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의 힘…민주당 텃밭서도 트럼프 지지율 10%P 올라

2024. 11. 9. 01: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동석의 미 대선 워치] 대선 결과 어떻게 봐야 하나
미국 대선의 마지막 유세를 미시간주에서 끝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고민에 빠졌다. 어디에서 대선 결과를 봐야 할지 측근들의 의견은 갈렸다. 승리를 확신하는 측은 뉴욕 맨해튼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만약 선거 결과에 불복해 소송전으로 가기엔 플로리다가 좋다는 의견도 나왔다. 트럼프는 캠프 내 최고의 전략가인 수지 와일스를 불렀다. 와일스는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지만 플로리다로 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냈고, 트럼프는 이에 따랐다. 와일스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런 와일스는 8일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지명됐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트럼프 집권 2기를 위한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유죄 판결 범죄자를 대통령으로 첫 선출
지난 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 모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대선 승리 소식을 접하고 환호하고 있다. 이날 폭스뉴스는 트럼프의 승리를 긴급 보도했다. [AFP=연합뉴스]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는 다사다난했다. 과정에 비해 결론은 싱거울 정도로 빨리 끝났다. 트럼프는 경합주인 조지아(선거인단 16명), 노스캐롤라이나(16)에서 빠르게 승리했다. 이어 승리의 관건이었던 최대 경합주 펜실베이니아(19)의 개표에서도 트럼프가 작지 않은 격차로 리드하다가 승리를 확정했다. 이 세 곳에서 승리할 경우 트럼프는 대권을 거머쥐게 돼 있었다. 전체 선거인단 538명 중 과반인 270명을 딱 채우게 된다. 기존의 공화당 우세 지역의 선거인단 수는 219명. 여기에 51명의 선거인단이 추가로 필요한데 이 세 곳의 합이 51명이다. 트럼프는 이에 그치지 않고 압도적일 정도로 경합주에서 승리를 이어갔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대권 향방을 결정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통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자가 확정될 무렵, 패자가 먼저 졌다는 선언을 해왔다. 특히 박빙의 승부에선 관례처럼 패자의 인정이 대선 결과를 매듭지었다.

이번 대선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트럼프가 일찌감치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하고 과반의 선거인단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단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어떻게 패배를 인정할지가 관심을 끌었을 뿐이다. 민주당 측은 언론을 통해 “해리스가 오늘은 지지자들 앞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승리를 거둔 트럼프의 플로리다 축하연회장의 규모는 의외로 작았다. 무대에 등장한 트럼프는 곧장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선거 공약대로 실행하라고, 미국과 미국인들이 자신에게 권한을 부여했다”고 외칠 때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트럼프와 그의 열광적인 지지자들이 귀가 따갑도록 외쳐댄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비백인, 소수계 이민자에 대한 백인들의 증오와 혐오, 공포가 이렇게 심각할 줄 미처 몰랐다. 그러면서 이들을 똘똘 뭉치게 만드는 MAGA의 구심력에 새삼 놀랐다.

선거 당일 자정이 지나고 새벽으로 접어들면서 전국적인 개표 상황을 통해 대선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트럼프가 7개 경합주를 싹쓸이했다.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은 만년 민주당을 지지했던 캘리포니아와 뉴욕에서도 8년 전, 4년 전보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10%P 이상씩 올라갔다. 트럼프 뒤의 ‘대안 우파, 네오나치스트, 기독교 근본주의 우파, 백인 우월주의’ 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트럼프가 정치에 뛰어들고 난 후 줄곧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지켜본 필자지만, 이번 트럼프의 승리는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거의 만 2년 동안의 미 대선 과정에서 정말로 많은 것을 겪었다. 2024년 대선은 유권자가 정치 지도자를 선출하는 일반적인 선거가 아니었다. 사회적 극우파가 핵심인 MAGA라는 우파 사회 운동세력과 신세대, 유색 인종, 이민자, 소수계를 망라한 시민 풀뿌리(grassroot) 운동세력의 대결이었다. 누구를 뽑는 선거라기보다는 유권자들이 자신이 위치한 사회·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하고 합리화하는 행위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 같다. 이번 대선의 두 후보는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이었다. 한쪽은 보수 우파였고, 다른 한쪽은 진보적인 좌파였다. 어찌 보면 이번 대선은 후보를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치열한 이념 대결을 하는 장이었다. ‘다양성, 평등성, 포용성’이 기본 이념인 풀뿌리 운동과 ‘백인우월주의, 기독교 민족주의, 미국 예외주의’가 이념인 MAGA의 충돌이었다. 풀뿌리 운동이 참패했다는 것이 그 결과였다.

트럼프의 뻔뻔하고 당당한 귀환을 보면서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의 한 칼럼니스트는 “트럼프는 일부 사람들이 생각했던 역사적 일탈자가 아니라, 현대 미국을 자신의 이미지대로 재구성하는 변혁 세력의 수장이다”이라고 평했다. 이게 트럼프의 현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의 승리는 또 MAGA 운동이 미국 사회를 지배한다는 첫 신호이자 경고다. 트럼프가 역사의 뒤안길로 빨리 사라질 기괴한 인물이라는 가정은(필자는 그에 관해서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선거일 밤 전국을 휩쓴 MAGA의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미국은 더 이상 지배 엘리트 계층이 일궈온 미국이 아니었다. 정치권은 이제 더 이상 트럼프를 일회성으로 어쩌다 백악관에 입성한 운 좋은 권력자라고 치부할 수 없다. 지배 엘리트에 대한 서민들의 분노는 양식 있는 일부 권력자들이 인식했던 것보다 훨씬 뿌리 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앤디 김 상원 입성, 120년 이민사 쾌거
지난 5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립대에서 트럼프의 선거운동 슬로건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쓰인 모자가 판매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미국인들은 이전 선거를 불법적으로 뒤집으려고 시도한 지도자에게 다시 권력을 돌려줬다. 인종, 성별, 종교, 출신 국가, 성 정체성에 따른 트럼프의 노골적인 혐오를 많은 미국인들이 그냥 이렇게 받아들였다. 그의 뻔뻔한 거짓말과 터무니없는 음모론에 화를 내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진실하다고 봤다. 미국인들은 트럼프를 사기꾼, 성적 학대자, 명예 훼손자로 판결한 중범죄자로 보지 않고, 오히려 그가 권력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피해자로 인정했다. 임기 첫날 독재자가 되기를 열망하고 자신의 정적들에게 정확하게 보복하겠다고 밝힌 뻔뻔스러운 78세 노인의 귀환을 미국인들이 비준했다. 지난 화요일 투표를 통해서 미국인들이 그렇게 했다.

그날 미국인들은 248년 된 미국의 민주주의를 허물어 버리려는 트럼프의 속내를 뻔히 알면서도 그에게 다시 권력을 넘겨 줬다.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같은 권위주의 독재자들을 칭찬하고 추켜세우면서 허황된 과시욕을 드러내곤 했다. 이런 그를 잘 알고 있음에도 미국인들은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표를 몰아줬다. 민주주의와 평화, 환경, 인권을 위해 노력해온 그동안의 미국인들의 노력과 긍지가 박탈당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필자는 미국에서 소수계의 생존은 정치 참여에 달려있다고 반복해서 고함을 질러 온 지 30년이 넘는다. 유권자가 돼 선거에 참여해야 이민자의 권익이 보장된다고 외쳐온 입장에서 이번 화요일 선거는 설명하기 힘든 결과다. 앞으로 트럼프 정부의 이민정책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 할지 해답을 찾기 어렵다.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가 결정된 그 무렵 한국계 미국인 앤디 김 하원의원이 상원 입성에 성공했다. 한인 2세의 상원 입성은 120여 년에 달하는 한인 이민 역사에서 큰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경사스러운 일임에도 그 이튿날 아침, 상원의원에 당선된 앤디 김과 마주한 자리에서 그도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앞으로 견뎌야 할 4년이라는 시간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마치고 1996년 한인유권자센터를 설립해 한국계 교민·교포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해 왔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등 워싱턴 정계에 인맥이 두텁다. 한·미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