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자신이 겪은 어려움 처한 사람을 경멸하는 이유
자신이 겪었던 것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 그 힘듦을 알기에 더 마음이 가고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 같다. 물론 그런 경우들이 존재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과거에 겪었지만 이겨낸 어려움(예를 들어 금연, 취업하기)을 현재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면 측은지심보다 경멸하는 마음이 더 크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군대 갔다온 사람들이 지금 군인들을 보며 저건 힘든 것도 아니라고 어려움을 평가절하 하는 일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비슷하게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결국 다 의지력의 문제라며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는 일들이 흔한 것을 보면 꽤 흔히 나타나는 현상인 것도 같다.
이렇게 과거의 고생을 평가절하하고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우선 우리의 '기억'이 자신을 훌륭하게 포장하는 방향으로 재구성되는 것이 한 몫 한다. 실은 힘들게 겨우겨우 문턱을 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생각보다 할 만 했다고 개구리 올챙이적 기억 못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또 많은 이들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 외에도 여러가지 운, 가족과 친구, 주변 사람들의 직간접적인 도움의 영향이 컸음에도 이런 부분은 모두 생략하고 오직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이겨냈다며 자신의 성공을 과도하게 '내적 귀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대로 실패했을 경우에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했다기보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거나 주변의 방해가 심했다며 '외적 귀인'을 한다.
이렇게 우리의 기억이란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쉽게 재구성되고 실제 성공에 기여한 원인들도 우리 마음대로 편집되기 때문에 그 결과 우리는 어려움을 이겨낸 소중한 경험을 타인을 돕는 방향으로 쓰기보다 '꼰대질'을 하는 데 사용하고 만다.
"내가 해보니까 할만하던데 너는 왜 어려워 하냐"고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을 돕기는 커녕 비난하고 만다. 하지만 우리가 '나 스스로 이겨냈다'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건들은 사실 스스로의 역할을 과대포장해서 지어낸 거짓말인 경우가 많다.
최근 한 연구가 지나친 내적 귀인이 공감을 방해하는 요소일 가능성을 포착했다. 연구자들은 어렵게 직장을 구한 사람들에게 그 동력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인지, 아니면 그 외에 주변의 도움 또한 존재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자신의 성공에 가족, 친구, 주변인들의 도움 또한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비슷한 고생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안타깝고 도와주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에 대해 내적 귀인보다 '관계적 귀인'을 할 때 우리는 더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타인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게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태어난 순간부터 상당시간을 오로지 타인의 선의에 의해 생존해온 우리의 발자취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나의 노력으로만 전부 이루었다고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시각일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비교적 작은 도움을 받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이 때에도 상관없는 타인에게 보상심리나 억울함을 내비치기보다는 "나는 도움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더 힘들었지만 너는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고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과거에 매이지 않고 다음 세대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 바로 '성숙한' 인간의 조건이 아닐까.
Ruttan, R. L., McDonnell, M. H., & Nordgren, L. F. (2024). Relational attributions for one’s own resilience predict compassion for other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8(6), 610-622.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