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일이 부릅니다 '아파트'
[아무튼, 레터]
노래는 가수의 것이지만 어디서 어떻게 소비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윤수일(69)의 히트곡 ‘아파트’가 그렇다. 가사와 멜로디는 삭막한 도시의 애환을 그렸지만 스포츠 경기장에서는 신나는 응원가로 불린다. 이쪽에서 ‘아파트’를 떼창한다면 승리가 확정되거나 승기를 잡았다는 뜻이고, 당연히 저쪽 응원석은 침울해진다.
걸그룹 블랙핑크 로제와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부른 ‘아파트(APT.)’가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자 윤수일이 1982년 발표한 ‘아파트’도 역주행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부산에 산다는 윤수일은 “내 노래를 재건축해 줘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요즘 아파트 주민들에게 축하 인사 받느라 바쁘다”고 했다. K팝이 흘러간 옛 가수를 재조명한 사례다.
주한 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윤수일의 어린 시절은 혼돈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떠났고 어머니는 재혼했다. 이국적이고 수려한 외모를 가진 윤수일은 온 동네의 불편한 관심을 받으며 성장했다. “혼혈이라 늘 외로웠다. 병역의무도 면제됐다. 내가 정말 이 나라 국민인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래서 음악에 더 빠져들었다.” 윤수일은 혼혈인이라는 운명을 뮤지션으로서 개성의 계기로 삼았다.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데뷔한 그는 “도시인의 고뇌, 고독에 집중한 한국 시티팝의 창시자”로 자신을 규정한다. 락뽕(락+뽕짝)스러운 전주가 흐르고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로 시작되는 ‘아파트’는 1980년대를 강타했다. “으쌰라 으쌰~”라는 추임새까지 장착하며 응원가 겸 노래방 애창곡으로 사랑받았다.
노랫말 속 아파트는 어디에 있는 아파트일까. 여의도, 압구정, 잠실 등 추측이 무성했다. 윤수일이 논란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군대 갔던 친구가 휴가 나와서 여자 친구의 아파트 벨을 눌렀는데, 그 가족 모두가 이민을 가 버려 텅 비었다고 했다. 그 친구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내가 노랫말을 썼다. 다리는 잠실대교이고, 그 아파트는 잠실에 있다.”
‘아파트’의 인기에 대해 가수는 리듬과 선율이 쉽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곡도 5분 만에 끝냈다고. 온라인에서는 로제·브루노 마스의 신축 ‘아파트’와 윤수일의 구축 ‘아파트’를 섞어 제작한 영상도 인기다. 윤수일은 “젊은 친구들이 로제의 ‘아파트’를 들으면서 제 ‘아파트’가 덩달아 주목받아 기쁘다”고 했다. 쓸쓸하지 않아 다행이다. 오랜만에 유튜브로 다시 들어봤다. 윤수일이 부르는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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