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이주노동자 사망, 원인은 비닐하우스? [전국 인사이드]

박서화 2024. 11. 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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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이날 평창 진부면에서 대파 수확 일을 하던 이주노동자 두 사람이 밤사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잠을 자다 숨졌다.

4년 전인 2020년 12월20일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던 이주노동자가 추위 속에서 세상을 떴고, 이후에도 이주노동자의 죽음은 반복돼왔다.

그리고 그동안 정부는 농민을 대상으로 '비닐하우스 등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면 고용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엄포만 반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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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한 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박서화 <강원일보> 기자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이곳은 인구 8557명의 작은 마을이다. 주산업은 농업. 수확 철이면 배추며 양배추, 파프리카까지, 농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땅을 일군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농촌의 노동을 이끌어나가는 사람들의 말씨와 겉모습 정도다. 이곳의 노동을 책임지는 이들은 더 이상 선주민이 아니다. 지구 곳곳에서 온 이주민들이다. 그들과 공존하며 노동하는,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간을 지방은 먼저 살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 없으면 우리는 못 살아! 우리 집에 사는 사람들도 벌써 식구 된 지가 오래인데···.” 평창에서 30여 년간 농사를 지어온 이웅재씨(58)가 말했다.

그런데 사람을 기다리는 지역 주민들,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찾아 한국으로 온 사람들의 만남을 자꾸 가로막는 주체가 있다. ‘대한민국’이다. 이미 한국의 이주노동 정책은 자국민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일하러 온 노동자를 ‘불법체류’화하는 행태로 비판받아왔다. 노동자의 사업장 이동권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가 대표적이다. 이뿐일까,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이주민만 받겠다는 불가능한 셈법 속에서 많은 이주민들이 비자를 연장하지 못한 채 ‘미등록’ 신세가 되어 불안정한 노동시장을 오간다. 이런 정부의 정책을 오랜 시간 단일민족 신화 속에서 살아온 ‘환상 속 대한민국’이 떠받친다.

대파 수확하던 이주노동자의 죽음

깨지지 않은 환상 속에서 ‘우리’로 포섭되지 못한 사람들은 취약한 위치로 밀려난다. 수확 철이면 이렇게 내몰린 노동자들이 봉고차를 타고 전국의 논밭을 돈다. 이들을 고용한 주체는 많은 경우 농민조차 아닌, 인력시장의 업자다. 정착할 수 없는 환경, 낯선 곳에서 속전속결로 이뤄지는 수확 노동, 그리고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 ‘사람이 아니라 노동력’을 받겠다는, 뒤떨어진 국가적 신념이야말로 이들을 이토록 취약한 위치로 내몰았다.

그래서 수확기의 농촌에는 공존 대신 어두움이 드리운다. 지난 10월4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평창 진부면에서 대파 수확 일을 하던 이주노동자 두 사람이 밤사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잠을 자다 숨졌다. 사인은 난방기기에 의한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미등록 신분 이주민, 낯선 작업 현장의 추위를 어떻게든 피해보려 했던 노동자들, 숙식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저소득층.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경찰과 주민들의 설명을 종합하자면 이들이 처해 있던 환경은 이토록 복잡하고 위태로웠다.

비극은 처음이 아니다. 4년 전인 2020년 12월20일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던 이주노동자가 추위 속에서 세상을 떴고, 이후에도 이주노동자의 죽음은 반복돼왔다. 그리고 그동안 정부는 농민을 대상으로 ‘비닐하우스 등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면 고용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엄포만 반복하는 중이다. 시민사회 영역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서울 가사노동 현장에서 차별에 노출된 필리핀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비판과 논의가 이어지지만, 지방 농촌에서 위태롭게 일하는 이주노동자를  지역사회 공존의 장으로 끌어오려는 시도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근로기준법도 인권도 비껴가는, 이 위태로운 노동의 위치를 놔둔 채 지역 농민과 비닐하우스만 지목하는 ‘정치’를 한국 사회는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죽음을 부른 권력이 비닐하우스를 가리키는 손가락 뒤에 있다.

박서화 (<강원일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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