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과학 시상식…2024 이그노벨상
● 드디어 돌아왔다! 이그노벨상 현장 시상식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합니다. 비상구 위치를 확인하고 당신이 아이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 위에 앉지 마세요. 오리에게 먹이를 주거나 오리를 쫓아다니거나 오리를 먹지 마세요. 자 그럼 이제 34번째 이그노벨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9월 12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의 한 강의실에서 키이스 뮬러 박사가 34번째 이그노벨 시상식 개최를 알렸습니다. 뮬러는 2003년에 죽은 청둥오리 연구로 이그노벨 생물학상을 받은 수상자예요. 이그노벨상은 매년 가을 노벨상 발표 2주전에 열리는 특별한 시상식으로 미국 유머과학잡지 '기발한 연구 회보'에서 만들었습니다.
이그노벨상은 매년 사람들을 웃게 하고 그다음에 생각하게 만드는 연구를 선정해 상을 줍니다. 이그노벨상의 창시자인 마크 에이브러햄스는 위대한 연구도 처음에는 무시당하거나 우습게 여겨졌던 경우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어요.
실제로 안드레 가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2000년에 이그노벨상을 받은 뒤 2010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이그노벨상은 개구리 공중부양 연구로, 노벨상은 그래핀 연구로 받은 거긴 하지만요.
이그노벨 시상식은 매년 주제를 정해서 진행됩니다. 올해 시상식 주제는 머피의 법칙이었어요. 머피의 법칙은 '잘못될 만한 일이 있다면 그 일은 반드시 잘못된다'는 뜻의 심리학 용어입니다. 이전 수상자들이 24초 동안 머피의 법칙과 관련된 개념을 설명한 뒤 딱 7개의 단어로 요약하는 '24/7' 강연을 진행했어요. 24초를 넘기면 가차없이 말을 끊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또 올해의 트로피는 '머피의 법칙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는' 물건이 담긴 플라스틱 상자였는데 누군가 시상 후 무대에 놓고 가버리는 바람에 진행자가 범인찾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상품이 마음에 안 들어도 피할 수는 없었답니다.
죽은 송어보다 살아있는 송어가 더 많이 움직인다는 내용의 물리학상, 부작용이 심한 가짜약이 부작용이 없는 가짜약보다 효과적이라는 내용의 의학상 등 기발한 연구로 가득했던 2024 이그노벨상 수상 연구들을 지금부터 소개합니다.
○ 2024 이그노벨상 통계학상. 동전 350757번 던지고 알아낸 것은?
● 몸으로 확인한 동전 던지기 가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올 확률은 얼마일까요. 미국의 수학자 디아코니스가 세운 가설에 따르면 동전이 시작 면과 같은 면으로 떨어질 확률은 다른 면으로 떨어질 확률보다 약간 높아요. 하지만 이 가설이 아직 증명되지는 않았습니다.
프란티셰크 바르토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심리학적방법론 박사과정생은 직접 동전을 수십만 번 던져서 가설을 확인하기로 했어요. 충분한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바르토시는 친구들을 모아 동전 던지기 마라톤을 여러 차례 열었습니다.
48명이 35만757번 동전을 던진 결과 처음 면과 같은 면이 나올 확률은 50.8%였습니다. 현실에서 동전을 던질 때 앞면이나 뒷면이 나올 확률은 완전히 무작위하지 않고 처음 보였던 면이 다시 나오는 경우가 조금 더 자주 있는 거예요.
연구팀은 공중에 던진 동전이 완벽하게 돌지 않고 약간 비틀리면서 돌아서 이론적인 확률에 딱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바르토시는 "이 연구가 일상에 특별히 변화를 불러오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미세한 물리 법칙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 2024 이그노벨상 해부학상. 가마 방향은 태풍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지만, 아마 아닐 것이다" - 로만 콘사리
사람의 정수리를 보면 머리카락이 양쪽으로 나뉘는 지점이 있는데 이를 '가마'라고 합니다. 로만 콘사리 프랑스 파리시립대 의대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북반구 사람들의 가마는 시계 방향으로 남반구 사람들의 가마 방향은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콘사리는 사람들의 가마 방향이 다른 이유에 태풍과 같은 환경적 요인이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하다가 이렇게 덧붙였어요. "하지만 사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Q. 수상 소식을 듣고 기분이 어떠셨나요.
"팀원들이 많이 생각났어요. 이 연구를 하는 동안 병원의 동료들이 우리 팀을 많이 놀렸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인정받아 무척 자랑스러웠죠."
Q. 왜 사람의 가마 방향을 연구하게 됐나요.
"환자의 머리를 수술하면서 가마를 자주 봐요.몇몇 유전 질환은 머리카락의 방향이랑 관련이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동료인 윌렘스 박사의 쌍둥이 딸들의 가마가 같은 방향인 것을 보고 가마 방향이 유전적인 영향을 받는지 환경적 영향을 받는지 궁금해졌어요."
Q."태풍이 가마 방향과 관련있을 수도 있지만 아마 아닐 것"이라고 하신 이유는 뭔가요.
"태풍의 방향은 지구 자전에 영향을 받아요. 물체가 회전할 때 작용하는 힘을 '코리올리힘'이라고 하는데 지구가 자전하면서 생긴 코리올리힘이 바람이나 해류의 방향을 결정하죠. 저희는 남반구와 북반구 사람들의 가마 방향이 다른 이유에 환경적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짐작했어요.
하지만 코리올리힘은 대규모 환경에서 작동하는 것이라 세포 수준의 사건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 가설이 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죠. 하지만 모든 발견에는 고유한 가치가 있답니다."
○ 2024 이그노벨상 화학상. "술취한 벌레보다 맨정신인 벌레가 빠르다" - 앙투안 드블레
앙투안 드블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물리학과 교수팀은 술이 생물의 움직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내기 위해 독특한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술에 취한 벌레와 맨정신인 벌레에게 달리기를 시킨 결과 맨정신인 벌레가 훨씬 빨랐어요. 연구팀은 술취한 벌레의 활동성이 맨정신인 벌레보다 떨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Q. 이 연구 결과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친구들과 경주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친구는 빨리 뛰고, 또 어떤 친구는 천천히 걸어요. 이 연구에서 벌레들은 달리기 선수들이에요. 우리는 벌레들을 술에 취하게 한 뒤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했어요.
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또 이런 움직임이 자연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물고기 떼나 새 떼가 어떻게 함께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데도 쓰일 수 있죠. 그래서 과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연구입니다."
Q. 이그노벨상은 과학자에게 어떤 상인가요.
"이그노벨상은 과학의 창의성을 기념하는 상이에요. 연구가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상기시켜 주고 과학이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요. 때로는 웃을 수 있는 연구가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Q. 이그노벨상을 꿈꾸는 어린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과학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여러분이 어리든 대학에 다니든 말든 상관없어요. 우리 연구팀의 테스는 23살 학생인데 집에서 대부분의 실험을 했어요. 항상 호기심을 유지하고 엉뚱해 보이는 질문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계속해서 실험하고 과학을 즐기다 보면 여러분의 실험이 이그노벨상을 받을 날이 올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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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과학동아 11월 1일, 2024 이그노벨상.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과학 시상식
[박현선 기자 hs21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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