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얼 회사 포스트 상속녀의 ‘힐우드 에스테이트’ [이한빛의 미술관 정원]
[워싱턴=뉴시스] 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 20세기 초중반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100년의 시간을 돌려 당시의 럭셔리 라이프를 상상해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워싱턴 D.C. 북서쪽, 언덕배기의 고급주택가에 자리한 ‘힐우드 에스테이트, 뮤지엄 앤 가든스’가 바로 그곳이다. 시리얼 회사로 유명한 포스트의 상속녀였던 마조리 메리웨더 포스트(Marjorie Merriweather Post , 1887 ~ 1973)가 거주했던 집이 이제는 미술관으로 바뀌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상속녀에서 굴지 재벌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마조리
이듬해인 1929년엔 클라렌스 버드아이(Clarence Birdseye)가 소유한 냉동식품 회사 ‘제너럴 푸드 컴퍼니’를 인수했다. 마조리 포스트가 3년전부터 공들였던 회사로, 냉동식품이 미국 생활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는 직관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골드만 삭스와 함께 49대 51로 지분을 확보하고, 포스텀 시리얼 컴퍼니는 이후 ‘제너럴 푸드 코퍼레이션’(General Food Coperation)으로 사명을 변경한다. 시리얼 회사 상속녀가 미국을 호령하는 식품 재벌이 된 것이다.
대단한 사업가였던 마조리의 곁을 지킨 남편은 총 4명이었다. 첫 결혼은 1905년 그리니치 은행 투자가였던 에드워드 베넷 클로즈와 했고 사이에서 두 명의 딸을 낳았다. 두 번째 결혼은 1920년 금융투자가 에드워드 프랜시스 허튼이었다. 둘은 포스텀 시리얼을 저너럴 푸드 코퍼레이션으로 키웠고, 사이에 한 명의 딸을 낳았다. 세 번째 결혼은 1935년, 워싱턴 D.C.변호사인 조셉.E.데이비스와 했다. 1936년부터 1938년까지 2차 세계대전 당시 주 러시아 미국 대사였던 그를 따라 마조리도 모스크바로 넘어갔다. 이때 러시아 예술품을 많이 컬렉션 할 수 있었다. 데이비스는 대사로 역임하며 그때 겪었던 모스크바를 ‘모스크바 미션’(Mission to Moscow, 1941)이라는 책으로 펴냈는데 1943년에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여배우 앤 하딩이 데이비스의 아내였던 마조리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마지막 결혼생활은 1958년부터 1965년까지, 피츠버그 사업가인 허버트 A.메이와 함께 했다. 네 번의 결혼과 이혼 끝 마조리는 원래 자신의 이름이었던 ‘마조리 메리웨더 포스트’로 돌아왔다.
작품에 대한 안목과 러시아에 대한 사랑
1930년대 스탈린의 소련정부가 전쟁에 필요한 외화를 마련하기 위해 압수 예술품을 매매했는데, 이때 데이비스 부부가 좋은 컬렉션을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힐우드 에스테이트에는 현재 약 1만7000점의 컬렉션을 보관하고 있다. 캐서린 대제의 초상화, 러시아 최고급 공예품으로 꼽히는 파르베제 달걀, 캐서린 궁의 샹들리에, 마리 앙트와네트를 위해 디자인된 캐비닛과 회전 의자, 아프리카 세브르 도자기 등 18, 19세기 프랑스 미술품과 러시아 미술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금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는 본관은 마조리가 살아 생전 쓰던 모습대로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다. 입구 홀에 들어서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여러 초상화가 걸려있고, 그 중엔 캐서린 대제의 것도 있다. 예술과 과학의 수호자이자 러시아를 현대화한 캐서린 대제는 마조리가 가장 좋아했던 군주로 알려져 있다. 1층 도서관에는 영국 가구를 중심으로 조지 왕조 스타일의 가구, 부모님의 초상화와 자신의 초상화도 걸려있다.
이외에도 조식을 먹는 식당엔 작은 원형테이블과 그에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식기, 정원을 내다볼 수 있는 창엔 시기에 어울리는 난초가 자리잡았다. 은촛대와 은식기가 끝없이 진열된 식당, 차분한 핑크색 톤이 따뜻함을 주는 마스터 베드룸, 영국식으로 꾸민 손님용 침실, 마찬가지로 영국 신고전주의 스타일을 반영한 2인 침실 등 복도를 지나 방을 하나 열어 볼 때마다 당시 미국을 주름잡던 소셜라이트의 생활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18세기 프랑스 회화나 가구, 장식품 등은 미국 주요 미술관의 단골 컬렉션이다. 당장 내셔널 갤러리에도 한 개 윙을 채울 정도로 그 양식의 변화를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그러나 미술관이라는 ‘감상’만을 위한 공간에 놓여있는 작품을 만나는 것과 가정집에 놓여 실제로 쓰였던 광경을 목격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작품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고 그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는 건 분명 미술관의 덕목이다.
그러나 미술품이라는 것의 출발이 장식이고, 우리가 사는 공간에 놓여 어떠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미술관에서 미술사적 맥락에서만 만나는 미술품은 진정한 미술품이 갖는 정체성의 절반만 만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방에 걸려서, 철마다 달라지는 화초와 함께, 늘 쓰는 식기로, 가구로 만나는 예술품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프랑스정원부터 일본정원까지
정원 한켠엔 작은 온실이 있는데, 이곳의 주인공은 난초다. 마조리 본인이 난초를 좋아해서 열정적으로 관리했다고 한다. 현재는 열대식물 컬렉션과 함께 약 2000개 이상의 표본과 수 백 가지 품종을 소장하고 있다. 저택과 가까운 정원의 주인공은 프랑스식 정원이다. 낮은 분수가 있는 작은 연못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자갈이 깔리고, 무릎 정도 오는 관목이 질서 있게 자리잡은 이 곳은 2층 마스터 베드룸 창문을 통해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아치를 통해 들어가고, 사방은 담쟁이 덩굴 담으로 둘러 쌓여 마치 비밀의 정원처럼도 보인다. 정원의 한 쪽 끝에는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가 사냥개를 숲에서 데리고 나오는 모습의 조각이, 맞은편에는 스핑크스 대리석 한 쌍이 자리잡았다. 저택의 미술품 배치처럼 정원도 공간에 여백이 충분하지만 또한 빈 곳이 없이 꽉 차있는 느낌을 준다. 마조리가 저택에 머물던 당시 이 정원을 내려다보며 전화 통화를 하고 직원들과 아침 회의도 주재했다고 하니, 얼마나 아끼던 곳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저택과 약간 떨어진 곳엔 일본정원이 있다. 쇼고 미야이다가 설계한 이 정원은 석등, 탑,입구를 지키는 돌로 만든 개 조각상(foo dog) 사이 일본 단풍나무와 작은 개울이 아기자기하게 자리잡았다. 낮은 아치형 다리와 호테이(일본 불교 행운의 신)를 만나면 완전 일본의 신사에 온듯한 느낌이지만 이곳의 자연은 어딘가 일본스럽지는 않은 느낌이다.
일본에서 공수해온 단풍나무, 백송 같은 나무 사이 콜로라도 블루 사이프러스 같은 미국 토종 수목이 섞여 있어서다. 쇼고는 “부지와 정원의 성격에 적합해야한다”며 약간은 일본스럽지만 또 동시에 미국스러운 일본 정원이 의도적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정원이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은 아니다. 1955년부터 1979년까지 원래 있던 테니스코트, 수영장이 철거되고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 난초 수집에 온실 규모도 커졌고 동백꽃을 위한 전용 하우스도 들어섰다. 자신이 사랑하면서 가꾼 곳에서 마조리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해는 장미정원에 안치됐다. 1956년 백악관 장미정원을 디자인한 페리 헌트 휠러를 고용해 만든 정원이다. 장미가 주종을 이루나 튤립, 국화와 같은 다른 꽃도 있어, 봄에서 가을에 이르기까지 꽃이 시들지 않는 곳이다. 마조리가 잠든 곳엔 “내 모든 희망은 내 안에 있다”(In me mea spes omnis)는 문장이 새겨진 붉은색 화강암 기념비가 있다. 불꽃과 같은 삶을 살아낸 여인을 지탱해 준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백종원 "소유진, 나보다 술 잘 마셔…데이트 후 힘들어 링거 맞기도"
- [인터뷰] '만취' 경수진 "저 만나보니 제 성격 느껴지시죠?"
- "결국 내가 죽었다"…김광수, '티아라 왕따사건' 전말 공개
- "父 가정폭력, 母 월급 갈취에 뇌전증 증상" 충격 사연
- "김건희 행위 '국정농단' 칭할 수 있나" 국립국어원에 올라온 게시글
- '흡연 논란' 옥주현, 이번엔 목에 장침 꽂아 "흔치 않은 일"
- '강남역 여친 살해' 의대생 사형 구형…유족, 무릎 꿇고 엄벌 탄원(종합)
- [단독]'화천 토막 살인' 軍 장교, 살인 후 피해자인척 보이스톡…미귀가 신고 취소 시도
- 죄수복 입은 김정은 철창 안에…스위스에 걸린 광고
- 한지일, 100억 잃고 기초수급자 "고독사 두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