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마다 되감기 버튼 누르는 교통·에너지·환경세

윤형중 2024. 11. 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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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에너지·환경세는 3년마다 일몰을 연장하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세금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라도 조세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3년마다 우리 앞에 찾아와서 생명을 연장하는 제도가 있다. 바로 휘발유·경유에 세금을 부과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다. 문제는 심도 있는 토론이나 치열한 논쟁 없이 계속 연장해왔다는 점이다. 언론에도 ‘교통·에너지·환경세, 이번에도 일몰 연장’ 정도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 3년마다 반복적으로 나오고, 국회에서도 연말 예산과 세법 심의에서 별다른 이견이 나오지 않는다. 마침 올해가 3년째 되는 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25일 발표한 ‘2024년 세법개정안 상세본’ 70쪽에서 ‘교통·에너지·환경세법의 부칙을 개정해 유효기간을 3년 더 연장’하겠다는 방침을 짤막하게 밝혔다. 이대로 되면 무려 여덟 번째 생명 연장이다. 과연 이렇게 연장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교통·에너지·환경세는 작금의 기후위기 상황에 맞지 않는 조세제도로, 이렇게 반복해 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교통·에너지·환경세는 세수입의 68%가 주로 도로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교통시설특별회계로 들어간다. 화석연료에 과세한 재원으로 도로를 확충하는 데 사용하는 기후 역행적인 인센티브 구조를 가진 셈이다. 둘째, 교통·에너지·환경세는 탄소 배출에 비용을 지불하는 가격의 신호 기능이 약하고, 물가 대책으로 유류세 인하를 자주 시행하면서 오히려 유류 소비를 부추기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셋째, 현행 교통·에너지·환경세 중심의 세금 제도로는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국제적인 기후 무역 규범에 대응하기 어렵다.

■ 목적세와 교정세의 ‘잘못된 만남’

조세제도는 다른 제도보다 경로의존성이 심한 경향이 있다. 경로의존성이란 과거에 형성된 제도나 관행 등이 시간이 지난 후에 비효율적인 것으로 밝혀지거나,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어도 잘 바뀌지 않는 현상이다. 조세제도는 납세자의 손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제도의 변경 자체가 쉽지 않고, 이전의 경로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시대에 맞지 않는 조세제도가 유지되거나, 그때그때 부분만 손질해 복잡하고 체계성 없는 누더기 세제가 만들어지는 이유도 이런 경로의존성 때문이다.

교통·에너지·환경세의 탄력세율 제도는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물가 대책으로 과도하게 꺼내게 한다는 문제가 있다. ⓒ연합뉴스

교통·에너지·환경세의 세수입 상당분을 교통시설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이유 역시 경로의존성과 관련이 깊다. 교통·에너지·환경세는 당초 1994년 도입된 교통세에서 시작했다. 여기서 ‘목적세’라는 중요한 키워드가 나온다. 교통세는 처음부터 ‘목적세’로 도입했다. 목적세란 ‘거두는 목적’이 아닌, ‘사용처의 목적’이 있는 세금이다.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된 목적세는 1958년 초등학교 의무교육 실시를 위해 도입된 ‘교육세’이고,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면서 농어촌 지원을 위해 도입한 ‘농어촌특별세’ 역시 대표적인 목적세다. 교통세는 도입 당시 ‘도로 및 도시철도 등 교통시설의 확충에 소요되는 재원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법에 명시했다.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이 도로를 만드는 비용을 대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 적용된 것인데, 처음 도입될 때에는 세수입의 100%를 교통시설특별회계로 전입했다.

문제는 교통세가 교통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목적세인 것과 부과 대상인 휘발유, 경유의 특징이 점점 어울리지 않다는 점이다. 교통세 이전에도 휘발유와 경유에 부과하는 특별소비세가 있었다. 1977년에 도입된 특별소비세는 휘발유·경유뿐 아니라 등유·중유·LPG·LNG·유연탄 등 모든 화석연료에 세금을 부과했고, 2008년 이름이 바뀐 개별소비세도 모든 화석연료에 세금을 부과한다. 다만, 휘발유·경유에 이중과세하지 않도록 교통·에너지·환경세를 부과할 경우 개별소비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부칙상의 조항이 존재한다. 사치품에 부과하는 성격이 강했던 특별소비세는 개별소비세로 바뀌면서 개정 취지문에 “사치품에 대한 소비 억제보다는 사회적 비용 유발하는 자동차·유류 등 일부 개별 품목 등에 부과하는 교정세적 의미가 나타날 수 있도록” 명칭을 변경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휘발유·경유에 부과하는 세금은 ‘교정세(corrective tax)’의 의미가 본래부터 있었지만, 환경의 중요성이 대두되지 않았던 과거엔 교통시설을 확충하는 성격의 한시적 세금이 도입될 만한 타당성이 있었다.

지금의 기후위기 시대에는 화석연료에 부과하는 세금이 수익자 부담 원칙의 목적세보다는 소비를 억제하는 교정세에 더 어울린다. 수익자 부담 원칙의 인센티브 구조는 자동차를 많이 타서 휘발유와 경유를 많이 소비할수록 도로가 더 많이 깔리고, 잘 확충된 도로는 다시 자동차 운행을 늘려 끊임없이 탄소 배출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제기로 인해 교통세는 2007년 명칭을 ‘교통·에너지·환경세’로 바꾸면서 “대중교통 육성을 위한 사업, 에너지 및 자원 관련 사업, 환경의 보전과 개선을 위한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한다는 목적들을 추가했지만, 세수입의 배분 구조에서 여전히 교통시설특별회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가장 최근의 일몰 연장 시기인 2021년에 교통시설특별회계의 비중을 73%에서 68%로 줄이고, 기후대응기금을 신설해 전입 비중을 7%로 책정했지만, 여전히 교통의 비중이 70% 가까이 된다.

■ 이대로는 기후 무역 규범 대응 어려워

교통·에너지·환경세는 목적세이면서 탄력세율이 적용되고, 부가세(surtax)의 형태로 자동차세 주행분과 교육세가 부과되는 특징이 있다. 이런 각각의 특징들도 교통·에너지·환경세의 문제점들을 만들어낸다. 탄력세율 제도란 국회가 아닌 정부가 탄력적으로 세율을 변경해 운용할 수 있는 형태를 의미한다. 본래 조세법률주의의 원칙에 따른다면 세율은 입법사항이지만, 물가 대응 등 경기 조절의 목적으로 정부에 일종의 재량권을 준 것이다. 교통·에너지·환경세는 기본세율의 30% 범위를 탄력세율로 정했는데, 물가가 급격하게 올랐던 2022년 8월 탄력세율을 한시적으로 50% 범위까지 확대하는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교통·에너지·환경세의 탄력세율 제도는 정부가 습관적인 물가 대책인 ‘유류세 인하’를 과도하게 꺼내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우리 정부는 2021년 11월12일부터 지금까지 계속 유류세를 인하하고 있다. 여기서 유류세란 편의적 용어로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교육세, 자동차세 주행분을 포괄한다. 교육세와 자동차세 주행분은 교통에너지환경세에 얹혀서 부과되는 부가세다. 예를 들어 교통·에너지·환경세가 1L당 500원이 부과되면 교육세는 500원의 15%인 75원, 자동차세 주행분은 500원의 26%인 130원이 부과된다. 따라서 탄력세율 30%를 적용해 교통·에너지·환경세를 감면하면 전체 유류세의 감면 비율은 37%까지 커진다. 부가세는 제도를 경직적으로 만드는 원인이다. 자동차세 주행분을 따로 마련하지 않는 한 교통·에너지·환경세를 개편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물가가 오르는 시기에 정부가 쓸 수 있는 대책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유류세 인하는 충분히 검토할 만한 카드다. 하지만 유류세 인하가 탄소 배출을 부추긴다는 점을 인지하고, 과도하지 않은 수준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물가인상 국면에서 주요 국가들의 유류세 감면 현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휘발유·경유 가격과 세율은 OECD 평균에 비해 낮은 편이며 2022년도 유류세 인하 폭과 기간은 다른 나라보다 대체로 크고 길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유류세 인하가 실제 휘발유·경유 가격에 미친 영향도 제한적이다. 장희선(전북대), 최봉석(국민대) 교수가 2022년 3월 〈에너지경제연구〉에 기고한 ‘유류세 인하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이란 논문을 보면 휘발유의 경우 유류세 인하분의 26~49%가 판매 가격에 반영됐고, 경유의 경우엔 유류세를 20% 인하했을 때 인하분의 12~27%가 판매가에 반영됐다. 유럽 19개 국가들이 탄소세를 도입해 기존 에너지 세제를 대체하거나 병행 운영하는 이유는 탄소를 배출할 때의 비용을 소비자들이 분명히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한국 정부는 과도한 유류세 인하로 소비자들이 탄소 가격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다.

현행 교통·에너지·환경세로는 향후 확산될 국제적인 기후 무역 규범에 대응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교통·에너지·환경세와 배출권거래제에서 지불한 금액을 유럽연합이 인정하는 ‘지불한 탄소 비용’으로 인정받는 방안을 적극 협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학계에서는 교통·에너지·환경세가 탄소세에 해당되지 않고, 탄소 배출에 부과하는 세율의 수준도 낮다는 점을 지적한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서 한국의 교통·에너지·환경세가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추가적인 연구와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고, 근본적으로 탄소세로 개편 및 전환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나마 3년 전 21대 국회에서 교통·에너지·환경세를 탄소세로 전환하자는 제안들이 나왔고, 당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관련 법안들을 발의했지만, 후속 논의가 미진해 법제화되지 못했다.

물가상승기에 유류세 인하를 제한하고, 대신 택배와 운송 사업자 한시적 지원 등에 이 기금을 활용할 수 있다. ⓒ시사IN 신선영

 

■ 에너지·환경세 별도로 분리하자

조세법률주의의 원칙과 별개로 조세제도는 정부의 협조 없이 만들거나 개편하기 쉽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탄소세 도입에 신중론을 고수해왔고, 올해 세법개정안에서도 짤막하게 교통·에너지·환경세의 연장을 담았을 뿐이다. 따라서 현 정부에서 탄소세 도입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올해 세법개정 논의 때 교통·에너지·환경세 개편에 담을 수 있는 최대치는 무엇일까. 앞서 제기한 문제점들을 바탕으로 세 가지 제안을 해본다.

첫째, 교통세와 에너지·환경세를 분리하는 것이다. 교통세의 세수입만 교통시설특별회계로 전입해 수익자 부담 원칙을 유지하고, 오히려 에너지·환경세는 별도로 분리해 교정세의 원칙에 충실하게 하는 방안이다. 둘째, 탄소가격유지기금을 신설해 기존 교통·에너지·환경세 전체 세수입의 20% 이상을 편입하는 것이다. 탄소가격유지기금은 말 그대로 탄소 배출에 대한 가격 부담 수준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구체적으로는 물가상승기에 유류세 인하를 제한하고, 대신 저소득층과 지역 주민 지원, 에너지 바우처, 택배와 운송 사업자 한시적 지원,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 대중교통 확충 등에 이 기금을 활용할 수 있다. 셋째, 기존 세수입 배분 구조를 대폭 개편하는 것이다. 교통시설특별회계 전입 비중을 현재의 68%에서 30% 이하로 대폭 낮추고, 탄소가격유지기금 도입을 포함해 기후대응기금 전입 비중은 현재 7%에서 20%가량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기후대응기금의 규모를 두 배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야당이 반대하지 않는 사안이니, 여당으로서 공약 이행을 늦출 이유가 없다. 이런 식으로 배분 구조를 바꾸면 향후 교통시설 확충 재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교통시설에 필요한 재원을 별도의 목적세로 조달할 이유는 없다. 정부의 일반 재정(일반회계)에서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

최근의 정치적 상황을 볼 때, 올해 말 국회에서 세법개정 논의가 얼마나 충실히 이뤄질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교통·에너지·환경세의 개편은 더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윤형중 (랩2050 대표)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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