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에게 필요한 트럼프와 아베의 ‘브로맨스’
아베, 2016년 트럼프 당선 9일만에 뉴욕 찾아가 만나
혼마 골프채 선물하고 취임 한 달만에 함께 라운딩
하루 27홀 골프, 세 끼 식사 함께 하며 친분 쌓아
日 골퍼 “두 정상, 카트에서 진지하게 대화에 몰입”
[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 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으로 정치·외교·안보를 25년간 취재해왔습니다. 주요 사안의 막전막후에서 취재한 의미있는 비사를 전해드립니다.]
일본에서 가장 구독자가 많은 종합월간지는 문예춘추입니다. 이 매체의 10월호에 일본의 유명 프로 골퍼 아오키 이사오(青木功)가 2019년 5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골프를 친 소감문이 실렸습니다.
아오키는 일본인 최초로 1980년대 미국 PGA 대회에서 우승한 인물입니다. 트럼프가 2017년 첫 방일 때 과거 아오키와 잭 니클라우스의 경기를 시청했다며 그의 퍼팅 실력을 칭찬한 것이 계기가 돼 두 사람의 골프 회동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아오키는 문예춘추 기고문에서 이런 목격담을 전합니다. “(내가) 나이스샷이라고 말을 걸 새도 없이 두 사람은 공을 치면 쑥 카트로 돌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에 몰입했다.” 스코어는 기록하지 않았다. 골프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진짜 목적은 둘이서만 본심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누구의 눈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도청당할 염려도 없는 골프장은 안성맞춤이 아니었을까. 뉴스를 통해 영상을 본 사람들은 두 사람이 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을지 모르나 가까이서 봤던 내 인상은 다르다. 카트 안에서 진지하게 정치 이야기를 했다. 말 그대로 ‘골프외교’였다.”
골프는 친목을 쌓는 수단이었을 뿐, 트럼프와 아베는 카트를 타고 이동하면서 서로 국익을 놓고 진지한 대화를 했다는 겁니다.
◇골프로 브로맨스 쌓은 트럼프와 아베
아오키의 문예춘추 기고는 2019년 도쿄 특파원으로 당시 트럼프와 아베의 골프 회동을 취재하던 당시를 떠 올리게 했습니다. 트럼프와 아베, 아오키가 라운딩을 한 날은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일대의 기온이 32도까지 솟구쳐 오른 5월 26일이었습니다.
이날 오전 9시 나루히토 일왕의 첫 국빈(國賓)자격으로 25일 일본을 찾은 트럼프의 전용 헬기 ‘마린 원’이 도쿄만(灣) 동쪽 지바(千葉)현의 한 골프장 페어웨이에 착륙했습니다. 미리 도착해 있던 아베는 헬기 바로 앞까지 걸어가 환한 얼굴로 그를 영접했습니다.
무더운 날씨였고 전날 지바현 일대엔 진도 5.1의 지진이 발생했지만 두 정상의 ‘브로맨스’ (brother+romance·남자 간의 우정을 의미) 골프를 막지 못했습니다. 두 정상 간 회담은 당시가 11번째이고, 골프 회동은 5번째였습니다. 이들은 골프 시작에 앞서 ‘미 · 일 동맹을 더 강하게’라고 쓰인 패널에 사인한 후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라운딩 도중 아베 총리는 직접 카트를 운전했습니다. 두 정상은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날씨에 헬기 발착용으로 폐쇄된 2개 홀을 제외한 16홀을 3시간에 걸쳐 다 돌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골프 회동에 만족한 듯 운동이 끝나자마자 트위터에 아베 총리를 배려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일본과의 무역 협상에서 큰 진전이 이뤄지는 중이다. 많은 부분은 일본의 7월 선거 이후까지 기다리겠다.”
미 · 일 무역 협상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에 선거 이후에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아베도 트위터에 “새로운 레이와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미일동맹을 만들고 싶다”며 트럼프와 함께 활짝 웃는 표정으로 찍은 셀카 사진을 올렸습니다.
◇취임 전부터 골프광 트럼프 마음을 사로잡은 아베
아베와 골프 회동으로 일본 국빈 방문 일정을 시작할 정도로 트럼프는 골프광입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그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재임하면서 4년간 총 261차례 라운딩을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바쁜 대통령’ 이면서도 매주 1회 이상 골프를 친 겁니다. 미국 버지니아주 스털링의 트럼프 내셔널클럽을 비롯, 전 세계에 15개의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아베는 트럼프가 당선되는 순간부터 그가 골프광이라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아베는 2016년 11월 8일 트럼프 승리가 확정된 직후 통화를 하고, 9일만인 11월 17일 뉴욕의 트럼프 타워로 찾아갔습니다. 혼마의 금장(金裝) 골프채를 선물로 들고서 말입니다. 일본의 수상이 미 대통령 당선자를 찾아가는 매우 이례적인 행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스기야마 신스케 당시 외무성 차관은 오바마 행정부로부터 ‘보복’을 당했다고 회고하는 글을 올해 문예춘추에 쓰기도 했습니다. ) 골프채 가격은 약 1000만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고가품이었습니다.
트럼프는 이런 아베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미 대통령선거가 끝난지 불과 9일만에 일본의 현직 총리가 찾아와 자신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선물을 내놓으며 함께 골프를 치고 싶다고 했으니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아베, 트럼프 취임 한달만에 27홀 라운딩
두 사람의 ‘브로맨스’는 2017년 2월 플로리다주의 골프장에서부터 본격화했습니다. 트럼프와 아베가 이곳에서 골프를 치기 시작한 것은 오전 9시 25분이었습니다. 아침 8시 11분부터 부부 동반으로 식사를 함께한 직후였습니다. 18홀 골프를 끝낸 시각이 오후 1시 50분. 점심을 함께 한 두 사람이 다시 골프장에 나왔습니다. 9홀을 더 돈 후 4시 35분에 트럼프의 별장 마라라고로 돌아왔습니다. 저녁 6시부터 시작된 만찬엔 워싱턴 DC에서 내려온 그의 딸과 사위도 참석했습니다.
친한 사람도 하루에 27홀 골프, 세 끼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겨우 두 번째 만남에서 말입니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의기투합했습니다. 트럼프는 전날 워싱턴 DC에서 정상회담 한 아베를 ‘에어포스 원’에동승시켜 자신의 별장으로 데려왔습니다. 노회한 비즈니스맨 트럼프와 총리직을 두 번째 수행 중인 아베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의전상 이런 파격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전 세계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말입니다.
당장 레이건-나카소네 관계가 다시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트럼프가 아베 환대를 통해 국내외에 주는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아베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다. 앞으로 아시아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는 아베와 먼저 상의할 것이다.” 그의 메시지는 미국의 국무부 국방부 상무부는 물론 연방 의회 관계자들에게 빠르게 확산했습니다. 아베의 생각이 고스란히 트럼프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이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관측은 과장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트럼프와 아베는 만찬 도중 북한의 ‘북극성 2호’ 미사일 도발 보고를 받자마자 저녁 10시 35분 기자들 앞에 함께 섰습니다. 아베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용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트럼프는 “우리의 중요 동맹인 일본을 100% 지지한다”고 했습니다. 북한이 도발하자 이를 미 · 일 동맹을 더 견고히 하는 계기로 활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장면에서 한국은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두 정상 중 누구에게서도 한 · 미 · 일 3각 협력체제를 구축, 한국과 북한 문제에 대해 밀접한 협의를 하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긴급 기자회견에서 확인된 두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한국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보여줬습니다. 트럼프 1기 때 지속된 ‘한국 따돌리기’의 시작이었던 겁니다.
◇미일, 2019년 3개월 연속 정상회담 신기록
아베와 트럼프가 2019년 4월부터 6월까지 매달 미·일 양국에서 만나 3개월 연속 정상회담을 하는 신기록을 세운 것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아베는 2019년 4월 26일 미국을 다시 방문, 첫날 백악관에서 약 2시간 동안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이어서 아베는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의 49번째 생일 축하 만찬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27일에는 버지니아주 스털링에 있는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골프를 함께 했습니다. 사실상 이 정상회담은 트럼프 부인 생일 기념 만찬에 참석하고 함께 골프를 치기 위한 것으로 방미 시간은 40시간에 불과했습니다.
이어서 다음달인 5월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즉위하자 같은 달 26일부터 3일간 트럼프가 새 일왕의 첫 국빈으로 도쿄를 방문,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트럼프는 이어서 6월 28일부터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G20회의에도 참석, 회동했습니다. 아사히 신문은 4,5,6월에 걸쳐서 3개월 연속으로 미·일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당시 도쿄의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빈번하게 만나는 것은 미·일 동맹이 더 굳건해지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더군요. 미·일의 군사적 협력관계도 더욱 긴밀해지고 있었습니다. 양국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경우, 이를 요격하는 실험을 실시하기로 합의한 것도 2019년입니다.
이런 긴밀한 관계는 2016년 아베가 체면 차리지 않고 트럼프가 처음 당선된 지 9일만에 찾아간 것이 발판이 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트럼프의 두 번째 당선 확정 직후인 7일 그와 통화하면서 이른 시일내에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8년 전 아베의 움직임을 잘 분석해 보길 바랍니다.
<아베와 트럼프의 브로맨스 관련 ‘막전막후’는 다음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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