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카라바조가 그린 손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서양미술사에 '미켈란젤로'는 두 명이다.
로마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등 불후의 명작을 그린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는 누구나 아는 미술가일 것이다. 다른 한 명은 덜 알려졌지만, 후세에 끼친 영향은 그에 못지않다. 미켈란젤로 메리시가 본명인 바로크 창시자 카라바조(1571~1610)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카라바조 생애와 작품을 접하면서 미술에 대한 탐닉이 시작되는 경우가 잦다. 그만큼 그의 그림들은 강렬하며, 그의 생애는 독특하다.
카라바조 마지막 작품부터 보자. '골리앗 머리를 든 다윗'(1610)으로 그의 특기인 극단적인 명암대비를 적용했다. 놀라운 사실은 목이 잘린 골리앗 얼굴 모델은 피폐해진 그의 당시 얼굴이었고, 강인해 보이는 다윗은 한창때 그의 얼굴이라고 한다.
한 작품에 자신을 동시에 그릴 정도로 카라바조는 창조적인 화가였다. '어둠 속에 살았던 불세출 천재'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 그대로 말하면 그는 '막장 패륜 화가'였다.
툭하면 싸우고 언쟁을 벌이는 등 말썽을 피웠으며, 여러 차례 투옥되다가 끝내 살인까지 저질러 도망 다니다 길 위에서 죽었다. 그의 작품들은 연극의 클라이맥스를 그린 듯한 기분이 드는데, 사실 그의 생애 자체가 밀고 당기는 긴 연극이었다.
흔히 인상주의 작가들 작품을 '사진 찍듯이 순간을 잡아 그렸다'고 서술하는데, '장면 포착을 통한 서사의 극대화'는 카라바조에서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
카라바조 작품에 대해선 화풍이나 기법, 주제 등 이야깃거리가 다양하지만, 그가 그린 손을 집중해 살펴보는 일도 퍽 의미 있다.
큰 논란을 일으킨 '성모의 죽음'(1605)을 보면 두 손이 단정치 않다. 특히 한 손은 축 늘어져 있다. 그뿐 아니라 더러운 발이 노출돼 있고, 배는 불룩하며, 복장도 허술하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성모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 죽음처럼 묘사한 덕에 '거리감 없는 엄숙함'에 다다랐다는 평가다.
세금 징수원이었던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는 장면을 그린 '성 마태오의 소명'(1600)에는 두 손 대비가 두드러진다. 오른쪽에 서서 마태오를 부르는 예수의 손과 왼편 끝에 앉아 동전을 세기 바쁜 마태오의 손이다. 성(聖)과 속(俗) 대결이다.
"예수께서 그곳을 지나가시다가 마태라고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랐느니라" (마태복음 9장)
성 바울은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인을 박해하던 사람이었다.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말에서 떨어져 눈이 멀었지만, 예수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눈을 떠 열렬한 교회 지도자가 된 인물이다.
그 순간을 그린 '바울의 회심'(1601)은 많은 화가가 그린 주제였지만, 카라바조 작품만큼 눈이 한 번 더 가는 그림은 없다. 바울이 하늘을 향해 높이 든 두 손 덕분이다.
카라바조 작품 중 여러 사람 손이 동시에 강력한 메시지를 띠고 있는 건 '그리스도의 매장'(1604)이다.
이 그림은 강력한 사선 구도다. 오른쪽 위 두 손을 높이 치켜들며 직접적인 슬픔을 드러내는 글로바 아내 마리아(성모 마리아와 자매), 그림 중간 왼쪽에 보이는 성모 마리아의 손, 예수의 몸을 잡고 있는 사도 요한과 니고데모의 손, 그리고 축 처진 그리스도의 힘없는 손 등이 숨 가쁘게 이어진다. 하나하나 집중해 감상할 만하다.
하지만 카라바조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 손은 아래 작품, '의심하는 도마(토마스)'(1602)의 손이다.
열두 제자 중 예수 부활을 직접 보지 못해 계속 의심했으나, 예수 옆구리에 생긴 상처에 손을 넣어본 뒤에야 믿게 된다는 도마에 관한 요한복음 20장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겼다.
성경 이야기를 그린 카라바조 작품에 등장하는 성인들 손은 성스럽지 않다. 손뿐 아니라 자세나 복장, 동작도 경건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이유로 그림 주문자들은 수시로 다시 그려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경건하지 않은 건 그가 채택한 모델이 뒷골목 사람들, 부랑아, 거지, 심지어 창녀들이었던 이유도 크지만, 성(聖)에서 성(聖)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속(俗)에서 성(聖)을 찾아보려는 카라바조의 탐구 정신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작품, '골리앗 머리를 든 다윗'을 다시 보자. 골리앗 머리를 꽉 움켜쥔 다윗의 손은 비틀어진 생을 다잡아보려는 그의 애절한 외침 같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탄식 같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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