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위 변함없겠지만, 글로벌 힘의 공백은 불가피
트럼프 2기, 국제질서 관전 포인트
1893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징검다리 당선에 성공한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역사의 주인공이 된 트럼프 당선인이 주도하는 외교 정책은 대체로 세 가지 차원에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를 제공한다. 첫째,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 주창했던 “당선되면 48시간 이내에 러·우크라 전쟁을 끝내겠다”는 부분이다. 공화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물론 상하원 모두 공화당 지배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소위 ‘레드 스윕(Red Sweep)’이 달성되었다.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은 트럼프 차기 대통령의 의중은 상하원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미 의회의 우크라이나 지원 승인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가 영토의 일정 부분을 포기(?)하는 차원에서 종전 및 평화협상은 시작될 것이다. 한 가지 추가적으로 짚어야 할 점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은 유럽 안보질서 재편과 깊숙이 연동되어 있다. 과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군사주의를 억지하려는 다양한 관여주의 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점에 분노하는 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러시아에게 징벌(punishment)를 가해, 향후 상당한 기간 동안 러시아를 소위 ‘이등 국가’로 전락하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덧붙여 중동 사태의 경우, 이스라엘의 과도한 군사주의가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겠지만, 트럼프 당선으로 인해 이스라엘 스스로의 정당성은 확보한 셈이고 이란을 중심으로 한 시아파의 반격은 점차 동력을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대 중국 관계 및 미·중 경쟁의 문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트럼프의 공약에는 대중국 투자 금지, 중국 상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동맹국들의 대중국 투자 제한 등 전방위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오늘의 트럼프를 있게 만든 중요한 전제 조건이므로, 취임 이후 어떤 형태로든 드라이브를 걸 것이 분명하다.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미국을 포함하여 누가 어떻게 이익을 보고 또한 어떻게 손해를 볼지,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과 같이 중국이 경제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대중 정책은 일정 부분 중국을 압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관련하여 한국을 포함하여 미국 및 중국 모두와 다양한 교역 관계로 얽혀있는 전 세계 주요국들의 이해관계가 문제가 될 수 있는데, 트럼프 진영의 판단에 의하면, 중국 경제가 주춤하는 현시점이야말로 중국이 국제 주요 경제권과 맺고 있는 연결망을 관리하는 최적의 시기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셋째, 국내 많은 전문가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북한의 김정은과 과감한 딜을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트럼프 2기에는 ‘트럼피즘’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과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공존한다. 본인의 승부 방식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트럼프 당선자는 자기만의 방식을 더욱 고수할 것이라는 해석이 있고, 혹은 백악관을 이미 경험해 봤고 또한 이번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 캠프가 보인 전문성을 고려할 때, 트럼피즘이 향후에는 세련되게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공존하고 있다. 김정은과의 담판은 대체로 전자에 해당한다. 어느 쪽이 현실화되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북한과의 담판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러시아 및 중동 문제가 당연히 우선순위에 있고, 더구나 최근 들어 북한이 파병을 통해 러시아에 깊숙이 발을 담근 사실은 트럼프 행정부의 생각을 좀 더 복잡하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지위 하락으로 인해 발생하는 글로벌 힘의 공백을, 중국은 물론 특정 어느 국가가 고스란히 차지할 수는 없다. 힘의 공백을 메우는 과정의 일부는 중국이, 일부는 국제기구가, 일부는 유럽과 일본이, 또한 일부는 한국을 포함한 경쟁력을 갖춘 국가들이 담당하는 것이 세계화의 현실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지위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상대적 글로벌 영향력 축소는 다양한 연결 과정을 거쳐서 미국의 정체성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이 모든 걸 시혜적으로 해결할 거라는 생각은 이제 시대에 맞지 않다. 향후 글로벌 질서 변화의 방향성을 더욱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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