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시대 연 ‘인천 자동차 40년’ [인천톡톡]

인천=안재균 기자 2024. 11. 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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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始發)자동차는 서울의 최무성 씨 등이 설립한 국제차량제작 주식회사에서 1955년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다.

이후 재일교포 박노정씨가 1962년 일본 닛산과 기술제휴해 인천 부평에 자동차회사를 설립하면서 우리 손으로 만든 자동차가 탄생한다.

바로 새나라 자동차다.

이 새나라 자동차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부평에서 운영된 신진자동차, 새한자동차, 대우자동차의 40년의 역사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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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현대식 컨베이어벨트 인천 부평 공장 설립
새나라→신진→새한→대우자동차→한국지엠 이어
1963년도 새나라 자동차 생산 모습(정부기록 사진). 사진제공=인천시역사자료관
[서울경제]

시발(始發)자동차는 서울의 최무성 씨 등이 설립한 국제차량제작 주식회사에서 1955년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다. 엔진과 변속기는 미국 지프에서 가져왔고 차체는 드럼통을 펴서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재일교포 박노정씨가 1962년 일본 닛산과 기술제휴해 인천 부평에 자동차회사를 설립하면서 우리 손으로 만든 자동차가 탄생한다. 바로 새나라 자동차다. 이 새나라 자동차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부평에서 운영된 신진자동차, 새한자동차, 대우자동차의 40년의 역사 시작이다.

새나라자동차는 1962년 부평에 현대식 컨베이어벨트 공장을 지어 일본 닛산자동차에서 부품을 들여와 자동차를 조립, 생산하였으나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후 소형버스 생산으로 유명했던 신진자동차가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했으며, 1963년 정부의 자동차공업일원화 정책에 따라 자동차를 독점 생산하게 돼 승용차 신성호를 선보였다.

신진자동차는 1966년 일본 도요타 자동차와 기술제휴를 맺고 코로나, 크라운, 퍼블리카를 생산했다. 영어단어 ‘퍼블릭(Public)’과 ‘카(Car)’를 합친 이름의 소형차인 퍼블리카는 예쁜 모습에 연비가 좋은 데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본격적인 자가용 시대의 출발을 알렸다.

신진자동차는 1972년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부품수입이 중단되자 그 대안으로 미국 지엠(GM)자동차와 합작해 지엠(GM)코리아가 됐다. 이후 1976년 새한자동차로 사명을 바꾸고 제미니, 로열디젤, 맵시, 로열프린스 등을 생산했다. 새한자동차는 지엠(GM) 본사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어 고유모델의 개발에 힘을 쏟을 수 없었다. 대우자동차가 1978년 새한자동차의 산업은행 지분을 인수하면서 독자적인 기술개발의 길을 열었다.

1982년 12월 지엠(GM)에게서 경영권을 인수한 대우는 1983년 새한자동차의 상호를 대우자동차로 변경했다. 2년간의 개발 끝에 1986년 선보인 월드카 르망은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어 고유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해 에스페로를 출시하고, 1996~1997년에는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3개 차종을 연이어 선보이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또한 1991년 국민경차 티코와 1998년 마티즈를 출시해 국내 경차 문화를 선도했다.

그러나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자동차 부문이 매각됐고, 이제는 한국지엠(GM)이 그 자리를 잇고 있다.

인천도시역사관은 11월 12일부터 이 같은 인천 자동차 역사를 담은 ‘인천 자동차 40년’ 특별전을 개최한다.

인천=안재균 기자 aj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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