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공사 인수하겠다는 행동주의펀드···'무리수' 비판 왜?

황동건 기자 2024. 11. 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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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 FCP의 인삼공사 인수제안 거절
올해 들어서만 해도 수 차례 논란 발생
사외이사 합류 제안하고 스스로 거부도
무리한 개입, 장기적인 기업 가치 약화
KGC인삼공사 과천 R&D센터. 사진 제공=KGC인삼공사
[서울경제]

KT&G(033780)의 자회사인 KGC인삼공사를 인수하겠다는 싱가포르계 행동주의펀드 플래시라이트 캐피털 파트너스(FCP)의 제안에 대해 ‘무리한 경영권 흔들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KT&G, FCP의 인삼공사 인수 제안 거절

9일 업계에 따르면 KT&G는 최근 FCP에 대한 KGC인삼공사 매각을 거부했다. KT&G는 7일 FCP에게 “건강기능식품 등 3대 핵심사업 육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취지의 회신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13일 FCP로부터 ‘KGC인삼공사를 1조 9000억원에 인수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의향서를 전달받은 데 대해 약 3주 만에 거절 의사를 밝힌 셈이다.

업계에서는 KT&G의 지분 구조상 실제 거래의 성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해왔다. 증권가에서도 인삼공사를 인수하겠다는 FCP의 주장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보고서가 나왔다. 홍콩계 증권사 CLSA는 지난달 14일 발간한 KT&G 리포트에서 “FCP가 1조 9000억원을 지불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신용을 보유 중이라고 믿기 어렵다”며 “인삼공사 사업을 진심으로 확보하고 싶어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인삼을 마누카꿀처럼’ 성장시키겠다는 FCP의 공언은 이번 인수 시도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에선 “시장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부족한 주장”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미 인삼을 거래하는 글로벌 시장 규모가 마누카꿀보다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실제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2년 세계 인삼 소매시장 규모는 24억7000만달러(3조1390억원) 규모에 달했다. 이 중 인삼공사 정관장 매출은 10억3800만달러로 약 41.9%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반면 같은 시기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가 집계한 마누카꿀 시장 규모는 3억6622만달러(4654억원) 수준에 그쳤다. 뉴질랜드 마누카꿀 1위 기업인 ‘콤비타’의 주가 역시 지난 1년간 60% 넘게 하락했다. 오히려 ‘마누카꿀을 인삼화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올해 들어서만 해도 수 차례 논란 발생 사외이사 합류 제안하고 스스로 사퇴도
방경만(왼쪽 다섯 번째) KT&G 신임 사장이 지난 3월 대전 대덕구 본사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해 있다. 사진 제공=KT&G

FCP는 올해 들어서만 해도 수 차례 주주제안을 이어왔다. 지난 2월에는 이상현 FCP 대표를 직접 KT&G 사외이사 후보로 올려달라는 주주제안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KT&G 측은 “정당한 주주권 행사를 존중한다”며 이견 없이 이 안건을 주주총회에 상정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소액주주 결집을 시도하던 이 대표는 주총을 앞둔 3월 초 돌연 사외이사 후보에서 자진사퇴했다.

관련 사업 경험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인사를 인삼공사 대표직 후보로 거론해 논란을 일으킨 전례도 있다. FCP는 지난해 KGC인삼공사 인적분할을 시도하면서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추천했다. 당시 이사보수의 한도를 100억원으로 책정해 논란이 일었다. 이는 인삼공사 연간 영업이익의 약 10%에 맞먹는 금액이다.

무리한 개입, 장기적인 기업 가치 약화

재계에서는 행동주의펀드의 이 같은 ‘흔들기’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을 받은 미국 상장사들의 기업가치는 1~3년 뒤 1.4% 올랐으나 4년 이후에는 오히려 떨어졌다. 이는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에 자금을 투입하면서 장기적 투자 재원이 고갈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경협이 분석한 기업들은 행동주의 공세 이후 고용이 1~2년 만에 평균 3% 줄었고, 장기적으로는 5.6% 감소했다. 자본투자도 행동주의의 공격을 받기 전보다 10% 넘게 쪼그라들었다. 지난달 21일 한국경제인협회는 2000년 이후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을 받은 미국 970개 상장사(시가총액과 자산 10억달러 이상 기준)을 대상으로 기업가치 변화를 분석해 이 같은 결론을 발표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행동주의 펀드들이 1% 남짓한 지분을 앞세워 경영에 무리하게 간섭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장기적인 발전은 고려하지 않고 단기적인 이익만을 쫓는 행보는 기업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동건 기자 brassg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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