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에 졸이거나 기름에 굽거나…‘하늘이 내린’ 식재료 [ESC]

한겨레 2024. 11. 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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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신애의 이달의 식재료 천마
제철 ‘가을 천마’ 기억력 개선 도움
고구마·생강 모양…맛은 감자 비슷
전북 무주군 안성면 일대에서 천마를 수확하는 모습. 연합뉴스

때때로 ‘하늘이 내린 음식’이란 말을 한다. 음식이 맛도 있는데 효능까지 확실한 경우다. 이럴 때 꼭 등장하는 것이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효능. 그리고 “~카더라”는 식의 구전되는 이야기로, 누구누구는 이렇게 효과 봤다더라 하면서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 이렇게 어떤 식재료는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효능이나 기록에 등장하는 어떤 환상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천마 다.

천마는 마(麻 )가 아니다! 하늘에서 내린 ‘마비를 풀어주는 식물’이란 뜻의 이름 천마. 왠지 우리에게 친밀한 마와 비슷한 식물일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난초과 식물이다. 자연적으로 자생하던 천마는 봄·가을 심마니들의 쏠쏠한 부수입이 되었을 정도로 비싸고 귀한 약재였다. 지금은 전북 무주, 진안 일대에서 재배에 성공해 일정량을 생산하고 있다. 그 중 가을 천마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전 가장 크기가 크고 튼튼한 상태로 거둬들일 수 있는 최상급의 식재료다.

여름에 아스파라거스 비슷하게 생긴 꽃대가 올라오는 것 말고는 계속 땅 속에 산다. 햇빛이 필요 없으며, 버섯처럼 균으로 자라는 특이한 작물이다. 중풍같이 마비가 온 증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 말고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기억력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원료로 인정받아 식재료라기보다 약재로 더 많이 인식되기도 한다.

처음 천마를 본 건 가공된 가루 형태였는데, 뇌건강에 좋다고 해 먹어본 게 전부였다. 요구르트에 타먹었는데, 어떤 맛이 있다기보단 그저 고운 가루 느낌이었다. 요즘은 천마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효능에 대한 소문이 퍼진 탓인지 원물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생긴 건 기다란 고구마와 생강을 합체해 놓은 것처럼 보이고 맛은 감자같다. 특이한 향이 있는데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서양의 블루치즈와 비교해야 할까? 아무튼 이 향 때문에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리스토란테 에오’의 어윤권 쉐프는 천마를 삶아낸 후 진액을 뽑아 에스푸마(거품) 형태로 요리해 손님상에 낸다. 진진의 왕육성 쉐프는 새우와 섞어 튀기는 멘보샤 메뉴를 만들었는데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업계의 오랜 장인들에게는 천마 요리가 간단할 수 있으나 일반인이 집에서 요리할 땐 전혀 그렇지 않다. 천마는 냉장고에 보관해도 3주를 못 간다. 실온에선 일주일 안에 상해버린다. 그래서 삶거나 찐 다음 진공팩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꺼내서 요리하는 방법이 가장 제격이다.

특유의 천마향은 쉽게 익숙해지기 어려운데, 효능을 생각하면 견뎌야 할 것 같다. 간장과 함께 졸이거나 기름과 함께 구우면 향이 많이 날아가니 이 방법을 추천한다. 실제로 무주에선 갈비나 불고기, 삼겹살 등 고기 요리에 천마를 곁들여 구워 먹는다. 천마는 수확 후 신선한 상태에서는 향이 따로 없다가 시일이 지나면서 계속 냄새가 생긴다. 때문에 무주 현지에서 제철에 먹는 천마는 가을 보약이 따로 없다. 토종닭 백숙에 천마를 곁들여 끓이니 살짝 쓴맛이 나는 게 오히려 수삼이나 황기보다 자연스럽다. 껍질째 먹는 천마의 식감은 감자같이 쫀득하고 단맛도 배어난다.

개인적으로 천마를 맛있게 먹는 최고의 방법은 갈비찜인 것 같다. 간장과 설탕, 청주를 넣고 천마를 함께 푹 쪄서 만들면 고기맛을 느끼하지 않고 상쾌하게 향상시켜 준다. 부드럽게 잘 쪄진 고기를 살짝 뜯어 간장 양념이 잘 밴 천마를 같이 씹으면 식감의 균형도 좋다.

식재료에 약용 성분을 언급하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모든 식재료는 나름의 효능이 다 있고, 반대로 뭐든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 자기에게 맞는 식재료와 음식의 효능은 스스로 잘 알고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자연산 천마는 산삼에 버금가는 취급을 받을 만큼 귀하고 재배도 무척 까다롭다. 언젠가는 천마를 지금의 흔한 수삼과도 같은 식재료로 수퍼마켓에서 쉽게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홍신애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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