 얘기입니다. 다만 여기서 정치 자금이 나오고 이를 기반으로 뇌물이 돌았기 때문에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지켜만 봤다는 것입니다.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이번 사건이 터진 이유를 베트남 권력 다툼에서 찾는 견해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베트남에서는 부패 척결이란 명목으로 최고위 공직자 여럿이 날아갔습니다. 나라를 이끄는 권력 서열 2인자가 한 번에 날아갔습니다. 그 2인자를 대신해 자리에 오른 새로운 2인자도 물러났습니다. 새로 권력 서열 1위에 오른 사람은 부패 척결을 주도한 공안 출신 인사입니다. 쯔엉미란 스캔들과 베트남 권력 이동이 전혀 무관한 스토리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여하튼 베트남은 쯔엉 미란 스캔들을 터뜨린 이상, 이를 계기로 나라 전체를 통째로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새롭게 옷을 갈아입은 베트남의 시스템이 어떻게 바뀔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한편 쯔엉미란은 자신에게 내려진 사형과 종신형이 과도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규정을 잘 몰라서 벌어진 일이지 횡령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그를 보호하던 세력은 이미 권력을 잃은 지 오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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