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의 힘…민주당 텃밭서도 트럼프 지지율 10%P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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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미 대선 워치] 대선 결과 어떻게 봐야 하나
미국 대선의 마지막 유세를 미시간주에서 끝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고민에 빠졌다. 어디에서 대선 결과를 봐야 할지 측근들의 의견은 갈렸다. 승리를 확신하는 측은 뉴욕 맨해튼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만약 선거 결과에 불복해 소송전으로 가기엔 플로리다가 좋다는 의견도 나왔다. 트럼프는 캠프 내 최고의 전략가인 수지 와일스를 불렀다. 와일스는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지만 플로리다로 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냈고, 트럼프는 이에 따랐다. 와일스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런 와일스는 8일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지명됐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트럼프 집권 2기를 위한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트럼프가 일찌감치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하고 과반의 선거인단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단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어떻게 패배를 인정할지가 관심을 끌었을 뿐이다. 민주당 측은 언론을 통해 “해리스가 오늘은 지지자들 앞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승리를 거둔 트럼프의 플로리다 축하연회장의 규모는 의외로 작았다. 무대에 등장한 트럼프는 곧장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선거 공약대로 실행하라고, 미국과 미국인들이 자신에게 권한을 부여했다”고 외칠 때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트럼프와 그의 열광적인 지지자들이 귀가 따갑도록 외쳐댄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비백인, 소수계 이민자에 대한 백인들의 증오와 혐오, 공포가 이렇게 심각할 줄 미처 몰랐다. 그러면서 이들을 똘똘 뭉치게 만드는 MAGA의 구심력에 새삼 놀랐다.
선거 당일 자정이 지나고 새벽으로 접어들면서 전국적인 개표 상황을 통해 대선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트럼프가 7개 경합주를 싹쓸이했다.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은 만년 민주당을 지지했던 캘리포니아와 뉴욕에서도 8년 전, 4년 전보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10%P 이상씩 올라갔다. 트럼프 뒤의 ‘대안 우파, 네오나치스트, 기독교 근본주의 우파, 백인 우월주의’ 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트럼프가 정치에 뛰어들고 난 후 줄곧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지켜본 필자지만, 이번 트럼프의 승리는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거의 만 2년 동안의 미 대선 과정에서 정말로 많은 것을 겪었다. 2024년 대선은 유권자가 정치 지도자를 선출하는 일반적인 선거가 아니었다. 사회적 극우파가 핵심인 MAGA라는 우파 사회 운동세력과 신세대, 유색 인종, 이민자, 소수계를 망라한 시민 풀뿌리(grassroot) 운동세력의 대결이었다. 누구를 뽑는 선거라기보다는 유권자들이 자신이 위치한 사회·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하고 합리화하는 행위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 같다. 이번 대선의 두 후보는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이었다. 한쪽은 보수 우파였고, 다른 한쪽은 진보적인 좌파였다. 어찌 보면 이번 대선은 후보를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치열한 이념 대결을 하는 장이었다. ‘다양성, 평등성, 포용성’이 기본 이념인 풀뿌리 운동과 ‘백인우월주의, 기독교 민족주의, 미국 예외주의’가 이념인 MAGA의 충돌이었다. 풀뿌리 운동이 참패했다는 것이 그 결과였다.
트럼프의 뻔뻔하고 당당한 귀환을 보면서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의 한 칼럼니스트는 “트럼프는 일부 사람들이 생각했던 역사적 일탈자가 아니라, 현대 미국을 자신의 이미지대로 재구성하는 변혁 세력의 수장이다”이라고 평했다. 이게 트럼프의 현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의 승리는 또 MAGA 운동이 미국 사회를 지배한다는 첫 신호이자 경고다. 트럼프가 역사의 뒤안길로 빨리 사라질 기괴한 인물이라는 가정은(필자는 그에 관해서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선거일 밤 전국을 휩쓴 MAGA의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미국은 더 이상 지배 엘리트 계층이 일궈온 미국이 아니었다. 정치권은 이제 더 이상 트럼프를 일회성으로 어쩌다 백악관에 입성한 운 좋은 권력자라고 치부할 수 없다. 지배 엘리트에 대한 서민들의 분노는 양식 있는 일부 권력자들이 인식했던 것보다 훨씬 뿌리 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날 미국인들은 248년 된 미국의 민주주의를 허물어 버리려는 트럼프의 속내를 뻔히 알면서도 그에게 다시 권력을 넘겨 줬다.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같은 권위주의 독재자들을 칭찬하고 추켜세우면서 허황된 과시욕을 드러내곤 했다. 이런 그를 잘 알고 있음에도 미국인들은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표를 몰아줬다. 민주주의와 평화, 환경, 인권을 위해 노력해온 그동안의 미국인들의 노력과 긍지가 박탈당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필자는 미국에서 소수계의 생존은 정치 참여에 달려있다고 반복해서 고함을 질러 온 지 30년이 넘는다. 유권자가 돼 선거에 참여해야 이민자의 권익이 보장된다고 외쳐온 입장에서 이번 화요일 선거는 설명하기 힘든 결과다. 앞으로 트럼프 정부의 이민정책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 할지 해답을 찾기 어렵다.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가 결정된 그 무렵 한국계 미국인 앤디 김 하원의원이 상원 입성에 성공했다. 한인 2세의 상원 입성은 120여 년에 달하는 한인 이민 역사에서 큰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경사스러운 일임에도 그 이튿날 아침, 상원의원에 당선된 앤디 김과 마주한 자리에서 그도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앞으로 견뎌야 할 4년이라는 시간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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